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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처음 한국 오는 피아니스트 폴리니, 청중의 열광 이유

중앙일보

입력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사진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사진 마스트미디어]

 “악보의 엑스-레이 사진과 같은 연주.”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묘사다. 1987년 기사에는 모든 음을 극도로 정확하게 연주하는 당시 45세의 폴리니를 두고 “강철과 같은 손가락으로 언제나 정밀한 소리를 만든다. 어떤 악보든 단숨에 읽어내며, 피아노를 노래하게 하거나 타악기로 만들 수도 있다”고 평하고 있다.

다음 달 이틀동안 첫 내한공연

정확함의 극치는 쇼팽의 연습곡 전곡(24곡)을 녹음한 1980년 음반에서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가 가져야할 모든 기교를 시험하는 이 작품에서 그는 어려운 부분을 거뜬하게 통과해낸다. 난해한 기술이란 없어 보이는 연주다. 그 시기에 나왔던 폴리니의 쇼팽 전주곡 전곡(24곡)과 함께 경이로운 완성도의 음반으로 남아있다.

극도로 정확한 '얼음형'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사진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사진 마스트미디어]

올해 80세인 폴리니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한다. 다음 달 19일ㆍ25일 서울 예술의전당이다. 쇼팽의 소나타 2번, 자장가, 영웅 폴로네이즈를 양일 모두 연주하고 19일엔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판타지, 25일엔 슈베르트의 소나타 18번을 들려준다.

정확한 음악을 음반으로만 들어야 했던 한국의 청중에게 화제의 공연이다. 이번 공연을 여는 마스트미디어의 김용관 대표는 “내한 공연에 대해 약 20년 동안 이야기를 나눠왔고, 한국 공연이 가능하겠다는 연락을 1년 반 전쯤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폴리니는 한국에서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지만 일본 무대에는 자주 섰다. 이번에도 일본과 한국을 들르는 투어였지만 일본 공연이 취소되면서 한국에서만 연주하게 됐다.

그의 내한으로 20세기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의 한국 공연 기록이 완성된다. 동시대를 이끌었던 마르타 아르헤리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안드라스 쉬프 등은 이미 몇차례 한국을 찾았다. 폴리니는 그 중에서도 차가운 피아니스트로 분류된다. 아르헤리치가 뜨겁고 아쉬케나지는 서정적이며 쉬프는 내밀했다면 폴리니의 연주는 냉철했다.

1960년에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8세로 우승하고 심사위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 “우리보다 낫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확한 연주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1963년에 런던에서 데뷔했을 때는 “음표, 그다음 음표를 제대로 연주하는 데에만 집착하며 달려간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폴리니는 60년대 초반에는 콘서트 횟수를 제한하고 공부하면서 연주 작품을 늘렸다. 60년대부터 슈톡하우젠ㆍ베베른 같은, 당시로선 급진적이던 20세기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특히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작곡가 루이지 노노와 교류하며 함께 활동했다. 폴리니는 지금도 현대 음악을 무대에서 종종 연주하는 노장이다.

"여전히 드라마틱한 에너지"

강철과 같은 그의 손놀림을 기억하는 음악 팬이라면 폴리니의 내한이 늦었다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해외 공연에 대한 평을 보면 실력은 녹슬지 않은 듯하다. 영국의 타임스는 지난달 2일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열린 폴리니의 독주회에 대해 “80세 생일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예술적 기교가 약해졌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며 “여전히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러였다”고 평했다. 이 무대에서도 폴리니의 연주곡은 만만치 않았다. 슈만의 판타지와 아라베스크, 쇼팽의 마주르카, 소나타 2번, 자장가를 연주했고 앙코르로 쇼팽의 발라드 1번을 들려줬다. 그에 앞서 2015년의 런던 공연에 대해서는 가디언이 “폴리니가 연주하는 쇼팽 자장가를 들으면서는 절대 잠들 수 없다”며 그의 에너지를 묘사했다.

여전한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을 찾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추측이 많았다. 폴리니는 정치적 견해가 분명하며 사회적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자국 이탈리아의 우파 정치인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베트남 전쟁, 독재 정권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 의견을 내놓고는 했다. 이 때문에 남북한의 대치 상황, 남한의 정세 등으로 폴리니가 한국 공연을 수락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공장 노동자를 위한 공연을 열고 학생을 위한 좌석을 마련하는 등 예술과 사회를 밀착시키는 피아니스트다.

폴리니는 공연 날짜보다 일주일 먼저 입국하고, 두번째 공연에 앞서 일주일 동안 휴식한다. 자신의 시그니처와 같은 스타인웨이 파브리니(Fabbrini) 피아노를 통째로 비행기로 실어와 연주한다. 그 피아노를 제작한 안젤로 파브리니도 조율팀과 함께 온다. 거장의 대규모 이동에 따라 공연의 티켓값도 다소 높게 잡혔다. R석 38만원, S석 30만원, A석 22만원, B석 15만원, C석 8만원이다. 마스트미디어 측은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제작비가 높아졌다. 하지만 티켓 최저가가 낮은 만큼 전체 티켓의 평균 가격은 이전의 일본 공연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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