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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사랑한 아를에 ‘이우환미술관’ 문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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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아를에 개관한 이우환미술관 내부 전시장. 일본과 한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문 열었다. [사진 이우환스튜디오·연합뉴스]

프랑스 아를에 개관한 이우환미술관 내부 전시장. 일본과 한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문 열었다. [사진 이우환스튜디오·연합뉴스]

한국의 대표 미술가 이우환(85) 화백의 이름을 건 이우환미술관이 15일(현지시각)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Arles)에 문을 열었다. 아를은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년간 머물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도시다. 이곳은 일본과 한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이우환미술관이다.

이우환미술관은 2010년 일본 나오시마 섬에 가장 먼저 생겼다.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내 이우환 공간이 개관했다. 일본의 이우환미술관은 일본의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이번 아를의 이우환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16~18세기 지어진 저택(Hotel de Vernon·오텔 베르농)으로, 이 건물 보수에도 안도 다다오가 참여했다. 건물은 25개의 방이 있는 옛 3층 주택이며, 연면적 1350㎡ 규모다. 외신에 따르면 1층에 10점의 설치작품과 30점의 회화가 전시돼 있고 2층에선 특별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미술관 보수 참여

이우환 화백의 회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 이우환스튜디오·연합뉴스]

이우환 화백의 회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 이우환스튜디오·연합뉴스]

이 화백은 개관 당일 아를 현지에서 진행한 외신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미술관을 전시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이곳을 삶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작업의 특징은 관점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만남을 제안하는 것”이라며 “내 작업은 작가가 가운데 있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 서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 작품 앞에서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우환재단을 통해 아를에 미술관 개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당초 2020년 개관이 목표였으나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2년 정도 미뤄졌다. 아를 시는 2014년 이 화백의 베르사유 궁 전시 전부터 이우환미술관 건립을 반기고 협조해왔다고 한다.

아를은 고대 로마 문화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프랑스의 로마’로 불린다. 미국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현대 건축물 루마 아를(Luma Arles)도 있다. 이 화백은 “이곳은 로마 제국 이래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역사와 내 작품이 만나 서로 부딪히고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우환 화백. [사진 이우환스튜디오·연합뉴스]

이우환 화백. [사진 이우환스튜디오·연합뉴스]

이 화백은 한국 출신 작가 중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대표 작가다. 그의 작품은 국내 미술시장에서 ‘블루칩’으로 통한다. 지난해 8월 서울옥션에서 그의 1984년 작품 ‘East winds(동풍)’가 31억원에 낙찰됐다. 작가의 개인 최고가 기록이다. 한국의 생존 작가 작품 중 30억 원을 넘긴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사물과 세계의 관계에 천착하며 일본 아방가르드 운동 ‘모노하’를 주도했다. 모노하는 1960~70년대 콘크리트, 유리판, 강철 등 산업 재료와 돌과 나무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 미술 운동이다. 이 화백은 선, 점 등 시각 표현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질문을 던져왔다. 1973년쯤 시작한 그의 작품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은 점을 찍은 뒤 붓끝의 안료가 없어질 때까지 선을 긋는 작업을 반복해 탄생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에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중앙포토]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에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중앙포토]

이 화백은 1971년 프랑스 비엔날레 드 파리의 첫 전시 이후 파리에도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며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왜 아를을 선택했을까.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아를이 역사와 시간이 축적된 장소라는 점이 이 화백의 작품과 연결된다”고 해석했다. 콘크리트와 강철 등을 재료로 사용한 작품이 ‘시간성’이라는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거다. 그는 “이 화백 작품은 기본적으로는 동양적 사고와 감성에서 출발했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서로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관계에 관심이 지대하다”며 “아를을 통해 더 넓은 세계와 만나고 대화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프랑스에서 오래 작업한 이배 작가는 “아를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현대미술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소개하고 있는 곳”이라며 “아를의 이우환미술관은 한 개인의 미술관이 아니다.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전초 기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세무조사, 작가를 범죄인처럼 대해”

이 화백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술관 개관 사실은 맞지만, 당분간 한국 매체와는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3개월에 걸쳐 세무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며 “평생 작업에 매달려온 작가를 무슨 범죄자처럼 대하는 문화가 나를 힘들게 한다. 현재로선 하고 싶은 얘기가 달리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 화백의 무대는 세계다. 2018년 그의 신작 ‘관계항-무대(Relatum-Stage)’가 영국 런던의 세계적인 미술기관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야외공간에 전시됐다. 앞서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고, 2019년 퐁피두 메츠 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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