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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하는 법'까지 영상 담은 이유…전신마비 청년 8년간의 기적 [별★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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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의 모든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팔만 움직여도 성공적인 결과” 이상의 말은 듣지 못했다. 8년이 지난 지금, 두 손을 이용해 팔굽혀펴기를 하고 턱걸이에도 도전한다. 이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슈퍼맨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영국을 다녀올 정도로 활동적이었던 박위(35)씨가 사고를 당한 건 8년 전인 2014년. 지금은 휠체어에 앉은 자신의 일상을 담백하게 전하며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는 유튜버가 됐다. 그가 올린 콘텐트에는 “삶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시 한번 용기를 얻었다”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유튜버 '위라클' 박위씨가 6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유튜버 '위라클' 박위씨가 6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취업 성공 뒤 찾아온 사고

박씨는 27살이던 2014년 5월 첫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낙상사고를 당했다. 목이 꺾여 발견될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고, 5일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박씨는 당시를 “온몸이 존재하지만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톱’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박위씨가 2014년 낙상사고를 당하고 직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당시 찍은 사진. 자음과 모음을 프린트한 종이가 박씨 위에 올려져 있다. 박씨 제공

박위씨가 2014년 낙상사고를 당하고 직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당시 찍은 사진. 자음과 모음을 프린트한 종이가 박씨 위에 올려져 있다. 박씨 제공

사고 직후 박씨의 가족은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들고 서울의 거의 모든 병원을 돌았다. 의사의 희망적인 설명을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신 마비’라는 진단, “팔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성공적인 재활”이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2014년 박위씨의 MRI 사진. 낙상사고로 경추의 일부가 아예 끊어졌다. 박씨 제공

2014년 박위씨의 MRI 사진. 낙상사고로 경추의 일부가 아예 끊어졌다. 박씨 제공

핸드폰 드는 데 2년

거칠고 빠른 호흡의 운동만 해온 박씨에게 재활은 쉽지 않았다. 재활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는 상상훈련이 중요한데, 즉각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게 고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 한 달이 지나서야 새끼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지만, 단 한 번도 다신 못 움직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를 목표로 삼은 것도 이때다.

2년. 박씨가 처음 왼손 엄지 마디를 움직이고, 혼자 힘으로 약 200g의 스마트폰을 드는 데 걸린 시간이다. 휴대전화 손잡이인 ‘그립톡’을 사용하면 훨씬 편하지만 사고가 난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전신 마비 판단을 받았던 그가 스마트폰으로 SNS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은 이제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변 보는 법’까지 담는 유튜버

그런 박씨는 2019년 유튜브를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나올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하고 비장애인들에겐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박씨는 “이전까진 장애라는 걸 한 번도 인식하지 않고 살았다. 휠체어를 타고 나서야 수많은 편견이 보였고, 나부터 장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다음은 가족, 지인 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의 장애 인식을 바꾸고 싶어 영상을 택했다.

박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라클' 캡처

박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라클' 캡처

그는 자신의 채널에서 전신 마비 환자가 혼자 옷 갈아입는 법부터 해서 심지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법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한 번도 누구를 가르치기 위해 영상을 찍은 적이 없다. 계단이 있으면 휠체어 환자는 어떻게 가는지, 장애인은 어떻게 씻는지 등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021년 박위씨가 팔굽혀펴기 100개에 도전하는 영상. '위라클' 캡처

2021년 박위씨가 팔굽혀펴기 100개에 도전하는 영상. '위라클' 캡처

“조회 수 1이 한 생명”

어떻게 보면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영상에 담는 박씨지만, 처음부터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고 이후 초반 집 밖으로 나설 때면 사람들이 나를 ‘잠시 휠체어를 타는 사람’으로 봐주길 바랐다”고 했다. 소변줄과 연결된 소변팩은 감추고 싶은 돌덩어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르게 보는 시선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것 모든 것이 재활이었다. 틀린 게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스스로 되새기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박위씨가 6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박위씨가 6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박씨의 유튜브 콘텐트에는 같은 휠체어 환자, 장애인들이 쓴 댓글이 유독 많다. 그는 생을 포기하려던 장애인이 우리 영상을 보고 ‘용기를 얻어 살기로 결심했다’는 댓글이나 메일을 받을 때 가장 보람참을 느낀다고 한다. 박씨는 “조회 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콘텐트 제작자이지만, 조회 수 1이 한 사람의 생명이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박위씨가 서울시 용산구 자택 인근 공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다. 박씨 제공

박위씨가 서울시 용산구 자택 인근 공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다. 박씨 제공

박씨가 운영하는 유튜브의 채널명은 ‘위라클’이다. 본인의 이름 뒤에 기적(miracle)을 붙이고, ‘우리(We)’에 기적을 합친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박씨는 대부분의 영상을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온 그에게 기적의 의미를 물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예전에는 당연하던 일상이 전신 마비 판단을 받고 나서야 기적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제 모습이 기적이라고 한다. 비로소 이제야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위라클’ 채널 유튜버 박위씨의 별톡

‘위라클’ 채널 유튜버 박위씨의 별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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