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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근로자 감전사, 한전 책임 얼마나…법원 판단 한결 같았다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이 한국전력공사의 도급 전기공사 현장에서 감전된 하도급 근로자의 사망 사고에서 당시 한전 지역본부장의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했다. 하도급 업체는 물론 원청인 공기업 측의 산업재해 예방 및 안전관리 주의 의무를 인정한 사례여서 눈길을 끈다.

컷 법원

컷 법원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한전 지역본부장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한전도 법인 양벌규정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져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보호장비 없는 50대 근로자, 14m 높이서 감전돼 추락 

사고는 2017년 11월 28일 일어났다. 한전으로부터 철탑 이설 공사를 도급받은 B사 소속 근로자 C씨(당시 57·남)가 전류가 흐르는 전선 인근의 약 14m 높이 장소에서 비계 조립 작업을 하던 중 방전 전류에 감전돼 바닥으로 추락했다. C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전기공사업체인 B사 요청에 따라 한전은 작업 중 감전 방지를 위해 절연방호관 등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된 C씨는 전기공사 관련 자격이 없는 근로자로, 절연용 보호구나 안전대 등 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배전선로 접근 한계거리(3m) 이내의 장소에서 작업하던 중 변을 당했다.

"도급인은 안전조치 주의 의무 없다" 한전 주장, 왜 깨졌나 

1심에서 청주지법은 A본부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한전에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 측은 자신들이 '도급인'의 입장에 있다고 강조했다. 도급인으로서 한전 측은 일감을 하청받은 수급인(B사)의 업무와 관련해 사고 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 의무가 없고, 이 같은 의무를 위반해 C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청주지법은 "업무상과실치사죄에 있어 원칙적으로 도급인에게는 수급인의 업무와 관련해 사고방지를 위한 안전조치 주의 의무가 없다"면서도 "(다만) 한전 소속 직원이 이 공사의 주요 공정 때 현장을 방문해 시공 품질·상태를 확인하고, B사 현장소장이 해당 한전 직원을 감독이라고 부른 사실이 인정된다. 도급인이 시공이나 개별 작업을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하는 등 사정이 있으면 도급인에게도 안전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A본부장은 당시 관할지역 내 공사가 1일당 70여 건으로 이를 모두 관리할 수 없고, 따라서 사고가 일어난 공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안전관리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청주지법은 "사업장 규모가 방대해 관리능력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 사업장별로 선임된 안전보건총괄책임자가 해당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으나, 별도의 책임자를 선임하지 않은 만큼 A본부장이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 행위자"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년 청주지법이 피고인 측 항소를 기각한 데 이어 대법원도 지난달 말 이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산업재해를 예방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 취지와 도급인에게도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조치 의무를 지우기 위한 법 개정의 목적·경위 등을 종합해 볼 때 원심판결에는 법리나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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