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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2020년 대형 산불 기후변화 탓이냐, 벌목 탓이냐 질긴 논쟁

중앙일보

입력

2019년 12월 30일 호주 베른스데일 인근 지역에서 산불이 번지면서 불꽃과 함께 거대한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12월 30일 호주 베른스데일 인근 지역에서 산불이 번지면서 불꽃과 함께 거대한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 동안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 등 동해안에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 집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경북 1만4140㏊, 강원 6383㏊ 등 모두 2만523㏊의 산림이 불탔다.
산불이 꺼진 지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산불 확산의 원인과 복원 방법 등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숲 가꾸기와 불에 탄 나무의 전면적인 벌목, 소나무 심기 위주의 복원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반구 호주에서도 2019~2020년 대형 산불의 확산이 기후변화 탓인지, 벌목 탓인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호주 정부 집계에 따르면 당시 숲 3980만㏊가 불에 탔는데, 이는 이번 동해안 산불의 1900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벌목 등 임업 관행이 산불에 영향"

호주 빅토리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타버린 유칼립투스 숲. [AP]

호주 빅토리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타버린 유칼립투스 숲. [AP]

논쟁은 국제 저널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서 벌어졌다.
논쟁은 지난 202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저널에 실린 기고문에서 호주국립대 데이비드 린덴마이어 교수(산림 생태학) 등은 "벌목 작업과 같은 토지 관리 방법이 화재의 심각한 정도, 화재 빈도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임업 관행과 산불 사이에 연관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오래된 유칼립투스 숲이나 열대우림은 불에 타지 않았거나 가장자리에만 불이 붙었고, 벌목한 곳이나 조림지역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반복적으로 불에 탔다는 것이다.
린덴마이어 교수는 "기후 변화로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기상 조건이 나타나면서 산불을 악화시키는 것도 있지만, 벌목 작업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벌목을 하지 않아야 하고, 훼손된 산림을 복구하고, 산불이 발생한 지역의 벌목과 같은 관행을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벌목 관련성 매우 낮다" 반박 

호주 북동부를 휩쓴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

호주 북동부를 휩쓴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해 7월 호주 태스메이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보우만 교수(화재 지리학) 교수 등은 "2019~20년 호주 유칼립투스 산불의 심각성과 정도는 산림 관리의 유산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저널에 발표했다.
논문에서 보우만 교수는 "호주 산불 현장을 조사한 결과, 나무의 캐노피(가지와 잎으로 덮인 나무 상층부)가 완전히 불에 탄 경우는 기상 요인이 압도적인 영향을 줬고, 벌목 이력과는 관련성이 매우 낮았다"며 린덴마이어 교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2019~20년 호주 동부 산불 시즌은 이전에 알려진 다른 모든 산불 시즌과 양적, 질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장기간의 극심한 산불 날씨(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날씨, 변칙적인 가뭄과 강하고 뜨겁고 건조한 서풍)와 비정상적인 땔감 건조가 결합한 것이 산불의 광대한 범위와 심각성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유칼립투스 재조림 지역에서 산불 위험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지역에 따라 가변적이고, 날씨나 지형 등 다른 변수에 비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평행선 달리는 논쟁 

지난 2020년 1월 2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테라(Terra) 위성이 촬영한 사진에서 빅토리아와 뉴사우스웨일스 등 호주 남동부 지역이 산불에서 발생한 두꺼운 연기로 덮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AP]

지난 2020년 1월 2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테라(Terra) 위성이 촬영한 사진에서 빅토리아와 뉴사우스웨일스 등 호주 남동부 지역이 산불에서 발생한 두꺼운 연기로 덮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AP]

린덴마이어 교수는 지난 15일 이 저널에 발표한 "벌목은 2019~20년 호주 산불에서 심각한 화재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보우만 교수의 주장에 재반박했다.

린덴마이어 교수는 "바우만 교수팀의 데이터를 보면 벌목이 캐노피 손상 확률을 5~20%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온다"며 "벌목 작업이 진행되는 곳에서 산불이 더 심각하다는 우리 기고문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후와 날씨가 산불 확산에 핵심 동인이라는 바우만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벌목과 같은 관행의 영향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바우만 교수는 함께 발표한 기고문에서 "2019~20년 호주 산불이 인위적인 기후 변화 때문에 유발된 위험한 산불 날씨와 함께 강렬한 가뭄과 덥고 건조한 변칙적 기후 조건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광범위한 과학적 합의가 있었다"며 "연방 정부 조사 등에서 산불과 산림 관리 사이의 연관성은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바우만 교수는 "린덴마이어 교수 등이 지난 산불 당시 벌목이 '화염 적란운'과 같은 극단적인 산불 현상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분석 결과 벌목 이력과 관계없이 극심한 산불 날씨가 산림 캐노피를 파괴하는 화재를 유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벌목과 산불 심각도 사이의 작고 매우 가변적인 관계에 과학계·언론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미래의 산불 위험을 관리 정책을 산만하게 한다"고 몰아세웠다.

결국, 기후변화나 가뭄 등의 영향이 중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벌목의 영향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소나무 조림과 숲 가꾸기가 피해 키워"

경북 울진군 북면 산불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6일 수시로 바뀌는 풍향과 강풍 및 연무로 산불이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뉴스1 (산림청 제공)]

경북 울진군 북면 산불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6일 수시로 바뀌는 풍향과 강풍 및 연무로 산불이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뉴스1 (산림청 제공)]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부산대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는 "호주나 미국 캘리포니아 등 산불이 잦은 곳은 여름철이 건조한 데 비해 한반도는 여름철에 강수량이 많다는 차이가 있다"며 "기후변화보다는 숲 가꾸기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홍 교수는 "숲 가꾸기에서 소나무를 제외한 활엽수를 숲에서 베어내는 바람에 바람이 잘 통하게 돼 숲 바닥이 건조해지고,  산불이 잘 번지게 됐다"며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숲 가꾸기나 인위적인 소나무 조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천이가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인위적으로 소나무를 심고 가꾸는 바람에 산불에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숲 가꾸기로 숲을 통과하는 바람 세기가 3배로 강해져 한 번 불이 붙으면 빠르게 확산하고, 불에 잘 붙은 소나무가 들어찬 탓에 지표면만 태우는 불로 끝날 것이 수관화(樹冠火, 나무 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 태우며 지나가는 산불)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로 인해 봄에 가뭄이 더 심해진다면 산불이 자주 발생할 수 있지만, 침엽수 대신 활엽수가 자라게 되면 산불 피해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00년 강원도 고성 산불 피해 지역을 20년 뒤인 지난 2020년 5월의 모습. 사진에서 도로 오른쪽 소나무를 조림한 지역은 물론 자연 복원이 진행되도록 한 왼쪽도 활엽수가 잘 자란 것을 볼 수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2000년 강원도 고성 산불 피해 지역을 20년 뒤인 지난 2020년 5월의 모습. 사진에서 도로 오른쪽 소나무를 조림한 지역은 물론 자연 복원이 진행되도록 한 왼쪽도 활엽수가 잘 자란 것을 볼 수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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