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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블랙 먼데이' 이끈 동남아 축구의 역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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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클럽 BG빠툼 유나이티드에 0-2로 완패한 전남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태국 클럽 BG빠툼 유나이티드에 0-2로 완패한 전남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K리그 역사에 남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가 될 것 같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에서 K리그를 대표해 출전한 울산 현대와 대구 FC, 전남 드래곤즈가 일제히 동남아 클럽에 덜미를 잡힌 지난 18일, 한 축구팬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늘을 기억해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동남아시아 축구의 가파른 상승세를 인정하고 더욱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대구가 싱가포르 클럽 라이언시티에 0-3으로, 전남이 BG빠툼 유나이티드(태국)에 0-2로 각각 졌다. K리그 최강 울산마저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에 1-2로 무너졌다. 아시아 프로리그 랭킹에서 꾸준히 선두권을 유지해 온 K리그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동남아 클럽팀에 전패한 건 처음이다. 홍명보 울산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도무지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경기 내용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결선 진출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본선 진출국을 32개에서 40개로 늘렸다. 4팀씩 10개 조가 경쟁한다. 과거에는 각 조 1·2위가 16강에 올랐지만, 이제는 1위 10팀과 함께 2위 중 상위 6개 팀만 토너먼트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조별리그 6경기 중 2경기를 치른 현재 대구(F조)와 전남(G조), 울산(I조)이 모두 조 3위에 머물고 있다. 4경기가 남아 있지만, 예년 같으면 무난한 승리를 기대할 법한 팀들에게 덜미를 잡힌 상황이라 16강행을 낙관하기 어렵다.

동아시아권역 조별리그가 동남아 지역(태국·말레이시아)에서 열려 사실상 원정경기로 치러진 점을 감안해도 K리그 세 팀의 동반 패배는 뼈아프다.

라이언시티의 디에고 로페스(오른쪽)가 대구FC의 돌파를 육탄 저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라이언시티의 디에고 로페스(오른쪽)가 대구FC의 돌파를 육탄 저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동남아시아는 ‘아시아 축구 맹주’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국 축구 DNA’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구를 3-0으로 완파한 싱가포르의 라이언시티가 대표적이다. 과거 싱가포르 경찰청이 창단해 폴리스 FC라는 이름을 쓰다가 홈 유나이티드를 거쳐 지난 2020년 싱가포르 IT기업 SEA그룹이 인수한 뒤 현재의 명칭(라이언시티)으로 바꿨다.

싱가포르리그 내 유일한 기업형 구단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권에서 경쟁하는 팀을 지향한다. 연간 예산도 K리그 구단 평균에 육박하는 200억 원 수준이다. 자국리그 경쟁 팀들과 견줘 2~3배 가량 높은 액수다.

롤 모델은 한국 축구다. 울산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김도훈(52)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중국 수퍼리그 상하이 선화에서 뛰던 1m96㎝ 장신 스트라이커 김신욱(34)을 영입했다. 싱가포르로 귀화해 국가대표까지 꿰찬 한국인 공격수 송의영(29)이 선수단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송의영(가운데)은 싱가포르 최강 클럽 라이언시티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송의영(가운데)은 싱가포르 최강 클럽 라이언시티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송의영은 지난 2012년 여의도고를 졸업한 직후 당시 홈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이임생 감독의 부름을 받아 싱가포르리그에 진출했다. 변변한 이력이 없어 2군에서 출발했지만, 한 시즌만에 1군 주전으로 도약했고, 다시 리그 대표 스타로 발돋움했다.

박지성처럼 많이 뛰는 미드필더였던 송의영은 2016년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뒤 한 단계 더 도약했다. 2018시즌에 20골을 몰아넣으며 싱가포르 귀화 제의를 받았고, 고심 끝에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하자마자 대표팀에 발탁됐다. 12월 스즈키컵에서 싱가포르를 4강으로 이끌며 다시금 존재감을 입증했다.

싱가포르리그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송의영의 성공 스토리가 알려지며 리그 전체에 한국인 선수 찾기 바람이 불었다. 라이언시티가 재창단하며 ‘K리그식 성공 모델’을 청사진으로 정한 것 또한 열심히 뛰고 투지 넘치는 한국 선수들의 경쟁력을 인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가대표팀 상황도 다르지 않다.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박항서 감독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신태용), 말레이시아(김판곤) 등 주요 동남아 국가가 자국 대표팀 지휘봉을 한국인 지도자들에게 맡긴 건 상징적 의미 그 이상이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나타난 클럽팀간 상향평준화 경향이 추후 국가대표팀 A매치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박항서 감독(오른쪽) 이후 클럽 축구 뿐만 아니라 대표팀 사령탑도 '축구 한류' 바람이 거세다. [연합뉴스]

박항서 감독(오른쪽) 이후 클럽 축구 뿐만 아니라 대표팀 사령탑도 '축구 한류' 바람이 거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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