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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명의 파시오네

우크라이나를 돕는 예술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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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우크라이나의 영광도 자유도 아직 죽지 않았다./형제여 운명은 아직 우리를 보며 웃을 것이다./우리의 원수들은 햇볕에 이슬처럼 멸망하리니/형제여 우리는 사랑하는 땅을 통치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가 중)

지난 10일 서울 소월아트홀. 20여 명의 국내 중견 성악가가 참여한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 자선음악회’에서 우크라이나 국가가 울려 퍼졌다. 롯데콘서트홀에서도 함신익의 지휘로 우크라이나의 국가가 연주됐다. 공연에 참석했던 드미트로 포로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자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자 기립했고, 모든 관객도 함께 일어나며 경건한 마음을 보탰다.

국내 음악가들의 연대 잇따라
수익금은 난민돕기에 기증해
젤렌스키 외면한 한국 의원들
6·25의 아픔 벌써 잊은 것인가

지난 2월 2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문화예술계의 운동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예정에 없던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했고 러시아 대사관이 있는 정동길에서도 이화여대 교수와 재학생이 우크라이나 국가를 들려주었다.

이화여대 음대 교수와 학생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정동길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화여대 음대 교수와 학생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정동길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젊은 예술가들도 유학생들과 함께 ‘집으로’ 음원을 발표하며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에 나섰다. 이번 기획을 총괄한 오태현 써밋플레이 대표는 “‘집으로’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도움을 주려고 제작한 곡이다. 음원 수익금은 전액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기부된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연주회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키는 드레스로 연대를 표현했고, 세종문화회관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의 빛(Peace Light)’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지난 12일 언론을 통해 몇장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국회의원 60여 명이 참석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 연설 장면이었는데, 빈 객석이 훤히 보이는 사진이 독일 언론에 보도되며 우리나라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러시아의 루킨 교수는 자신의 SNS에서 아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라며 한국에서 러시아산 킹크랩 가격이 떨어지자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맛있는 해산물이 동유럽에서의 전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루킨 교수의 성급한 일반화와 삐뚤어진 사회관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의 터무니 없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한 대한민국 국회 또한 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양한 국가에서 화상 연설을 하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해왔다. 그의 화상 연설이 진행된 국회의사당은 늘 가득 찼고,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40여 명의 국회의원이 오지 않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기립박수는 없었다.

2020년 11월 11일 턴 투워드 부산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식에 초대돼 애국가를 부른 적이 있다.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11개국 2300여 명의 유엔 참전용사가 잠들어 있는데, 턴 투워드 부산 유엔 참전 용사 국제추모식이 거행되는 11월 11일 11시에는 세계 각국에서 부산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며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 참전용사들을 위해 경의를 표한다. 전 세계가 기억하는 6·25 전쟁을 우리나라 국회만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19로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회적 지원에 나선 예술인들의 활동은 큰 감동을 주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드미트로 포로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 한국의 문화예술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돼 우크라이나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연주되는 우크라이나 국가는 민족주의 시인 파울로 추빈스키의 시로 만들어졌다. 예술의 힘은 이렇듯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연대를 맺게 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 효과를 가져온다. 반전과 평화를 위한 전 세계적인 예술연대 운동을 응원하며 우크라이나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