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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형기가 고발한다

정호영, 불법 아니라도 문제다…의대 교수 자녀 전수조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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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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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왼쪽). 그래픽=김현서 기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왼쪽). 그래픽=김현서 기자

부정입시 합시다!
부:부모 찬스인지
정:정직한 실력인지
입:입력만 하면
시:시원하게 밝혀 줘요!

서울의대(82학번)를 나와 30대 초반에 제약사 임원으로 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났다. 처음엔 그렇게 오래 머무르려던 게 아니었는데 결국 조지타운 대학병원에 적을 두고 계속 미국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한국 대학 입학 제도가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 보내려고 다들 그렇게 하듯이 공부하라고 아이를 들볶으면 애의 삶의 질은 물론 부모와 자식 사이마저 나빠질 게 분명했다. 다른 부모처럼 일일이 스펙을 챙겨 줄 자신도 없었다. 미국이라고 학교 성적이나 스펙이 대입에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보다는 공정하게 평가하리라는 믿음이 있어 미국 잔류를 결정했다.

공부를 잘했던 큰 애는 다행히 많은 한국인이 선망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졸업 후 정말 원하는 일을 찾기까지 긴 기다림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서너 해 뒤, 서울대학병원에 자리가 나 14년 만에 귀국하는 나를 따라 한국에 왔다. 학원에 다니며 의전원 시험을 준비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애라는 걸 알기에 지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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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첫해에는 서울대, 그리고 다음 해에는 연세대와 가톨릭대 의전원에 모두 불합격했다. 대학 졸업 후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 할 때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도 있었고, 나름 좋은 학부 출신이라 솔직히 실망이 컸다. 그래도 받아들였다. 애도, 또 나도 한국에서 의대(또는 의전원) 가는 게 얼마나 넘기 힘든 벽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주위 동료 의사들 애들은 척척 의대에 들어갔다.

존스홉킨스 스펙도 못 넘은 의대 문턱 

큰 애가 의전원 준비할 때 방관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맘만 먹으면 비단 서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누가 면접위원인지 알아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모양은 빠지지만 알만한 사람들에게 지나가는 말 하듯이 "큰 애가 서류 심사는 통과했다 하더라고 껄껄" 이렇게 슬쩍 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두 명이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에서 부원장과 원장을 하던 시절에 각각 한시적으로 허용한 편입(딸)과 갑자기 도입된 대구 · 경북 지역 출신 우대 특별전형(아들)을 통해 경북의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정 후보자는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에서 입학 취소 결정이 내려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처럼 문서 위조나 거짓 스펙 기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론이 나쁘다. 장삼이사 눈에는 둘의 구분이 안 된다. 보통 사람 눈높이에선 둘 다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둘째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둘째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일개 평교수라도 동료 아이가 면접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아무리 돌부처 면접관이라도 신경을 쓰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어떤 면접관이 병원장 자녀를 정말 엄격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직접 부탁한 게 아니라면 면접관이 알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 평교수인 나야 말하지 않으면 남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병원장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지방 도시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병원과 대학이 두 개의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서울대학교병원-서울의대와는 달리 여전히 자웅동체를 유지하는 ‘국립’ 경북대학교병원-경북의대에서라면 굳이 병원장이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아니 알게 된다.

물론 아버지가 고위 보직자로 근무하는 대학병원에 자녀가 지원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더군다나 자녀가 입학하면 학비를 감면해 주니 굳이 다른 대학에 지원하라고 등을 떠밀 수도 없다.

정 후보자 '이해충돌' 피했어야 

하지만 이번 의혹은 설사 명백한 불법 행위가 없었다고 해도 그냥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일개 대학병원 의사가 아니라 무려 장관씩이나 하겠다는 공직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가 평소 공직에 뜻을 품고 있었다면 진작에 논란이 발생할 여지를 스스로 차단했어야 한다. 혹은, 본인의 우월적 지위가 어떤 형태로든 자녀의 편입 허가에 불공정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장관직을 수락하지 않았어야 옳다. 공정 유지의 기본인 ‘이해충돌의 회피’ 원칙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공직을 맡겠다고 나서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조국 전 정관 자녀 입시 비리로 만천하에 드러난 내로남불 좌파의 역겨운 위선 덕분에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걸 고려할 때 더더욱 그렇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아빠 찬스' 논란 제기 후 경북의대를 찾은 민주당 의원들. [뉴스1]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아빠 찬스' 논란 제기 후 경북의대를 찾은 민주당 의원들. [뉴스1]

진영을 넘나드는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은 한마디로 한국 대입이 지닌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보여도 부정이 개입되는 경우도 많다. 조민씨의 고려대, 부산대 의전원 입학 취소 결정에 무려 3년 가까운 긴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입시 제도의 오작동이 허용 한계를 이미 넘었지만 다들 눈을 감은 탓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곪아갔다.

이런 인식에 다다르면 조민씨 한 사람의 입학취소로 이 사회의 무너진 공정이 다시 온전히 회복되리라는 생각 자체가 참 순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뀌어 새 내각 장관 후보자 자녀의 의대 편입 과정에서 불거진 구설을 보니 더 그렇다. 결국 제도 전체를 손봐야 하겠지만 그 전이라도 우선 빠르게 바꾸거나, 혹은 이런 비리를 걸러낼 수 있는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고위공직자는 물론이요 의대, 아니 모든 대학교수 자녀의 입시 전반을 전수조사(全數調査)하는 게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긴급조치가 아닐까 싶다. 정 후보자 이외에도 최근 전남대 총장 딸이 아빠가 의대 부학장이던 시절 전남대 의대로 편입한 과정이 또 다른 비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최근의 일만도 아니다. 이미 2007년에 복지부 전 차관의 딸이 연대 의대 편입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요컨대 비리나 부정은 아닐지 몰라도 부모 찬스로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 결국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겠다는 탐욕이 한국 사회에 편만하다는 증거다. 전수조사로 이러한 치부를 남김없이 드러내야 우리 사회가 진정한 공정에 도달할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사실 2019년 조국 사태 와중에 국회의원 자녀의 입시 비리 전수조사 논의가 활발했다. 당연히 국민 90%가 전수조사에 공감했고, 실제로 법안도 몇 개 발의됐다. 하지만 전수조사의 대상과 방식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끝내 무산됐다. 현실적으로 조사 방법이 묘연하기도 했다. 결국 국회 회기가 바뀌면서 없던 일이 됐다.

AI 전수조사로 비리 걸러내야  

입학 서류를 일일이 한 장씩 넘기면서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답이 없다. 발상을 바꿔야 한다. 입시 비리가 의심되는 사례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선별한 뒤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두 단계 접근법이면 조사가 가능하다.

이미 보험이나 신용카드 업계에서는 사기 가능성이 높은 사례나 거래를 찾아내거나 예측하는 데 다양한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지 오래다. 세금 신고 관련 부정을 찾아낼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채용 비리를 찾아내는 데까지 확대됐다. 무엇보다 사람이 수동으로 하는 거보다 예측률이 훨씬 높다. 알고리즘으로 찾아낸 사례를 심사자가 심층 조사하면 되니 효율성은 떼놓은 당상이다.

자기가 억울하게 떨어졌다고 의심하는 수많은 불합격자가 모두 AI의 알고리즘 학습을 위한 자료 제공에 나설 테니 자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이런 알고리즘을 개발한다고 하면 자원할 젊은이가 여럿일 게다. 청년을 위한 고용 창출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AI 알고리즘을 탑재할 앱(어플)과 웹사이트의 이름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바로 ‘부정입시!’, 즉 부(부모 찬스인지), 정(정직한 실력인지), 입(입력만 하면), 시(시원하게 밝혀 줘요!)다. 입시 비리를 찾아내는 AI 이름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전수조사 실시 초기에는 삐걱거릴 수도 있다. 알고리즘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정작 입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운 좋게 빠져나가고 억울한 사례가 생기기도 할 거다. 그러나 후자는 심사자의 세밀한 사후 조사로 보완이 가능하고,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알고리즘은 더욱 정교해질 거다.

미룰 수 없는 전수조사

전수조사의 가장 큰 효과는 과거 잘못을 찾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입시 비리를 저지르지 않도록 억지하는 예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수조사를 제도화하면 이 사회의 공정 수준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민주노총 관계자가 지난해 9월 집회에서 '아빠 찬스 OUT'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관계자가 지난해 9월 집회에서 '아빠 찬스 OUT'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호영 후보자 사례는 최소한 고위공직자 관련 자녀 입시 비리 전수조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신호로 읽힌다. 방법도 있다. 지난 조국 사태 때처럼 국회를 거치기는 쉽지 않지만 우선 행정부 고위공직자만으로는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자가 결심하면 된다.

의전원 입시에 연달아 떨어진 큰 애는 좌절했지만 금방 다시 일어섰다. 방관으로 일관한 나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기 전공을 살려 굴지의 바이오 회사에 다니며 승진도 했다. 원칙을 지키도록 도와준 큰 애가 고맙다.

[강태영 강동현의 별별시각]해외논문 쓴 고등학생 70% , 대학 가서 논문 한 편도 안써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공부하는 두 연구자가  지난 20년 간 국내 213개 고등학교 소속으로 작성된 해외 논문을 전수 조사한 연구 결과를 지난 18일 발표했습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이미 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수 해외 학술지에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학생의 70%는 대학 재학 이후 논문을 더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진지한 탐구 활동이 아닌 이른바 '부모 찬스'가 의심되는 대입용 스펙이었던 겁니다. 요약 내용을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