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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노린 전투로 바뀌었다…돈바스 '추잡한 전쟁' 예고

중앙일보

입력

키이우 등 대도시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여온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광활한 평원인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전장을 옮겼다. 전쟁의 향방을 가를 대전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군사 전문가들은 돈바스에서의 결전이 “길고 참혹한 전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돈바스 지역 루비즈네 마을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돈바스 지역 루비즈네 마을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방어에 유리한 시가전 대신 평야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군사전문매체 1945 등은 대도시의 고층 건물과 지하 통로 등 엄폐물과 은신처를 활용해 러시아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해온 우크라이나군이 탁 트인 돈바스 지역 전투를 앞두고 무기는 물론 전략 변경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NYT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투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미국 위성사진 제공업체 막사테크놀로지의 사진. 우크라이나 동쪽 러시아 국경 인접한 마을에서 러시아군 차량 행렬이 찍혀있다. [막사테크놀로지]

미국 위성사진 제공업체 막사테크놀로지의 사진. 우크라이나 동쪽 러시아 국경 인접한 마을에서 러시아군 차량 행렬이 찍혀있다. [막사테크놀로지]

지금까지 주요 교전은 고층 건물과 높은 인구밀도를 갖춘 대도시에서 이뤄졌다. 우크라이나군은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을 방어 거점으로 삼아 지하철과 같은 지하 통로로 이동하며, 기습으로 러시아군을 흔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도시의 복잡한 지형은 방어하는 사람에게 훨씬 유리하다”며 “침략자 입장에선 고층 건물에 잠재된 위험을 막기 위해 엄청난 병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CNA의 제프리 에드먼즈 연구원은 “러시아군은 (전쟁 기간과 비용 때문이 아니라) 시가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선을 동쪽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의 건물 사이에서 파괴된 러시아군의 탱크.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의 건물 사이에서 파괴된 러시아군의 탱크. 연합뉴스

반면 돈바스는 들판과 농장뿐이다. 언덕이나 구릉도 거의 없는 허허벌판이다. 돈바스 분쟁에 참여했던 퇴역 군인인 막심 피노긴은 “숨을 곳이 전혀 없다”며 “포병들이 수십㎞ 거리에서 포화를 퍼붓는 방식의 화력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2차대전식 포위·화력전…"러軍이 원하던 전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과거 2차 대전 당시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현재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나치 군대를 물리친 것과 동일한 전략을 쓸 것으로 내다봤다. 1943년 당시 소련군은 볼고그라드의 평원을 가로지르며 공세를 시작해 독일군을 작은 단위로 쪼개 포위한 뒤 포병전으로 초토화했다. 필립 브리드러브 전 나토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러시아군은 개방된 초원에서 화력으로 맞붙고 싶어했다”며 “돈바스에서 러시아군이 원하는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평원에서의 대규모 포병전을 앞두고 병력을 증강했다. 기존 30개 대대전술단(BTG) 3만 명 규모의 병력을 이달 들어 40개 BTG 4만 명으로 늘렸다. 또 키이우 등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러시아군 병력 4만 명 중 일부도 몇주 내 동부 전선으로 재배치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맞서는 우크라이나군은 수만 명으로 추산된다. 앞서 동부 전선엔 우크라이나군 약 3만 명이 있었으며, 최근 키이우에서 주력 부대가 배치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미 러시아군의 포위 작전을 막기 위해 마을로 이어지는 교차로를 폭파하고, 저수지 수문을 개방하는 등 준비 태세에 들어간 상태다.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NLAW 대전차 무기를 발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NLAW 대전차 무기를 발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동부에 배치되는 우크라이나군은 국내에서 가장 전문적이고 의욕에 넘치는 부대”라면서 “러시아군이 화력에서 우위를 보이지만 거의 동등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방은 무기를 보내며 우크라이나군을 지원 중이다. 앞서 미국은 돈바스 전투의 특성을 고려해 사정거리가 긴 곡사포와 포탄, M113 장갑차 200대, 대포병 레이더 등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무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무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양측 모두 심각한 손실 입을 것"

돈바스 전투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영국,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과 군사 전문가들은 돈바스 전투가 수 주내에 시작돼 수개월 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원한 미 정부 당국자는 “(돈바스 전선은) 수 주간 전선이 움직이지 않는, 지루하고 추잡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NYT에 전했다.

군사전문 매체 1945는 “정직하게 말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최우선 목표는 초기 공세에서 살아남는 것과 러시아군이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란드 컨설팅업체 로한은 “돈바스 전투의 승패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투가 끝나면 양측 모두 공격과 반격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은 분명하다”며 “우크라이나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전투를 이어나갈 각오가 분명해 러시아군이 입는 손실도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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