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유홍림의 퍼스펙티브

진영의 집단사고, 사회 양극화 부추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사회 통합의 위기 극복

유홍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유홍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선거가 다가오면 음모가 기승을 부리고 선동이 판친다. 시민들은 후보자의 이름을 내걸고 몇몇 캠프로 갈라진다. 온 나라가 열병을 앓듯이 선거가 모든 일상을 삼켜버린다. 그러나 운명이 결정되면 한때 범람했던 강물이 잦아들듯이 폭풍 같은 열정이 조용히 흩어져 버린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19세기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묘사한 대선 전후의 정치 현장이다. 오늘날 대통령과 정부의 권한은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고, 그만큼 승자독식을 위한 편 가르기 전략이 더 깊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국민통합의 기치가 드높다. 정치인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국민을 갈라놓고 이제는 통합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국민을 객체화하는 통합의 구호에서 진정성이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 극심한 분열을 경험하고 나서 어떻게 통합을 쉽게 이룰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적대적 갈등을 부추기는 ‘영구적 선거 캠페인’이 민주 정치의 속성으로 굳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양극화 심해질수록 선악 이분법으로 가르려는 유혹 커지며
비슷한 사람끼리 소통하고 되먹임하는 반향실에 갇히게 돼
바람직한 정치는 적대적 갈등을 경쟁적 갈등으로 순화해야
이를 위해 절제하는 정부와 깨어있는 시민의 공동 노력 필요

분열·갈등은 정치의 조건이자 본질

유홍림의 퍼스펙티브

유홍림의 퍼스펙티브

역사를 되짚어보면 통합의 시대는커녕 순간조차 찾기 어렵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주의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페리클레스 시대에도 평민과 귀족은 치열하게 각축했다. 전쟁 와중에도 민주파와 과두파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만성적인 혼란을 대가로 치르면서도 지키려 했던 자치와 자유는 외부 제국 세력에 의해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고대 로마와 15세기 당시 피렌체의 경험을 비교 검토해서 정치학의 교본을 남기려 한 마키아벨리는 갈등과 불화를 정치의 본질로 파악했다. 그나마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그려진 로마 공화정도 귀족과 평민 간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래도 로마 공화정은 양 계급 간의 경쟁적 갈등이 공동선에 부합하는 법과 제도를 낳았다. 그러나 당파 간 적대적 갈등의 악순환에 갇혔던 마키아벨리의 조국 피렌체는 외침과 내분의 병폐에 시달렸다.

분열과 갈등은 정치의 조건이자 본질이다. 바람직한 정치는 적대적 갈등을 경쟁적 갈등으로 순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이다. 적대적 갈등 속에서 대립하는 주체들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반대편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만 궁극적인 정치적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서로를 경쟁자로 인정하는 경쟁적 갈등은 상대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을 인정한다. 정당과 의회 등의 민주적 제도들은 사회 내의 적대적 갈등을 경쟁적 갈등으로 전환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해왔다.

병적인 양극화는 민주주의 무너뜨려

중요한 이슈나 정책을 둘러싼 의견 대립은 건강한 민주 정치의 동력이다. 경쟁적 갈등은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든다. 그리고 민주 사회의 많은 권리는 정치적 양극화를 겪으며 얻어졌다. 특히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분노를 동원해서 대립 전선을 구축해야 할 필요도 크다.

그러나 양극화 전략은 위험한 정치 수단이다. 의견 충돌을 넘어 상대에 대한 혐오 감정이 팽배하면 벗어나기 힘든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갈라진 집단들은 서로를 정형화하고, 개별 구성원의 삶의 구체적 모습을 지워버린다. 가장 극단적인 목소리가 분열의 원심력을 더 키운다. 정도의 차이는 무시되고, 양자택일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대 그들’의 전선이 고착된다.

사회심리학자 피터 콜먼이 정신질환으로 진단하는 양극화(toxic polarization)는 세계적 현상이다. 헝가리와 폴란드 등 동유럽의 취약한 민주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포퓰리즘과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병적인 양극화의 원인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이념 갈등, 분열을 촉발하는 특정 이슈나 인물의 등장, 정부에 대한 찬반 등 나라에 따라 다양하다.

가장 위험한 난치성 양극화는 인종·종교·젠더·소수자·정통성 등과 연관된 ‘정체성’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다. 정치업자들에게는 분노한 유권자가 충성스러운 유권자다. 반대편을 위협적 대상으로 낙인찍기 위해 국가 정통성의 역사 논쟁을 벌이고, 젠더 평등이나 소수자 권리 등의 문제를 도구 삼아 사활 게임을 전개한다. 점차 양 진영은 권력 쟁취를 위해 게임 규칙과 민주 정치의 기본 규범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입법 과정이 흐트러지고, 사법부의 중립성도 훼손된다. 법과 제도마저 권력 투쟁의 도구로 전락하면 공적 신뢰와 함께 민주주의도 무너질 운명에 놓인다.

양극화 완화 방안 모색해야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상황을 더욱 단순화하려는 유혹이 커진다. 단순화의 매력에 끌려 흑백 또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현실을 재단하면 복잡한 현실이 지닌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힘들게 참아낼 필요가 없다. 세계관의 대결이 오히려 소속감과 안도감을 준다. 또 열렬 지지층을 갈망하는 정치인들, 시청률과 클릭 횟수에 촉각을 세우는 언론이나 뉴미디어, 권투 시합을 응원하듯 정치 무대를 관람하는 유권자들 모두 정치적 양극화의 주술에서 빠져나올 인센티브가 없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양극화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향실(echo chamber)에서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갈등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양극화로부터의 탈출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여러 통로가 있다. 극단적인 분열을 조장하는 소셜미디어를 피하라. 보수와 진보, 친정부와 반정부 등으로 양분되는 거대 집단보다 주변 이웃의 구체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라. 그들과 대화하며 공감하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거두고, 민주주의의 규범과 제도를 존중하라. 자신이 속한 정치적 ‘부족’ 집단을 비판적으로 감시하고, 내부의 의견 차이를 강조하라. 편견을 일상화하는 나쁜 농담과 풍자를 삼가라. 확증편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허위 정보를 반복하지 마라. 대다수의 국민은 생각만큼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지 않고, 정책 이슈들에 대해 큰 틀에서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라.

‘민주적 상상력’은 타인의 입장을 자신의 사유 과정에 포함하는 능력이다. 마음속 대화의 장은 자신과 상상의 타자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포럼이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타자의 입장을 내면의 대화에 포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병적인 양극화의 덫에서 풀려날 수 있다.

사회 통합 위한 정부·시민 역할

공동 정부와 협치를 위한 탕평 인사, 불평등을 줄이고 성장 동력을 살리는 경제정책, 사회서비스와 결합한 생산적 복지정책, 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 정비 등은 사회 통합을 위한 정책 차원의 노력이다. 물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정치 개혁 입법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과 제도 개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의 주장대로 “정치에서 극단을 열렬히 수용한 사람은 오직 극단의 정치만을 이해하게 된다.” 정치와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상상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정치 행위와 판단이 달라진다.

국민 통합을 일시적 방편이 아닌 장기적 과정으로 추진하려면 산적한 현안들의 복잡성을 수용하고, 단순화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그동안 경험한 정부 실패는 현실 문제를 단순화해서 해결하려는 무모함의 결과다. 사회 각 부문의 활력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의 의욕이 지나치면 시민사회의 활력이 줄어든다. 정치 과잉으로 인한 ‘소용돌이 현상’은 자율성을 해치고 획일주의의 폐해를 낳기 때문이다.

갈등 상황 속의 개인과 집단이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공동선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다.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 과정을 통해 상이한 의견들이 합리적으로 중재될 수 있다는 믿음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양자택일보다는 상호 보완의 논리로 갈등을 이해하고,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복잡한 스펙트럼 속의 중간지대를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비로소 통합의 가능성이 열린다.

유홍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