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진동, 멜로디로 바꿨더니...인간 뇌 속이는 '라'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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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형태. [중앙포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형태. [중앙포토]

코로나 바이러스를 멜로디로 바꿔보면 어떨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마르쿠스 뷸러 교수가 문득 떠올린 아이디어다.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원형준을 만나 이 아이디어는 실제 약 1시간49분에 걸친 음계로 탄생했다. 뷸러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와 영상 인터뷰에서 “모든 물질은 진동을 하고, 그 진동은 주파수로 이뤄져 있다”며 “이 진동을 음계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원 씨는 지난 17일 중앙일보에 “감동이나 즐거움을 주는 음악과는 일단 결이 다르다”라며 “바이러스를 시각적으로만 이해하던 한계를 넘어 청각 데이터로도 소환함으로써 무겁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원형준 씨는 남북 화합 등 사회적 의미가 큰 이슈를 음악으로 풀이하는 린덴바움 페스티벌의 음악감독도 맡고 있는데, MIT의 여러 교수와 협업을 진행해오는 과정에서 뷸러 교수와 연이 닿았다. 이들은 코로나19의 음계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바이러스에 백신, 즉 항체가 투여될 경우 발생하는 진동을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바이올린ㆍ피아노ㆍ첼로 트리오로 연주되는 이 음악을 이들은 ‘항체 음악’이라고 명명했다. 이 항체 음악은 오는 30일 미 하버드대 샌더스 시어터에서도 연주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원 감독의 주도로 지난 2월 서울과 제주에서 연주된 바 있다. 아래 동영상이 그 연주 실황이다.

멜로디로 표현된 코로나19는 어떨까. 아름다운 고전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다. 원 감독에 따르면 특이한 점은 우선, 생각보다 느리고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강하고 빠른 전파력과는 또 다른 면모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spike, 뿔) 구조의 진동은 4분 음표로 느리고 반복적인 멜로디로 표현된다”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건 인간의 뇌를 속이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 또 한 가지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중에서 유독 ‘라’음이 없다는 것이다. ‘라’음은 오케스트라 등 합주를 할 때 튜닝을 위해 기준이 되는 음이다. 원 감독은 “코로나19 음계의 전체 마디가 3800개가 넘는데, 유독 ‘라’음만 전무하다는 건 풀어야 하는 궁금증”이라며 “인류에게 기준이 되는 음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없다는 게 흥미롭다”고 전했다.

원형준 감독과 뷸러 교수. 최근 MIT에서 만났을 때 사진이다. [원형준 감독 제공]

원형준 감독과 뷸러 교수. 최근 MIT에서 만났을 때 사진이다. [원형준 감독 제공]

코로나19와 백신이 싸우는 진동을 표현한 곡의 연주 실황을 들으면 피아노ㆍ바이올린ㆍ첼로 외에 일정하게 ‘땡땡’하는 소리가 되풀이된다. 박자를 맞추는 메트로놈 소리다. 원래 공연에서 메트로놈을 켜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원 감독은 이번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바이러스가 인체를 습격한 뒤 항체가 생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백질 구조를 음악으로 전환해 연주할 때, 거의 모든 마디가 엇박으로 진행된다”며 “항체가 바이러스를 추적해서 무력화하려는 과정에서 엇박이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일부 관객들은 이 메트로놈 소리를 두고 “인간의 심장 소리 같다”고도 반응했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진동을 데이터화해서 음계로 전환하는 작업. [뷸러 교수 제공]

코로나19의 진동을 데이터화해서 음계로 전환하는 작업. [뷸러 교수 제공]

원 감독과 뷸러 교수의 성과는 해프닝이 아니라 ‘항체 음악’이라는 일종의 현대 음악의 한 장르이자 과학적 연구에도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뷸러 교수는 본지에 “‘항체 음악’이라는 우리의 연구 결과가 ‘셀(Cell)’이라는 학회지에도 게재되었고, MIT 링컨 랩 연구소를 통해 소리와 바이러스의 상관관계를 파고드는 후속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 감독은 “‘항체 음악’이란 흥얼거리거나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멜로디는 아니지만, 다양한 리듬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엔데믹이 논의되는 시점이긴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항체 음악’ 연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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