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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 혼란 책임져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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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스스로 밝힌 수사권 원칙에 반해

거부권 뜻 밝혀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은 때론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 김오수 검찰총장과의 70분간 만남도 그랬다. 한 차례 면담 요청을 뿌리쳤다가 김 총장이 사표를 쓴 후에야 시간을 냈다. 공교롭게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가 아닌 소위에 직회부하는 편법을 쓰며 강행 절차에 돌입한 날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검찰의 수사 능력을 신뢰하는 것은 맞지만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며 검수완박에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동시에 “개혁은 검경의 입장을 떠나 국민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 국회의 입법도 그러해야 한다”며 민주당을 향한 주문인 듯한 말도 했다. 검수완박을 놓고 교묘한 줄타기 화법을 쓴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와 일부 지지층을 제외하면 검수완박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19년 만에 평검사 회의가 열리는 등 검찰 내 반발 강도가 높아지고, 업무가 늘어날 것을 우려한 일선 수사 경찰들의 불만 토로도 이어지고 있다. 법원이 국회에 “경찰의 과잉수사나 부실수사 위험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결국 수사와 기소를 최종적으로 통제하는 법원 공판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공판을 통한 정의의 실현’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을 냈을 정도다.

결국 혼란을 정리할 사람은 문 대통령뿐이다. 국정 책임자로서 또 원인 제공자로서 말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돼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낳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문 대통령 의지의 산물이다. 취임 때부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도했고, 2020년 초 민주당이 “청와대 뜻”을 앞세우며 강행 처리했다. 직후 문 대통령은 “형사사법 체계가 해방 이후 처음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반기며 제도 안착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국민을 위해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고, 수사와 기소의 성역을 없애 국가 사정기관을 바로 세우며, 국가 수사 기능의 총량을 줄어들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문 대통령은 검수완박에 반대해야 한다. 검수완박 법안이 경찰에 과도한 권한을 주며 검찰의 통제까지 없애고 국가 수사 총량을 크게 줄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명확하게 말해야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계속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 문 대통령의 묵시적 동의하에 법안이 처리된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검수완박으로 벌어질 모든 혼란에 대한 책임도 문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다. 그 책임은 퇴임 후에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검찰과 국회에 두루 주문하는 듯한 줄타기 화법으로 얼버무린다고 책임을 면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