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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서육남, 편협한 인재풀의 상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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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약 20년 전 일이다. 한 유명 기업의 젊은 오너가 경영권을 쥐게 되자 신입사원 열에 일곱 명 이상을 서울대 졸업자로 뽑았다. 그로부터 수년 후 이 회사는 심각한 인사 혼란에 빠졌다. 누구나 빛나는 일만 하려고 해서다. 그럴 수 없으니 결국 만족하지 못한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다. 그 후 이 기업은 출신 배경이 다양한 지원자를 뽑기 시작해 지금은 탄탄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직에서 누군가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최고 스펙 또는 동질적 인력만 뽑아 놓으면 조직이 돌아가지 않는다. 다양성 부족은 곧 질 낮은 의사결정과 저성과로 이어지기 쉽다.

스펙 좋은 사람만 모여선 성과 못내 #역대 정부 거듭 집단사고 폐해 노출 #다양한 인재 써야 통합하고 성과 내

다양성의 명확한 기준은 없다. 업종이나 조직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어떤 기준이든 동질성이 70%를 초과하면 다양성이 부족한 것으로 본다. 정부 운영에도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배경에도 다양성 문제가 있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만 모이면 반드시 집단사고에 빠져 왜곡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소득주도성장·탈원전·재정 확장 등 무리한 정책이 강행된 것도 확증 편향과 동조화를 일으키는 집단사고에서 비롯됐다. 집단사고는 몰입 상승으로 치닫는다. 몰입 상승은 잘못된 의사결정인 줄 알면서도 밀고 나가는 행동이다. 인간이 늘 합리적인 건 아니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행동경제학으로 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행동경제학에서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주목했다. 그 결과 인간의 합리성을 굳게 믿어 온 전통 경제학의 맹점을 깨부쉈다.

요컨대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오랜 믿음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중세 시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집단사고의 폐해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태다. 지금 푸틴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직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집단사고는 그만큼 위험하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이성을 안정화하는 장치가 바로 다양성이다.

낡은 운동권 논리가 넘쳤던 문 정부의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는 집단사고와 몰입 상승의 부작용을 생생히 보여줬다. 상징적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의 눈물이 아닌가 싶다. 박 대변인은 20대 대선 직후 문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읽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박 대변인은 “당선된 분과 그 지지자께 축하 인사를 드리고, 낙선한 분과 그 지지자들께…”까지 읽어내려가다 감정이 격해져 단상을 떠났다가 6분 뒤 돌아와 메시지 전달을 마쳤다.

굳이 삼권분립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선거 결과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보여야 할 청와대 대변인이 여당 후보의 낙선에 감정이 흔들린 건 왜일까. 심리적 동조화 상태에서 우리 편이 패배했다는 상실감이 가슴을 쳤을 터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런 위험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서육남’(서울대, 육십대, 남자) 내각이 그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총리를 포함해 후보자 19명 중 10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평균 60.5세로 남성이 16명이다. 이렇게 다양성이 무너진 내각이 근래 있었던가.

문 정부의 캠코더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과 박근혜 정부의 ‘성시경’(성균관대, 고시, 경기고)은 정권에 위기가 와도 귀를 닫는 배경이 됐다. 곧 출범하는 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심각한 이해상충 문제를 드러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벌써 감싸고 있지 않나. 윤 정부는 이런 편협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신 배경과 목소리가 다른 구성원이 모여야 사회 통합과 화합이 가능해지고 성과도 올라간다. 동질적인 집단은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렵고 위기 관리에 취약하다는 점도 기억하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1차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수어통역사 제외) 원희룡 국토교통부, 김현숙 여성가족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윤 당선인, 이종섭 국방부, 이창양 산업통상부, 정호영 보건복지부, 이종호 과학기술정통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1차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수어통역사 제외) 원희룡 국토교통부, 김현숙 여성가족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윤 당선인, 이종섭 국방부, 이창양 산업통상부, 정호영 보건복지부, 이종호 과학기술정통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명단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명단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윤 당선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화통역사, 한화진 환경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자. 인수위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윤 당선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화통역사, 한화진 환경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자. 인수위 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