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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고령화의 그늘…청각·신장 장애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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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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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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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부산광역시·44)씨는 19일 오후 부산의 한 의료기관에서 혈액투석(신장투석)을 받고 있었다. 혈액투석이란 신장 기능이 떨어져 의료 장치로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치료다. 전화기로 전해오는 김 씨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4시간에 걸쳐 피를 전부 빼내 거르고 몸으로 주입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다. 그는 지난해 7월 신장투석 치료를 시작하면서 말기 콩팥병 환자가 됐고 신장장애인으로 등록했다.

“당뇨병,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김 씨는 유전적 요인으로 대학에 들어가면서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별다른 증세가 없었으나 3년 전 악화해 신장투석 환자가 됐다. 김 씨는 사회생활을 하며 짜고 단 음식을 많이 먹었고 식사가 불규칙했다. 그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내 탓”이라며 “잘 관리했더라면 악화 시기를 늦출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한탄했다. 김 씨는 “당뇨병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 예전에 깨달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신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지난달 말 현재 신장이식 대기자는 2만 9530명에 달한다(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통계).

고령화시대 장애발생 양상 달라져
당뇨·고혈압 폭발로 신장장애 급증
작년 청각장애가 지체장애의 두 배
식습관 바꾸고 보청기 착용 늘려야

부산 투석전문의 이동형 원장이 환자에게 신장 투석 치료를 하고 있다. [사진 범일연세내과]

부산 투석전문의 이동형 원장이 환자에게 신장 투석 치료를 하고 있다. [사진 범일연세내과]

당뇨병 환자가 폭발하면서 신장장애인이 크게 늘고 있다. 또 교통사고 감소 등의 여파로 지체장애인은 줄고, 급속한 고령화 탓에 청각장애인이 급증한다. 전문가들은 난청 증가가 치매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의 날(20일)을 맞아 19일 관련 통계를 내놨다. 지난해 말 기준 정부에 등록한 장애인은 264만 4700명이다. 전체 인구의 5.1%이며, 매년 5% 늘고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은 신장장애인의 증가이다. 지난해 신규 등록장애인 8만 6957명 중 신장장애인은 8948명이다. 장애 유형별로 보면 네 번째로 많다. 김정희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본부장은 “교통사고나 사건·사고가 줄고 도로가 좋아지고,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지체장애인은 줄지만 고령화로 인해 청각장애인이 늘고 질병 증가로 신장 장애인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 멀리해야 당뇨예방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연세내과의원 이동형 원장(투석 전문의)은 “혈액투석·복막투석을 하거나 신장이식을 받으면 신장장애인이 된다”며 “혈액투석을 하는 이유의 절반은 당뇨병 때문이고, 30%는 고혈압 때문”이라며 “한국인의 3분의 1이 당뇨병 환자이거나 당뇨병 전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신장장애인이 더 늘 것”이라고 말했다. 당뇨병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에다 식생활 서구화 때문이다. 비만이 주요 요인인데, 코로나19로 인해 비만 인구가 더 늘어났다. 이 원장은 “한국인의 염분 섭취량이 권고치의 3~5배이다. 설렁탕 국물에 이미 소금이 들어있는데 또 소금을 친다. 김치·된장찌개에다 잦은 외식이 당뇨병과 고혈압의 위험 요인”이라며 “맛있는 음식은 맵고 짠 경우가 많아 이런 걸 덜 먹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지난해 유형별 신규 장애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유형별 신규 장애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신장장애인협회 김세룡 회장은 “팬데믹에 대비해 신장장애인 지정병원을 만들고, 이동 차량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에 따르면 신장장애인의 70%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일하기도 힘들다. 김 회장은 “신장장애인은 면역력이 약해 일반 복지관에 가기 힘들다. 대다수가 집에 고립돼 우울증을 앓는다”며 “신장장애인에게도 활동보조사를 지원하고 쉼터나 복지관을 설치하며 조혈(造血)용 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 연령 분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청각 장애인 연령 분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신규 등록장애인 중 청각장애인이 2만 8525명(32.8%)으로 가장 많다. 원인은 노인 인구 증가와 기대수명 증가다. 초고령화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서울 강남구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이제연 이비인후과과장은 “30대 중반부터 청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 60세가 되면 30~40%에게, 80세 이상은 80%에게 난청이 온다”며 “오래 사니까 과거에 겪지 않은 난청이 오고 청각장애인도 늘어난다”고 말한다. 서울 은평구 이모(74)씨는 65세에 목사를 은퇴했다. 60세에 난청이 와서 5년간 주변 도움 없이는 교인을 상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 차례 보청기를 바꿨지만 잘 끼지 않는다. 다른 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어울리지 못하고 손자의 전화를 잘 알아듣지 못해 부인이 거들어야 한다.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동창회·교회 모임에 아예 못 나갔다. 자녀들이 우울증 치료를 권하지만 거부한다.

난청환자 치매 걸릴 위험 5배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홍주 교수는 “난청이 오면 다른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대화를 못 하니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정서적 우울증이 생기고 뇌 기능이 떨어져 인지 능력이 감소하고 치매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난청이 없는 사람은 난청 환자보다 3년 더 기억할 수 있다. 난청이 있으면 치매 위험이 5배 높고, 적당히 못 듣는 경우에도 두 배 높다”며 “듣는 데 불편을 느끼면 보청기를 써야 하고, 그게 도움이 안 되는 심한 난청환자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면 청력이 개선된다”고 말했다. 이제연 과장은 “난청으로 인한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보청기이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바로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실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