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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질없는 마을도 만들라"…中검열도 손든 '마야부인' 일갈 [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작업자들이 상하이 신국제전람전시센터(SNECC)에 병상 4만개를 설치하며 임시 격리소로 바꾸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8일 작업자들이 상하이 신국제전람전시센터(SNECC)에 병상 4만개를 설치하며 임시 격리소로 바꾸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왜 ‘감기 없는 마을’은 만들지 않나.”
지난 14일 상하이 보통시민을 자처한 네티즌의 항변이다. 부처의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 아이디의 네티즌은 이날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페이지)에 상하이 봉쇄로 숨진 시민의 비극과 봉쇄 행정의 난맥상을 가감 없이 고발한 “상하이 사람의 인내심은 이미 극한에 다다랐다”는 글을 발표했다. 체제 선전 일색인 관영 매체에 짓눌린 중국 네티즌들은 봉쇄 일변도 방역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조에 환호했다. 게재 당일 웨이신의 기존 트래픽 기록을 갈아치우며 2000만 뷰를 기록한 이유다. 검열 당국은 이날 오후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여론의 성토는 가라앉지 않았다. 캡처한 이미지가 다시 퍼져 나갔다. 검열 당국도 백기를 들었다. 문제의 글에 퍼가기 제한을 건채 원문을 되살렸다. 삭제됐던 글이 부활절 주간에 ‘기사회생’했다.
이번 상하이 마야부인의 글은 지난 2020년 우한(武漢) 봉쇄를 기록한 작가 팡팡(方方)의 우한일기, 지난 1월 시안(西安) 봉쇄 당시 독립기자 장쉐(江雪)의 ‘장안십일(長安十日)’의 맥을 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날 ‘상하이의 희생자(上海逝者)’라는 글도 회자됐다. 봉쇄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거나, 상부의 압력으로 자살을 선택한 희생자들의 사연을 모은 글이다. 이글은 삭제당한 뒤 중국의 만리 방화벽을 넘어 해외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다.
다음은 “상하이 사람의 인내심은 이미 극한에 다다랐다”는 글의 한글 번역 전문이다.

상하이 봉쇄 난맥상을 기록한 ‘상하이 사람의 인내심은 이미 극한에 다다랐다’는 웨이신 글에 관련 법률법규 위반을 이유로 퍼가기가 금지됐다는 경고글이 붙어 있다. [웨이신 캡처]

상하이 봉쇄 난맥상을 기록한 ‘상하이 사람의 인내심은 이미 극한에 다다랐다’는 웨이신 글에 관련 법률법규 위반을 이유로 퍼가기가 금지됐다는 경고글이 붙어 있다. [웨이신 캡처]

상하이 사람의 인내심은 이미 극한에 다다랐다

보통시민 마야부인
2022년 4월 14일 0시 50분

현재 상하이 시민은 매일 저녁 냉장고 안을 살피며 걱정 속에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는 남은 먹거리를 비운 뒤 안절부절못하며 ‘상하이발표(상하이 정부 공식 SNS)’ 숫자를 확인한다. 이어 핵산, 항원 검사를 하고, 공동구매를 하고, 원망을 한 뒤 도움을 청한다. 왜 이러는지 이유도 모른다. 하루하루 한계를 시험하는 사건들이다.
다섯 살 난 아들의 아버지이자 상하이 토박이로 치료를 받고 안정 상태였던 암환자가 지난 4월 3일 갑자기 건강이 악화됐다. 응급전화 120번을 걸어 병원을 찾았다. 전날 아파트 단지에서 했던 핵산 검사가 있었다. 병원은 자체 핵산 검사 결과가 있어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결과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한마디다. “엄마, 의사에게 제 핵산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봐 주세요.” 그가 죽은 뒤 두 시간이 지나자 결과가 나왔다. ‘음성’
인터넷에는 상하이의 어떤 구(區) 방역을 담당하는 간부 이야기가 떠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 지식도 갖춘 간부였다. 막대한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사무실에서 목을 매 죽었다고 한다.
막 세상에 태어나 14일 된 아이가 양성 판정을 받은 아빠·엄마와 격리해야 한다면서 홀로 진산(金山) 병원으로 보내져야 했다. 아이 엄마는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겠다며 아이와 떨어질 수 없다고 외치며 버텼다. 출산 후 약한 몸을 이끌고 도움을 호소한 뒤에야 비로소 아이와 함께 격리장으로 보내졌다. 아이에게 엄마 젖을 줄 수 있었다. 신문에서 “양성 확진 가장도 아이와 함께 격리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 벌어진 일이다.
허다한 이웃 주택 단지에 있던 중학교, 소학교가 갑자기 격리병동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은 항의했고, 교사와 학생은 놀랐다. 교사의 책이 학교 안에 가득하고, 반마다 학생의 개인 물건이 있었다. 심지어 기숙 학교는 학생이 머물고 있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번 학기에 다시 개학할 수 있을까? 곧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가 있다. 졸업반 학생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늘 상하이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막 완공된 난후이(南滙)의 격리병동과 가오차오(高橋)의 격리병동 모두 천정에서 비가 샜다. 양성 환자가 격리 중이던 침대와 이불이 모두 흠뻑 젖었다. 빗물에 참혹한 상태가 됐다. 더 심한 것은 격리 병동의 견딜 수 없는 화장실이다. 폭우와 전기가 끊기고 물이 나오지 않아 똥오줌이 넘쳐도 아무도 손보지 않는다. 이러고도 병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데도 사람을 잡아들여 “치료”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환자에게 합당한 대우인가. 왜 인간에 대한 일말의 존엄도 없나?
비상 전화에 전화하고, 주민 위원회를 찾아도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다. “이미 상부에 보고했다.” “상부의 통지를 기다려라.” 참다못한 네티즌들이 스스로 도움을 주고받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상하이 방역 서로 돕기 사이트’(https://www.helpothers.cn/help 해외 IP로는 접속이 안 된다)다. 긴급 상황에서도 기다리기만 하지 않도록 만든 자구책이다. 만일 정부 지도자 한 명이라도 직접 이들의 사연을 보았다면 아무 의미 없는 헛소리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평생을 융캉(永康)로에 살았다는 노인이 갑작스러운 통증을 참지 못해 주민위원회 실무자에게 전화했다. “왜 상하이가 이렇게 변했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분노와 탄식만 나올 뿐이다.
맞다. 왜 이렇게 됐는가. 왜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정부의 요구에 협력했던가. 일을 멈추라면 멈췄고, 외출하지 말라 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매일 핵산 검사를 하라면 매일 검사를 받았다. 한밤중에 다시 핵산 검사를 하라면 한밤중에 일어나 검사를 받았다. 14일이라고 하면 14일을, 다시 7일이라 해서 7일을 견뎠다. 일치단결해 어려움을 극복하라기에 이를 악물고 견뎠다. 직장을 잃으라면 직장을 잃었고, 회사를 닫으라면 닫았다. 방역이 우선이기에 그랬다. 갇혀 있으라면 갇혀 있었다. 과연 결과는 어떤가?
집밖에 못 나간 지 보름, 한 달이 됐다. 하지만 단지 안의 양성 환자는 하나하나 늘어난다. 본래 양성 확진자가 없던 단지가 한 달간 엄격한 봉쇄를 했다. 그래도 양성이 출현했다. 폐쇄 구역에서 해제될 가망이 없다. 통제 구역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봉쇄를 풀었다는 이른바 경비 구역조차 가구 당 한 명, 하루 한 시간 외출이 허락될 뿐이다. 게다가 멀리 나가지도 못한다. 상하이 시민이 모든 방역 요구를 진지하고, 엄격하게 극복했다.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숫자는 여전히 2만 명대에서 변화가 없다.

지난 15일 쑨춘란 부총리가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 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총서기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CC-TV 캡처]

지난 15일 쑨춘란 부총리가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 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총서기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CC-TV 캡처]

모든 전문 의사들이 영원히 끝이 없을 듯한 핵산 검사에 달려나갔다. 대부분의 의료 시스템이 멈췄다. 코로나19 이외의 환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진찰을 받을 수 없다. 수술도 불가능하다. 약을 지을 수도 없다. 응급 전화는 줄을 서야 한다. 긴급 통행증은 발급되지 않는다. 혈액 투석을 받을 차례는 오지 않는다. 화학 치료도 받을 수 없다. 모든 환자가 자신의 구만리 같은 생명을 오미크론 환자 한 명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 동방의원에서 과로로 숨진 저우(周) 간호사부터 120번 응급 전화통화가 안 돼 세상을 떠난 노인의 가족까지 오늘 핵산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숨진 응급 환자, 유명 경제학자의 나이 많은 어머니, 항우울증제 처방을 받지 못한 환자, 그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비통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요한 대국(大局) 앞에 한 톨 먼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다.
정부가 처음에는 나흘만 봉쇄한다고 말했다. 나흘 치 먹거리만 샀던 시민은 이미 먹거리가 없어 허덕인다.
물류 수송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내가 사는 단지에서는 여러 식료품 쇼핑 애플리케이션(APP)이 작동을 멈췄다. 음식을 살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뿐이다. 단지 내 누군가 나서 주민을 모아 꾸린 공동구매에만 기대어 산다. 그것 역시 쌀·국수·기름·야채 구매로 제한된다. 그 이상의 생필품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현재 하루하루 생활 유지를 위해 의지하는 공동구매도 제한이 겹겹이다. “외래 물품이 바이러스를 옮겨오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원봉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유도 가지가지다. 단지 사무소와 주민 위원회마다 공동구매 물품을 심사하겠다고 나선다. 어떤 것은 사도 되고, 어떤 것은 안되는지 자기들이 정하겠다고 한다. 예를 들면 주민 위원회가 주선한 공동구매는 살 수 있다. 주민 스스로 조직한 공동구매는 안 된다. 지정 보급품 제공 기관의 식료품은 되고 개인 회사 식료품은 안된다. 야채는 되고, 커피·과일 등 생필품이 아닌 건 안 된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생필품인가? 어느 누가 사도 되고 안 되는 범주를 결정하나? 한 단계 한 단계 심사와 비준의 연속이다. 권력을 가지고 돈을 뜯어내는 공간은 왜 이리 많은가.
몇 차례 공동구매를 주도하면서 인터넷 시대에서 거의 물물교환 시대로 퇴보했음을 느낀다. 선택은 많지 않다. 구매 신청을 해도 판매상 담당자는 영원히 통화할 수 없는 상대다. 운전기사는 한 성깔 하는 사람들뿐이다. 식자재 품질이 나빠도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못한다. 물건만 온다면 감지덕지다. 가격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15일 리창 상하이 당서기가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 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총서기의 지침을 굳건하게 관철·실천하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CC-TV 캡처]

지난 15일 리창 상하이 당서기가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 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총서기의 지침을 굳건하게 관철·실천하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CC-TV 캡처]

이런 식의 유일한 구매 방법이 공포를 야기한다. 더 두려운 점은 단기간 안에 물건을 구입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인터넷 쇼핑몰인 징둥, 메이퇀을 정부는 민생을 보장하는 플랫폼이라고 발표했다. 현실은 다르다. 영원히 물건을 발송하지 않는 사기꾼일 뿐이다.
당신이 자세히 본다면 상하이 주변의 쑤저우(蘇州), 쿤산(昆山) 등지의 고속도로가 막혔다. 매일매일 핵산 검사 중이다. 이런데 어느 누가 당신의 물건을 발송하겠나. 상하이시가 물자 보장을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엄격한 방역 정책 아래 전국 십여개성의 물자도 영향을 받게 됐다. 위치 추적 코드에 확진자 발생 지역 한 곳만 나와도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트럭 기사가 상하이, 지린(吉林) 성에 화물을 운송한 뒤 돌아가지 못하고 고속도로 위에 머물고 있을까. 이럴 진데 누가 용감히 물건을 나르겠나. 어떤 공급상이 높아진 비용과 리스크를 감당하겠나?
우리는 다시 자유롭게 필요한 간장이나 기름을 골라서 살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은 먹을 것조차 없다. 요 며칠 많은 독거노인이 먹거리가 떨어져 밥 한술을 구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노교수, 노전문가, 문화대혁명을 겪고 조국을 위해 걸출한 공헌한 사람도 적지 않다. 돈이 부족하지 않은 지식분자도 있다. 이들이 2022년에 한 끼 먹을 밥조차 없다. 이 어찌 황당하지 않은가?
우리 방역의 주요 목표는 노인 보호다. 그런데도 밥을 먹지 못하고,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심지어 목숨을 보전 못하는 노인이 생겨난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상하이는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큰 도시다. 도시 안에 손도 멈추고 입도 멈춘 노동자들이 무수하다. 이들은 ‘재택근무’할 방법도 없다. 그들은 독립된 주소도 없다. 거주지 안에서 음식을 만들 여건도 안된다. 위문 물자를 받지 못한다면 오래 버틸 돈도 없다.
만일 우리가 20일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매일매일 핵산 항원 검사를 번갈아 했음에도 양성 확진자 숫자가 계속 치솟는다면,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과 매일매일 핵산검사를 하는 효과는 어디에 있는가?
검사하는 의사, 주민 위원회, 관리 사무소 모두 과부하 상태다. 기층 일선은 이미 자기 능력을 뛰어넘는 임무와 지령, 욕설을 뒤집어쓰고 있다. 상층부가 조령석개(朝令夕改)식으로 멋대로 지시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문 앞까지 서비스”를 외칠 때 그들은 처지를 바꿔 일을 대신할 사람을 마련할 생각이나 해 봤을까?
그저께 기자 회견장에 나온 한 민정국 간부가 무슨 ‘혜민(惠民) 정책’을 발표했다. ‘코로나 없는 단지’ 만들기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감기 없는 단지’ ‘에이즈 없는 단지’ ‘치질 없는 단지’는 만들지 않는가?
양성 확진자가 죄를 지었나? 양성이라면 고의로 감염된 건가? ‘코로나 없는 단지’는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나? 지금 서두르면 비 오는 날 똥오줌이 넘치는 격리 병동에 안심하고 머물 수 있을까? 마을 주민끼리 서로 불행하게 감염되어 양성이 나온 주민을 원망하게 하고, 양성 확진을 치욕으로 여기게 하고, 이들에게 거듭거듭 장애물을 만들고 모순을 군중 내부로 전가한다. 양성자가 나온 단지의 봉쇄를 해제하지 않는 징벌을 내린다. 이것이 연좌제가 아니면 과연 무엇인가?
오늘의 심정은 실로 참담하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이처럼 빛나는 도시 상하이가 왜 이렇게 암담하게 빛을 잃었을까? 우리가 지금껏 쏟은 인내와 피눈물이 결국은 잘못 지불했던 것은 아닐까? 이 도시 안에 쉬후이(徐匯)구 자원봉사자 할아버지처럼 이치에 맞춰 싸우는 사람이 또 있던가? 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부 관리가 있었던가? 우리가 기대하는 내일은 얼마나 더 14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올 수 있을까? 대가는 얼마나 더 지불해야 비로소 실질적인 ‘인민지상(人民至上)’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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