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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거꾸로 시계 돌릴 셈인가 [Law談-김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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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수십 년간 직접수사를 통해 범죄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기여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 중에는 대선자금 수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국민의 일상과 관련한 것들이 더 많았다. 기업의 불법 비자금을 수사해 기업이 대주주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었고, 보조금 비리를 수사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애썼다.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추진중인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검찰의 대응이 계속되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추진중인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검찰의 대응이 계속되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대형 금융 비리 수사에도 치중해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국민의 보건과 밀접한 사안도 수사했으며, 론스타와 같은 국부유출 사건이나 국가기술유출 사건도 수사했다. 그뿐 아니라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직접 보강 수사하는 과정에서 뺑소니 차량의 진범을 찾아내거나 피의자가 억울하게 무고당한 사실을 밝혀낸 사례도 적지 않다.

단순 변사 사건으로 묻힐뻔한 사건의 살인범을 기소해 피해자의 한을 풀어준 사건들도 있었다. 검찰이 이처럼 범죄 수사의 전면에서 나름의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은 국민의 요구에 자연스럽게 따른 측면이 크다. 덕분에 검찰은 특화된 수사의 전문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수사 시스템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임박한 것 같다. 형사소송법 등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검찰은 모든 수사 권한을 한순간에 박탈당한다. 대형 비리가 발생하더라도 검찰은 수사에 나설 수 없고, 국민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 피해를 호소할 수 없으며, 경찰 수사에 미진함이 있더라도 검찰이 다른 관점에서 한번 더 사건을 수사해 줄 것을 요구할 수도 없다.

반면 경찰은 검사를 능가하는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하면 검사가 이를 사실상 시정할 방법이 없고, 종전 10일보다 더 오래 20일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으며, 법원의 구속 심문에 경찰이 출석해 판사에게 의견을 진술할 수도 있다. 헌법상 영장청구의 주체는 검사임에도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신청을 받아야만 한다. 경찰이 수사뿐 아니라 경찰의 수사를 통제해야 할 사법관으로서 권한까지 스스로 행사할 수 있으니 개정안 내용에 의하면 우리 사법제도는 당시 수사 경찰의 폐해가 극심했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사법 선진국에서 이와 같은 입법이 가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수완박 개정안은 지금까지 사법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이 누려왔던 권리마저 일거에 없애버리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검찰을 혼내려다 애꿎게 국민만 피해를 입게 됐다. 국민은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경찰 대신 법률 전문가인 검찰이 수사해주길 바랄 권리가 있고, 사회적 물의가 된 사건을 검찰이 명쾌히 규명해 의혹을 해소해주길 바랄 권리도 있다.

검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엉뚱하게 국민이 권리를 박탈당할 위기임에도 정작 국민은 검수완박의 논의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어 문제이다. 검수완박 추진에 앞서 국민의 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사실 그대로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본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검수완박' 법안 입법과 관련한 의견 발표를 마치고 국민의힘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검수완박' 법안 입법과 관련한 의견 발표를 마치고 국민의힘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검수완박을 주장하는 분들은 검수완박이 되더라도 중대범죄대응 공백의 우려가 없고 검찰 공화국 대신 경찰 공화국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과연 확실한 대책은 마련돼 있는가? 지난해 1월 수사권 조정 시행 이후 사건이 검찰과 경찰을 의미 없이 오가는 사이 피해자의 권리 구제는 늦어지고 경찰의 사건 적체는 심해지는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까지 모두 경찰이 떠맡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복잡한 회계부정이나 금융 비리 등 수사의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확보하기 어려운데 경찰은 과연 어느 정도로 준비가 돼 있는가?

검수완박은 그 파급효과가 너무 커서 경솔히 서두를 일이 결코 아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면 동시에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를 재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개혁이란 검찰과 경찰이 그간 잘 해왔던 일을 각자 더 잘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된다. 지난해 시행된 개정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니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정 제도에 대한 보완부터 진행하는 것이 순리라 할 것이다.

로담(Law談) 칼럼 :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

주식인구 800만, 주린이 2000만 시대.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자본 시장의 현안을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장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도 모색합니다.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도 놓칠 수 없겠죠?

김영기 변호사.

김영기 변호사.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자본시장법)/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전주지검 남원지청장/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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