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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의 한은 방향성 "인기 없어도 금리인상 신호 주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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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는 계속 올리겠지만, 속도는 조절하겠다.' 통화정책이란 거함의 키를 쥐게 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밝힌 정책 방향은 이렇게 요약된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가계 부채, 경기 둔화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그의 고민이 묻어났다.

이 후보자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인사청문회에서 “물가 상승이 앞으로 1~2년은 계속될 것”이라며 “지금은 인기가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 신호를 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속도 조절의 가능성은 열어뒀다.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오는) 5월과 7월 금리 결정에서는 데이터를 보고 성장과 물가 양자를 균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날 기재위는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표결 없이 채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오전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오전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중앙은행의 수장으로 그가 풀어야 할 첫번째 숙제는 물가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4.1% 상승했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최대로 올랐다.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은 2.9%로 2014년 4월(2.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면 임금 인상 등을 통해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2차 효과가 발생한다.

해외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미국 CPI 상승률(전년동기대비 8.5%)이 4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보다 8.3% 뛰며 '인플레 수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옮겨올 수 있단 이야기다.

이 후보자도 “물가 상승이 앞으로 1~2년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2월 전망치(3.1%)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커지는 물가 상승 압력을 누르기 위해 "인기는 없더라도 시그널(신호)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했다. 금리를 계속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물가를 잡겠다고 무작정 금리를 올릴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 속 급증한 가계 빚(1862조원)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은 1756조원, 자영업자 대출은 909조2000억원에 이른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13조원,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6조4000억원 증가한다. 이 후보자는 “더 이상 부채가 늘어나는 건 국민 경제 전체에 좋지 않다”며 “영끌족이라든지 돈을 많이 빌려 쓴 갭투자들에게 당장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금리 인상)신호를 줘 가계부채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늘어난 이자 부담을 가계나 자영업자가 감당하지 못하면 금융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가 “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금리 인상 시그널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은의 금리 정책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종합적인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식고 있는 성장 동력도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2030년 1.9%, 2030~2060년 0.8%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낸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 기준금리를 더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물가냐 경기냐를 놓고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후보자는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 구조로 가지 않게 막아야 하는 구조적 노력을 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이 후보자의 통화정책 퍼즐 맞추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긴축에 가속을 내는 미국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중국 등의 상황도 계산에 넣어야 해서다. 인플레 압력에 시달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5·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미 금리 역전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단 이야기다.

이 후보자는 “금리 역전 시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 같지만, 원화 가치가 절하돼 물가 압력으로 올 수 있다”며 “(금리) 격차를 너무 크지 않게 하면서도 경제 상황을 보면서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하는 미세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전됐을 때 생기는 부작용은 걱정스러운 상황이지만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만의 통화정책 속도'를 강조한 건 이유가 있다. 이 후보자는 “한국의 성장률이 미국보다 견실한 상황이 아닌 만큼 미국보다 조심스럽게 속도를 내야 한다”며 “한국 경제는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갑자기 충격이 와서 경기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에 대한 입장도 피력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관련해 그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미시적 정책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별적 보상”이라면서도 “추경 양이 매우 커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이를 어떻게 조절할지 한은도 관여하겠다”고 말했다.

대출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시행되면 물가나 거시경제 상황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과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서민 주택 가격 안정과 공급"이라며 "세제를 통해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전제했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해서도 “점진적으로 올라갔다면 오히려 이 기간(문재인 정부 때)에 최저임금이 더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처음에 너무 많이 올라서 자영업자에 부담을 줬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오히려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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