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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도망, 뽕 취한 신임만 있는데 웬 검수완박" 경찰의 자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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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는 신임들 수사 ‘뽕’ 취해 있을 때 앉혀 놓고, 베테랑들은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타 부서로 다 도망가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게시된 한 글이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자신을 현직 경찰이라 소개한 글 작성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누구보다도 반대하는 건 경찰들”이라며 “‘수사 탈출은 지능 순’이란 말을 달고 사는 게 지금 수사부서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수사 업무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이 아직 깨지지 않은 신입 경찰관들만 남으려 한다고 자조한 것이다. 그가 전한 ‘수사부서의 현실’은 수사관 1명당 사건 50~200건을 맡아 업무가 과중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순번 정해서 탈출할 정도로 수사 기피가 심각해서 현재 경찰 수사 조직은 붕괴되기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 경찰청에서 경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소재 경찰청에서 경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 경찰 순번 정해 탈출하는데…검수완박?”

일선의 팀장·과장 등 여러 경찰관은 이 글에 공감을 표했다. 이들은 최근 “검수완박 진짜 될 것 같나”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다고 한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수완박까지 더해지게 되면 현장의 업무 부담 무게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 팀장급 경찰관은 “검수완박이 우리에게 주는 건 매일매일의 야근뿐”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망 ‘폴넷’ 에서도 관련 글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정은 “경제팀 등 수사부서 기피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티오(TO·정원)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일하는 부서가 많다”며 “사건은 갈수록 쌓여 가고, 일은 많은데 사람은 없다. 검수완박까지 이뤄지면 그 많은 일은 누가 맡으려 하겠나”고 반문했다. 경찰은 지난해 약 2700명의 수사인력 보강을 행정안전부 등에 요청했지만, 440여명이 증원된 상황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처]

“경찰은 채용 때 형사법만 배우고 들어와” 자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에선 “현실 세상은 단순 폭행·절도같이 간단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고 짚는다. 고도의 사기 범죄, 경제범죄 등 각종 법률이 얽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복잡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건의 예시로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법률 위반 행위가 제시된다. 검수완박이 현실화되면 검찰은 그간 맡아왔던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 수사할 수 없게 된다. 관련 법 정비가 완료돼 경찰이 수사를 맡더라도 환경 조성은 여전히 필요한 과제다.

일선의 간부급 경찰은 “공정거래 사건은 검찰이 그간 수사를 해 왔고, 그만큼 전문성도 있다”며 “인력이나 인프라 등 수사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경찰에 ‘수사하라’고 하면 현장으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선 “채용 때 형사법만 배운 채 들어왔다”며 “복잡한 전문 분야의 영역은 보통 검찰에서 맡아 와서 (경찰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 앞에 검수완박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 앞에 검수완박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내부 의견도 엇갈려…“정치 경찰들이 수뇌부”

경찰의 노조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는 회장단 명의로 “5만3000명의 (직협) 회원들은 수사·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찬성한다”며 성명을 냈다. 이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내부 시선들이 적잖다. 폴넷 등에선 “(직협이) 동의나 합의 없이 경찰 전체 입장인양 쉽고, 성급하고, 간략하고, 가볍게 (입장을) 밝히는 데 우려를 표한다”는 글들이 꼬리를 문다. 직협 연합회 대표 선출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잇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지휘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위는 “지휘부가 가타부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도 어렴풋이 이해는 된다”면서도 “혼란, 불안, 우려 등이 뒤섞인 내부 분위기를 잡아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지휘부에 대한 일선의 불신은 현재진행형이다. 블라인드 글에선 “수뇌부들은 수사 한번 안 해보고 행정·기획으로만 (자리에) 올라왔다”며 “정치 경찰들이 수뇌부”라는 대목도 있었다. 다만 작성자는 “마치 수사에 자부심 있는 사우님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어 미리 사과드린다”며 “제 개인과 일부의 의견이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며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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