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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노재팬 이해돼" "러도 옷 입어야지" 유니클로가 사는 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1등 브랜드를 향한 도전을 다시 시작합니다.”
최근 야나이 타다시(73)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언하며 회사 홈페이지에 밝힌 메시지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일본기업이다.

지난해 11월 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국 베이징에 문을 연 유니클로 글로벌 대표매장(플래그십 스토어)을 구경하려는사람들에게 직원이 일회용 비옷을 나눠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국 베이징에 문을 연 유니클로 글로벌 대표매장(플래그십 스토어)을 구경하려는사람들에게 직원이 일회용 비옷을 나눠주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업이 세계 1등이 되기 위해 잡아야 하는 시장은 크게 미국과 중국이다. 유니클로는 일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중국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적·정치적으로 잦은 마찰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성과다.

중국 매장수, 이익 급성장 

지난 14일 기업의 반기(2021년9월~2022년2월) 실적발표에 따르면, 유니클로 해외 사업부문인 ‘유니클로 인터내셔날’ 매출은 1년 전보다 13.7% 증가해 약 5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약 9700억원으로 49.7% 급증했는데 특히 중국이 이익의 55%를 차지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직전 회계연도(2020년 9월~2021년 8월)를 봐도 유니클로는 전체 매출의 약 4분의1을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이는 북미와 유럽을 합친 판매량의 3배에 달한다. 중국의 매출 비중은 최근 29%까지 높아졌다. 유니클로 중국 매장수는 860개 이상으로 경쟁사인 스웨덴의 H&M(약 400개)의 두 배가 넘고, 기업의 본거지인 일본(806곳)보다 많다.
업계에선 유니클로가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 등 소득이 높은 도시에 집중적으로 매장을 내고 화려한 디자인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기능성 의류를 강조한 점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결같은 ‘정치적 거리두기’

하지만 이에 더해 정치적 문제에 말을 아끼는 일명 ‘전략적 모호성’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유니클로는 미국과 중국의 ‘신장 갈등’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외국 브랜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강제노동으로 면화를 생산하고 있다며 인권 문제를 제기해 중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해 나이키와 H&M 등 패션기업들은 신장 면화를 쓰지 않겠다며 나섰고 중국에선 외국 브랜드 불매운동이 일었다.
하지만 야나이 회장은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싶다. 미국의 방식은 기업이 충성을 보이도록 강요하는건데 그런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지난해 10~12월 중국에서 나이키와 H&M의 매출이 각각 19.8%, 38.7% 빠지는 동안에도 유니클로는 0.9% 감소에 그쳤고, 회계연도 전체로는 전년 대비 17% 고성장했다.

‘신장 사태’에 희비 엇갈린 의류 기업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신장 사태’에 희비 엇갈린 의류 기업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 ‘노재팬’에도 “이해된다”

야나이 회장은 앞서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에서 ‘노재팬’ 불매운동이 일었을 때도 “한국과 싸우려고 드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한국인이 일본에 반대하는 것도 이해된다”며 중립적 입장을 밝혔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선 “러시아 국민들도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며 러시아 내 매장 운영 의지를 밝히다 지난달 철수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한 여성이 모스크바의 문을 닫은 유니클로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H&M, 자라(Zara), 맥도날드, 이케아 등도 러시아 영업을 중단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한 여성이 모스크바의 문을 닫은 유니클로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H&M, 자라(Zara), 맥도날드, 이케아 등도 러시아 영업을 중단했다. AFP=연합뉴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이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의 핵심가치를 강력하게 주장해 충성 고객을 확보하거나, 반대와 지지를 뚜렷이 밝히지 않으면서 시장별로 자신을 소구하는 전략이 있는데 유니클로는 전형적인 후자”라고 분석했다. 이어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고 변화가 빠를 때는 ‘선택과 집중’보다는 이런 ‘전략적 모호성’이 생존전략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보다 ‘일상’ 각인 노력 

실제 유니클로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철저하게 ‘라이프’ 전략을 쓰고 있다. 나의 삶과 일상에서 만족감을 주는 옷이란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9년부터 1년에 두 번씩 『라이프웨어』 종이잡지를 내고, 여행·음식·예술 등과 옷을 연결한 문화 콘텐트를 선보이고 있다. 최신호의 주제는 ‘옷을 입는 즐거움’으로 문화계 인사들, 시민들과 토크쇼도 열었다.

지난해 12월 유니클로 신사점에서 고객들이 발달장애인 아티스트의 팝업 전시회를 감상하고 있다.[사진 유니클로]

지난해 12월 유니클로 신사점에서 고객들이 발달장애인 아티스트의 팝업 전시회를 감상하고 있다.[사진 유니클로]

김지훈 유니클로 홍보실장은 “매장 수를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지난해 신사점 매장에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것처럼 특색을 살린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 선보일 예정”이라며 “옷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 그 의미를 느끼게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실적도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다. 유니클로 국내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5824억원, 영업이익은 529억원으로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실적발표에 따르면 한국에서 올 1분기 수치들도 개선됐다.

앞으로는 북미 시장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현재 56개 수준인 매장을 5년 안에 200개로 늘리고 매출목표를 2조9000억원으로 올렸다. 이와 관련 골드만삭스는 “북미에서 최근 ‘라이프웨어’ 컨셉트의 유니클로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향상됐다”며 그 이유로 ▶현지  소비자 니즈 반영 ▶플리스(후리스)·에어리즘 등 주요 제품의 품질과 가치 강조 ▶ 사회 유명 오피니언 리더를 활용한 마케팅 등을 꼽았다.

어떤 장애물 있나 

유니클로를 탄생시킨 야나이 타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사진 중앙포토]

유니클로를 탄생시킨 야나이 타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사진 중앙포토]

효과적인 ‘정치적 거리두기’ 전략에도 세계 1등으로 길이 쉽지 만은 않다. 당장 미·중 갈등, 영토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점점 심화하는 모양새라 일본에 뿌리를 둔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국에서 언제든 불매운동이 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유니클로는 해외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가격과 품질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권·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다이로 무라타 JP모건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 시장의 성과가 예상에 못 미치고, 아시아 기존 매장의 성장세가 유지되지 못한다면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며 “세계 경제의 변화에 따라 엔화 강세, 달러 및 중국위안화 약세 등이 나타날 경우 해외 매출 비중이 큰 유니클로에겐 불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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