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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국정과 우정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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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지낸 원로급 인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역대 정권의 첫 인사엔 감동이 있다. 나라 전체를 인재 풀(pool)로 삼고 참신한 외부 인사들을 발탁해 드림팀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집권 중반에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중시하다 보니 각료 경험자나 유능한 관료를 중용하게 된다. 임기 후반에는 아무래도 측근에게 자리를 주는 사례가 늘어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자신이 몸담았던 정권의 경험담까지 포함해 한 얘기였을 텐데, 듣는 순간 대체로 옳은 분석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임기 초ㆍ중ㆍ후기 따질 것 없이 내 편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는 코드 인사가 대세가 됐다. 그러다 보니 드림팀이 구성될 여지가 사라졌다. 나라를 보수ㆍ진보로 쪼개 놓고 절반의 성곽 안에서, 그중에서도 스펙트럼상의 좌표가 얼추 비슷한 사람들만을 풀로 삼아 인사를 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많은 사람이 윤석열 정권의 1기 내각 인사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172석의 거대 야당으로부터 인준 동의를 받아내야 하니 감동의 제1 요소인 참신성을 포기하고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고른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 18명의 명단 역시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드림팀이 구성됐다고 보는 이도 드물다. 지지부진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팩트상 부정’이 있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게 윤 당선인의 입장이라고 한다. 위ㆍ불법이 없었을 수도 있고 영원히 확인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 후보자에겐 ‘당선인의 40년 지기’란 꼬리표가 붙어 있다. 그는 조각 발표 이틀 전 내정 연락을 받고 하루 전 검증동의서를 냈다고 했다. 사적 인연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믿을 순진한 국민이 있을까 싶다. 설령 한 점 의혹이 없고 능력과 경륜을 두루 갖춘 적임자라 해도 대통령의 친구는 후보군에서 배제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게 군자의 도리라 하지 않았던가. 당사자에겐 가혹하겠지만 그건 대통령을 친구로 둔 데 따른 역차별로 감내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의 명단에 포함된 인사와 조만간 발표될 대통령실 고위직 후보로 거명되는 인사 중에는 정 후보자 외에도 당선인과 초등학교, 고교, 대학 동창 등 사적 인연으로 얽힌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는 공직으로 맺어진 관계이긴 해도 진한 우정과 의리로 연결된 선후배란 점에서 그런 범주를 크게 못 벗어난다. 더구나 한 후보자의 발탁은 한덕수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가능성을 열어둔 협치의 문을 닫아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은 거대 여당의 횡포임에 틀림없지만 한동훈 변수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윤 당선인은 평생 검찰에서만 근무한 까닭에 주변 네트워크의 폭이 좁을 수 있고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더구나 지난 대선은 정권 교체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이기고 난 뒤를 염두에 둔 인사 구상을 해 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비가 공명을 찾듯 인재를 수소문하고 선거캠프 바깥의 목소리도 광범위하게 들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5년 임기 동안 대통령은 수백 명의 고위직을 직접 고르고 수천 명의 인사에 결재 도장을 찍어야 한다.
윤 당선인은 한 번 맺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를 중시하는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주위 친구들 중에는 당장 나랏일을 함께 해도 될 인재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중 대학 교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시중에서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윤 당선인의 정치 입문을 응원하고 선거 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초등학교 이래의 한 절친이 선거 이튿날 “5년 뒤 다시 만나자”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친구들 중에 이런 분이 많았으면 한다.

당선인 오랜 친구,내각 등에 발탁 #"5년 뒤 만나자" 는 절친의 메시지가 #미담으로 퍼진 이유 살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