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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강간·학대…1년이래" 두 여중생 죽음 내몬 공포의 배후

중앙일보

입력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지난해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지난해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A양 유족 “누군가 딸에게 공포감 심어줘” 

성폭행 피해로 조사를 받던 여중생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청주 여중생 사건’과 관련 피해자가 가해자 분리조처와 수사 장기화에 따른 고충을 토로한 사실이 확인됐다.

18일 친구의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A양의 유족에 따르면 A양은 지난해 4월 29일 자신의 친구와 나눈 휴대전화 메시지에서 ‘강간’과 ‘아동학대’ 등 죄명을 언급하며 ‘가해자가 얼마 안가 풀려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A양 유족은 “특정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딸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사건은 친구 사이인 A양과 B양이 잇따라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뒤 지난해 5월 12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가해자는 B양의 의붓아버지 C씨였다. 경찰은 C씨의 구속 수사를 위해 지난해 3월 18일과 5월 10일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집행되지 않았다.

3월 영장신청은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 등 이유로 반려됐다. 5월 영장신청이 같은 이유로 반려된 것인지, 검찰의 추가 검토로 인해 발부가 지연됐는지는 기록이 없는 상태다. A양과 B양은 두 번째 구속 영장 이 신청된 지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주 여중생 사건' 피해자 A양이 지난해 4월 29일 한 친구에게 수사 지연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A양 유족]

'청주 여중생 사건' 피해자 A양이 지난해 4월 29일 한 친구에게 수사 지연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A양 유족]

꿈에 나타난 가해자 “△△아 안녕?’” 트라우마 호소 

유족이 확보한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A양이 4월 들어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린 정황이 담겨있다. 한 친구가 “○○ 아빠(B양 계부인 C씨) 아무것도 못 함”이라고 묻자, A양은 “증거가 없어서”라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이어 “들어가 봤자 1년? 밖에 안돼. ○○(B양)이 아동학대랑 나 강간죄로 같이 싸잡아서 넣느라 오랜 걸린 데”라고 말했다.

형법상 강간죄는 징역 3년 이상,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은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A양은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B양의 친족 강간은 ‘무혐의’로, 강간죄 형량은 법률상 최소 형량보다도 축소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A양의 아버지 박모(50)씨는 “당연히 딸과 B양의 강간죄로 공소할 것으로 생각했을 시점인데, 딸이 특정 죄명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며 “가해자가 강간이 인정되어도 1년 만에 나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딸과 B양의 공포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딸의 친구인 B양을 통해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4일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청주 여중생 피해자 A양 어머니 이모(47)씨가 자필 편지를 읽은 뒤 위로를 받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달 24일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청주 여중생 피해자 A양 어머니 이모(47)씨가 자필 편지를 읽은 뒤 위로를 받고 있다. 최종권 기자

피해자 측 “구속 영장 신청·반려 사유 공개” 촉구

A양은 해당 메시지에서 성폭행 후유증도 호소했다. A양은 “길에 지나가는 아저씨가 있으면 ○○(B양) 아빠인 줄 알고 쫀다”며 “꿈에서도 ○○랑 놀고 있으면 ‘△△(A양)아 안녕’ 이래서 소름 돋아서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친구에게 보낸 800여자의 메시지에는 “그날이 너무 무섭고 ○○아빠 얼굴이 자꾸자꾸 생각나. 그날이 너무 무서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와”라고 썼다.

A양 유족은 딸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에 이어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경찰이 검찰에 제출한 구속영장 신청서와 검찰 측 반려사유 등을 확인하면 A양이 언급한 ‘강간’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한 시점을 알 수 있어서다. A양 유족은 “가해자가 곧 풀려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딸과 B양을 극단적 선택으로 이르게 했다”며 “딸이 공포감에 떨고 있었을 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당시 영장신청서 등을 통해 수사과정을 명확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

A양 유족은 또래 친구와 접촉하던 중 “계부 C씨가 2020년 11월~12월 사이 의붓딸인 B양을 성폭행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1심 재판부는 C씨가 의붓딸인 B양에게 가한 성범죄를 유사강간으로 봤으나, B양이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증언자가 나타난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B양 친구는 A양 유족에게 “지난해 1월 B양과 통화에서 ‘(B양이)아빠한테 당했다’는 취지로 얘기했고, 구체적인 상황을 캐묻지 않았으나 ‘강간’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충북여성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창 여중생 성폭력 가해자 1심 선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두 여중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뉴스1]

충북여성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창 여중생 성폭력 가해자 1심 선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두 여중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뉴스1]

A양 유족을 돕고 있는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은 “아동 성폭행 사건에서는 아이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 어려운 점을 재판부가 이해하고, 피해자와 증인이 공포에 떨지 않으면서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형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씨는 1심에서 강간치상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A양에 대한 성폭행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으나, B양에 대해 검찰이 적용한 친족 강간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과 A양 유족은 C씨가 의붓딸인 B양 역시 성폭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은 오는 2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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