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광현의 퍼스펙티브

용산 대통령집무실, 한국 민주주의 아고라로 만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새 대통령집무실 용산 이전 정밀 해부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청와대에 있던 대통령집무실을 5월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다. 천도(遷都)에 버금가는 국가 대사다. 효율적인 집무실과 진정한 국민 소통의 장을 동시에 만족하도록 하는 과제가 눈앞에 던져졌다. 그러나 기존의 건축물과 지형 조건이 큰 부담이다. 국가 상징의 이미지도 선명하지 않다.

국격의 공간이라 기대가 큰 때문인지 의견도 다양하다. 용산 땅에 얽힌 역사적 의미도 다시 읽어야 하고, 도시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말도 들린다.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처럼 박물관과 공연장이 있는 공원으로 만들자는 확대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통령집무실과 공원을 연계해 소통의 장을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기자회견 이상의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사가 한창인데, 대안 논의가 아직은 모두 높고 넓기만 하다.

취임 초기에 시간 촉박해 국방부 청사로 입주하지만 입지 한계 많아
국방부 건물은 백악관 웨스트 윙같은 수평적 모델을 구현하기 어려워
용산의 중심 ‘드래곤힐 호텔’ 땅이 집무실과 관저의 궁극적 최적지
미군기지를 공원으로 완성해 국민에 돌려주면 소통 의지 실현 가능

5월 10일부터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집무실로 사용될 국방부 청사 일대.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국방부 청사 우측 드래곤힐 호텔(실선부분)이 용산공원의 중심이자 대통령집무실과 관저의 궁극적 최적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5월 10일부터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집무실로 사용될 국방부 청사 일대.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국방부 청사 우측 드래곤힐 호텔(실선부분)이 용산공원의 중심이자 대통령집무실과 관저의 궁극적 최적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용산 이전은 폐쇄적인 건축공간이란 지적을 받아온 청와대가 국민과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힘들게 찾은 공간적 수단이 국방부 청사와 용산국가공원이다. 국방부 청사라는 단일 건물에서 참모들과 가까이 국정을 논의하며, 1층에 프레스센터를 두고 국민과 늘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집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국방부 청사보다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목적에 힘을 실어준 것은 용산국가공원이었다. 이 공원을 앞에 두고 있기에 미국 백악관 웨스트 윙(West Wing)처럼 시민들이 대통령집무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할 수 있었다.

이미 있는 건물로 이전하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짧은 시간에 이전을 결정하느라 브리핑에 사용한 조감도도 급히 마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감도는 지금의 물리적 조건을 왜곡했다. 왼쪽의 합동참모본부가 그렇게 작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지형이 평탄하지도 않으며 전면 공간은 개방적으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서둘러야 할 것은 건축과 조경의 조건을 세부적으로 따지는 것이다. 단일 건물로 이전하니 대통령과 참모들의 의사소통은 훨씬 활발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국방부 청사는 복도 하나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길게 방이 연결되고, 중간에 계단실과 엘리베이터가 배치돼 있다. 이런 평면에서는 웨스트윙의 수평적 모델은 생각처럼 구현하기 어렵다.

이전하는 건물의 무미건조한 외관은 안보를 위한 국방부 청사로는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를 상징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집무실로서는 무심하다 못해 무정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 건물로 새 대통령집무실의 상징 로고를 만들어보면 국가 상징에 얼마나 문제가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집무실이 합참과 근무지원단 건물을 좌우에 나란히 거느리고 있는 것도 거북스럽다. 대통령집무실보다 합참 건물 높이는 거의 같지만 길이는 더 길다. 푸른 유리창의 좌우 건물이 대통령집무실보다 더 뚜렷이 보인다. 더욱이 국방부 청사 남쪽에 공원이 조성되면 이제까지 가려져 있던 이들 세 건물은 훨씬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이런 투박한 외관은 화강암 등으로 외벽을 바꾼다고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대통령실 용산 이전

조감도로 보여준 공원은 집무실만 생각한 계획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 국민은 무심히 그린 몇 겹의 원형 길이나 중심축이 강한 경직된 소통의 장을 원하지 않는다. 용산공원 전체 계획에 어긋날뿐더러 지형과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들이 대통령집무실과 무관하게 공원만 즐기려고 온다는 전제에서 국방부 청사 남쪽 공원(국립중앙박물관 서쪽)을 조성해야 용산국가공원 전체가 한 몸을 이룰 수 있다. 그래야 남쪽 공원이 수준 높은 국민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대통령집무실 이전에 따른 조경 계획의 가장 큰 원칙이다.

보안이 강한 대통령집무실은 국방부 후문에서 연결되겠지만, 한강대로에서 오는 시민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옆길로만 공원에 갈 수 있다. 이 길은 대통령집무실과 국방부의 필수시설인 헬기장 남쪽 부근을 지나 국립중앙박물관 북쪽을 거쳐 동쪽으로는 녹사평대로로, 북쪽으로는 이태원로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헬기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는 이상 공원 한가운데를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헬기장 북서쪽에 국방시설본부가 길게 인접해 있고, 동쪽에는 미군 장병 주거지였던 경사지가 있다. 이 두 요소는 모두 집무실 앞마당을 좁히고 있다. 국방시설본부가 옛 30사단 본부 건물로 이전하더라도 건물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건물을 철거해도 문제다. 대통령집무실과 합참 건물이 대등한 건물로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헬기장을 어딘가로 이전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대통령집무실 바로 앞에 놓인 2층 높이의 넓은 주차장 건물이다. 지형상 주차장 지붕은 연병장처럼 쓰인다. 이에 사열대 단상을 두려고 지면을 올렸고 이 때문에 대통령집무실 정문도 주변보다 높아졌다. 집무실 아래에 있는 좌우 열주는 이 정문 높이에 맞추려고 경사진 보행로를 가리려고 만든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집무실 앞의 땅 높이와 건축물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집무실 앞에 소통의 마당을 만들려면 땅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주차장을 없애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할까. 집무실 북쪽도 마찬가지다. 당선인은 백악관 웨스트 윙을 똑 닮아 남북이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고 설명했지만, 집무실 뒤에는 닫힌 저층 블록이 덧붙여 있을 뿐 편안한 녹지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게다가 대통령 관저와 영빈관도 가까운 곳에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주변의 까다로운 물리적인 조건을 넘어 백악관같이 낮은 펜스를 두고 대통령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공원에 산책 나온 국민이 늘 바라볼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면 남측 공원 조성이 늦어질 것이고,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대전제는 한동안 조감도 그림으로만 남아 있게 될 우려가 크다.

사정이 이러한데 엄청나게 좋다는 장관실의 ‘뷰’가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용산 이전이 ‘신의 한 수’였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신께서 ‘여러 수’를 주셔야 비로소 풀 수 있는 난제임을 분명히 말해야 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니 당선인과 인수위는 지금이라도 건축가와 조경가로 공식적 조직을 만들고 그들에게 해법을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전문가와의 소통도 국민과의 중요한 소통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국가의 상징인 새 대통령집무실이 들어서야 할 곳은 용산국가공원에 따로 있다. 그곳은 공원 전체의 한가운데이면서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드래곤힐 호텔 땅이다. 이 호텔은 자대 배치를 받기 전에 미군 신병들이 묵는 지상 9층의 숙박시설이다. 군사시설이 아닌데도 평택·오산으로 이전하는 미군이 반환하지 않고 있다. 새 대통령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공원의 위상이 크게 바뀔 국가공원 한복판에서 미군 신병들이 객실에서 서쪽으로 한국 대통령집무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난센스다.

궁극적으로 대통령집무실과 관저가 드래곤힐 호텔 자리에 들어가야 백악관처럼 남북의 정면을 넓게 가질 수 있다. 북쪽의 이태원로에 접해 있던 한미연합사는 올해 평택 기지로 옮기게 된다. 그러면 이 자리는 백악관의 라파예트 광장과 같은 곳이 된다. 이태원로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와 같은 길이 될 것이다. 남쪽에서는 시민들이 공원에 둘러싸인 대통령의 집무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집무실이 미국 백악관과 똑같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우리만의 새로운 대통령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똑같은 정신으로 불완전했던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완성해 국민에게 제대로 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옮기겠다는 의지의 최종적인 결과일 것이다. 어찌 보면 드래곤힐 호텔 자리는 통일 한국의 미래 가치를 위해 새 대통령집무실과 관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새 정부가 시간에 쫓기다 보니 취임 초기에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집무실로 사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취임 이후 시간을 갖고 드래곤힐 호텔 자리에 대한민국 대통령집무실과 관저를 새로 조성해 궁극적으로 용산국가공원 중심에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주기를 희망한다. 드래곤힐 호텔 자리를 새 대통령집무실로 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불완전했던 용산기지 반환을 완성하고 명실공히 ‘한국 민주주의의 아고라’(Agora·소통의 중심 공간)를 국가공원에 만들어 국민에게 돌려주는 역사적 사명을 다 했다고 기록될 것이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