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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농·어업·식당, 최저임금 각각 다르게 적용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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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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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지난해 최저임금(시급 8720원)도 받지 못한 근로자가 321만5000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년 사이 최저임금이 30%가량 올랐던 2019년(33만6000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전체 임금 근로자에 대비하면 그 비율(최저임금 미만율)이 15.3%나 된다.

언뜻 ‘아직도 최저임금을 안 주는 사업주가 있느냐’며 힐난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법정 임금이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뒤집어 따지면 관점이 달라진다. 노동시장에 적용하기에는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뜻이어서다. 지급능력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을 지키지 못한 사업주 대부분은 영세업종에 속해있다. 농림어업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54.8%나 된다. 숙박음식업도 40.2%다. 농민이나 어민,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범법자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외국 직종·지역·연령별 차등 적용
윤 당선인 “상황 고려해 적용” 약속
지역별 차등은 현행법으로 불가
업종별은 가능해도 자료없어 난관
노사정, 갈등 매듭지을 묘수 짜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저임금과 관련 “경제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 인상”을 공약했다. 덧붙여 차등적용을 약속했다. 최저임금도 줄 형편이 안 되는 업주에게 최저임금을 강요하면 잠재적 범죄자만 늘릴 뿐이라는 현실적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내년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되자마자 이 문제로 노사가 팽팽하게 대립각을 형성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은 하한선이므로 단일 책정”을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업종별로 생산성이나 경영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의 기간 내내 갈등은 첨예할 전망이다.

외국은 어떨까.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최저임금을 운용하고 있는 25개국을 조사했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업종이나 지역별 차등 이외에 직종, 기업 규모, 연령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구분해서 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선진국의 최저임금 구분 적용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선진국의 최저임금 구분 적용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업종별 차등 적용을 허용하는 나라는 대체로 단체협약으로 정한 최저임금이 국가 최저임금보다 높을 경우 인정하는 방식이다. 독일, 벨기에, 캐나다 온타리오, 호주 등이다. 지역별 차등 적용을 병행하고 있는 일본은 노사가 신청하면 해당 사업장의 지역 최저임금보다 높을 경우 인정한다. 네덜란드는 국가 최저임금과 관계없이 단체협약으로 업종별 구분 적용이 가능하다. 스위스는 농업과 화훼업에 감액 적용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업종별 차등 적용만 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직종·지역·연령별 차등 적용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도 업종에 더해 지역별 차등적용을 택하고 있다. 그리스는 직원과 장인을 구분하고 경력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면서 25세 미만에는 감액 적용을 허용한다. 벨기에도 20세까지 감액이 허용된다. 영국은 업종과 지역 구분이 없는 대신 23세 이하 연령에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게 했다. 미국은 업종에 따른 차등 적용은 없고, 직종과 지역, 기업 규모, 연령별 차등 적용을 인정한다. 체코는 직군별로, 슬로바키아는 노동강도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

우리나라도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지급한 때가 있었다. 최저임금제를 처음 도입한 1988년이다. 섬유·잡화·식품과 같은 경공업에 462.5원, 금속·기계·화학·석유 같은 중화학공업에 487.5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딱 그 한 해뿐이었다. 이후 획일·균등 적용이 유지됐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올리자 영세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집단 반발이 일어났고, 차등 적용이 이슈로 부각됐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차등 적용이 가능할까. 지역별 차등 적용은 현행법으로 불가능하다. 법에 관련 조항이 없어서다. 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실현을 기대하긴 어렵다. 설령 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지역에 낙인효과가 생길 수 있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법 제4조에 그 근거가 명시돼 있어 가능성이 닫혀있는 건 아니다. 1988년 한차례 시행한 것도 이 조항에 근거해서였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도 실행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책정하려면 업종별 임금 실태조사와 같은 기초 자료가 있어야 한다. 이게 없다. 실태조사도 제대로 안 돼 있다. 여기에다 업종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서비스업만 따져도 업태가 천태만상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업태나 장소 등에 따라 매출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세세하게 따져 세분화하고 정비해야 업종별 적용이 가능하다.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 적용을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은 “그렇다고 차등 적용을 둘러싼 갈등이 매년 재생산되고 증폭되는 것을 반복할 수는 없다”며 “어떤 형태로든 갈등을 매듭지을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영세 중소업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방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2017년 최저임금 심의장에 ‘최저임금은 노동자를 보는 그 사회의 수준’이라는 피켓을 들고 참석했다. 다분히 운동권적 시각이다. 윤 당선인의 공약과 관련해 그가 어떤 묘수를 낼지, 정책을 담당하는 국무위원으로서의 태도가 변화할지 궁금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