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정희 사퇴, 선관위 불신 해소 계기로 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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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8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2018년 7월 2일 김명수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 후보로 문재인 대통령에 임명 제청됐다. 2020년 11월 2일 권순일 대법관 후임으로 여성 최초 중앙선관위원장이 됐지만 지난 대선 관리 부실로 결국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8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2018년 7월 2일 김명수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 후보로 문재인 대통령에 임명 제청됐다. 2020년 11월 2일 권순일 대법관 후임으로 여성 최초 중앙선관위원장이 됐지만 지난 대선 관리 부실로 결국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바구니 대선’ 책임자의 뒤늦은 사퇴  

6·1 지방선거 앞두고 환골탈태해야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물러나겠다는 뜻을 그제 밝혔다. 3·9 대선의 사전투표 관리 부실로 사퇴 여론이 비등한 지 44일 만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무책임한 언행을 비판할 정도로 노 위원장의 처신은 공분을 일으켰다. 그가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슬그머니 사의를 밝힌 것은 유감이다.

노 위원장은 그제 선관위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사전투표 관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지난달 17일 “더 잘하겠다”며 자리를 지키려던 노 위원장의 사퇴는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노 위원장 체제에서 치른 지난 대선 관리는 선관위 역사에 큰 오점으로 기록될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쌓은 신뢰가 일순간 땅에 떨어졌고, 선관위의 핵심 가치인 선거 관리의 공정성도 총체적으로 의심받았다.

선관위는 대선 당시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10만 명을 넘나드는 위기 상황에서 확진자와 격리자가 뒤섞이면서 벌어질 혼란을 간과했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고, 혼선을 줄이기 위한 대비도 부실했다. 사전투표 때는 확진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직접 넣지 못하고 투표사무원에게 전달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쇼핑백·바구니·택배박스 등에 담긴 투표용지가 노출되면서 ‘바구니 대선’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노 위원장의 처신은 공분을 키웠다. 비상근이고 휴일이란 이유로 사전투표 혼란이 벌어진 이틀간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김세환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은 사전투표 난맥상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 자리에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봉투에 넣도록 요구한 참관인에게 이의를 제기한 행동을 “난동”이라고 비하해 물의를 일으켰다. 김 총장은 강화군청에 근무하다 인천선관위로 이직한 아들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달 16일 결국 사퇴했고, 아들의 해외 출장과 관사 입주 과정에 부적절한 업무처리가 있었던 사실이 선관위 내부 감찰로 드러났다.

지금처럼 정치 진영의 분열이 심각한 상황에서 선관위는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 관리 역할을 이행해야 한다. 심판인 선관위가 불공정하다고 의심받으면 자칫 선거 불복과 정치적 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피어나기 어렵다. 신임 선관위원장은 여야 모두 수긍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인물에게 맡겨야 한다.

다가오는 6·1 지방선거는 선관위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제2의 바구니 선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확진자 투표 대책도 점검하기 바란다. 선관위가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 나갈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