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FT가 왜 안타까운 일인가, 난 희망을 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보화각 앞에 선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이 건물은 1938년에 지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보화각 앞에 선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이 건물은 1938년에 지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보화각)이 모처럼 관람객으로 붐빈다. ‘보화수보(寶華修補)―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전(6월 5일까지, 예약 필수)을 보러온 사람들이다. 간송미술관에서 7년 만에 열리는 전시이자 보화각 보수 정비 전 마지막 전시다. 김홍도의 ‘낭원투도(閬苑偸桃)’, 장승업의 ‘송하녹선(松下鹿仙)’, 조선 중기 화원화가 한시각의 ‘포대화상(布袋和商)’ 등 지정문화재에 버금가는 명품 32점이 나왔다. 최근 2년간 문화재청의 ‘문화재 다량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을 통해 보존처리를 마친 150점 중 먼저 엄선한 작품이다.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례적이다. 2020년 간송의 보물 불상 2점이 경매에 나온 데 이어 지난 1월 간송의 보물 2점이 또 경매에 나와 논란이 일었을 때도 그는 침묵했다. 이날 전 관장은 “(경매 건은) 팔을 끊어내는 듯한 심정으로 했던 일”이라며 “앞으로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의 궁금증이 다 해소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전 관장에게 따로 추가 질문을 던졌다.

신사임당(1504-1551)의 ‘포도’. [사진 간송미술관]

신사임당(1504-1551)의 ‘포도’. [사진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 재정이 왜 그리 어려워졌나.
“재정은 늘 부족했다. 간송미술관이 호암미술관이나 호림미술관처럼 모기업이나 수익형 재산이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간송(전형필·1906~62, 관장의 조부)이 돌아가시고, 65년 아버지(전성우·1934~2018)가 미국에서 귀국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만드셨다. 71년부터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보화각을 개방했다. 아버지도 부동산을 하나둘 처분하며 운영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대출 규제가 심해 이후 운영이 더 어려워졌다.”
소장품이 두 차례나 경매에 나왔다.
“가장 큰 오해다. 경매가 두 번에 걸쳐 이뤄졌지만 사실은 한 번에 4점을 내놨다.”
심사정(1707~1769)의 ‘삼일포’. [사진 간송미술관]

심사정(1707~1769)의 ‘삼일포’. [사진 간송미술관]

재정난 해결에 ‘경매’ 방식밖에 없었을까.
“다른 방법을 알아보지 않은 게 아니다.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려고 뛰어봤다. 끝내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간송의 소장품이라는 걸 부담스러워한 분도 있었고, 저희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도 많았다. 경매가 비교적 투명하게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없는데 왜 어렵냐는 비판도 있다.
“상속세가 없는 건 맞다. 그런데 간송소장품이 모두 지정문화재는 아니다. 소장품이 약 1만 8000점(연구자료 포함 약 2만점)인데 그중 지정문화재는 50여종에 불과하다. 2013년 재단 설립 후 재단 재산 증가분(소장품)에 대해 취득세를 내야 했다. 세율이 높지 않아도 다 합치면 적지 않다.”
김홍도(1745-1806)의 ‘낭원투도’. [사진 간송미술관]

김홍도(1745-1806)의 ‘낭원투도’. [사진 간송미술관]

1월 경매에서 유찰된 ‘금동삼존불감’을 블록체인 커뮤니티 ‘헤리티지 다오(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 zation)’가 구매해 지분 51%를 간송에 기부했다. ‘기묘한 거래’라는 말도 있다.
“저희 입장에선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이번 기회에 저도 ‘다오’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 계약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고, 이게 굉장히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가 있더라. 수익 목적 투자기금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목적을 위해 기금처럼 만들어질 수도 있다.”
100% 기증은 아닌데.
“그래도 간송이 우세 지분이라 앞으로 소장품 전시 등 활용하는데 전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것으로 이자가 높은 부채를 덜어내는 데 크게 도움됐다.”
앞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개당 1억원에 100개 한정 NFT(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로 발행했다. 그래도 국보인데.
“반대로 묻고 싶다. 훈민정음이 NFT로 나온 게 안타까운 일일까. 대체 불가능한 그것을 누가 소유한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온라인상에 복제본이 만들어지고, 그 100분의 1을 누군가가 소유한다는 게 나쁜 일일까. 어쨌든 구매한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고, 그것을 알리려고 노력하지 않겠나. 오히려 앞으로 이 NFT의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6월 5일까지 작품 없이 보수·복원 공사에 앞서 작품 없이 비워둔 채 공개되는 보화각 2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월 5일까지 작품 없이 보수·복원 공사에 앞서 작품 없이 비워둔 채 공개되는 보화각 2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 관장은 “일종의 후원회원 모집 개념으로 시도했고, 구매한 대다수가 20~30대다. 이 NFT는 절반 정도 판매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착공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에 국비와 지방비 400억원이 투입됐다. 비지정문화재 197점 보존처리·훼손예방에도 국비·지방세 12억원을 지원받았고.
“그 400억은 우리가 아니라 대구시가 받은 거다. 대구시는 미술관을 지어 저희한테 운영 영역을 주는 거다. 소유권은 저희와 상관이 없다. 저희에겐 간송의 콘텐트가 더 폭넓게 활용이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 계획은.
“이번에 번듯한 수장고도 갖췄고, 지은 지 80년 넘은 보화각도 보수·복원 공사에 들어간다. 간송의 미래는 간송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팬 커뮤니티에 달렸다. 우리 전통문화를 아끼고 사랑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커뮤니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