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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큰일났다, 초1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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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지난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겪어보니 초1의 공포는 한 번쯤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 경력단절의 최대 위기로 지목되는 초1. 아빠 육아 휴직자 세 명 중 한 명(33.4%, 통계청 발표)이 자녀 초1~2 때 회사를 쉰다. 왜 우리는 초1을 두려워하는가.

①오후 및 방학=가정통신문에 적힌 ‘주5일 대면수업, 점심 급식 포함’ 공지를 보고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그만큼 안 그런 학교가 많다는 얘기다. 작년 초1들은 코로나로 수업일 절반 이상을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요즘 아이는 주 2회 4교시, 주 3회 5교시 후 오후 12~1시 하교한다. 이후를 채울 학원 시간표를 한 달 새 세 차례 개비했다. 교내 방과 후 수업이 있지만 수강신청이 대학 교양과목 신청보다 치열했고, 돌봄교실은 아이가 하릴없이 시간만 보낼듯해 포기했다. 학사일정을 보니 여름방학 한 달, 겨울방학 두 달…공포 그 자체다. 더도 말고 어디선가 유치원 때만큼만, 오후 너댓시까지만 ‘원스톱 교육(식사포함)’을 해준다면 내 월급을 다 줘도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일 모교인 대광초등학교를 깜짝 방문해 실내화 가방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일 모교인 대광초등학교를 깜짝 방문해 실내화 가방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뉴스1]

②준비물=입학 첫날 준비물 목록 21건이 날아왔다. 소독티슈, 물티슈, 곽티슈를 따로 사 보내고 개인 생수에 여분 마스크까지 챙기는 것쯤이야 ‘코로나 사피엔스’의 숙명으로 여겼다. 색연필, 사인펜, 네임펜 12색 세트를 각각 준비하는 것까지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난이도였다.

그런데 그다음 목록이 ‘A4 파일꽂이. 앞쪽 인덱스 뚜껑은 떼어주세요’다. 사물함에 넣고 쓸 플라스틱 책꽂이를 각자 사 보내라는 것이다. 인근 문구점 서너 곳을 헤매다 학교·학급마다 원하는 형태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 엄마! 이거 여기 있어!” ‘높이 5㎝ 투명 파일박스’를 발견하고 동료에게 승전보를 전하는 사람 옆에서 “인덱스 뚜껑 떼어지나요?”를 확인해 묻고 파일꽂이를 득했다.

‘책상 서랍 정리용 낮은 바구니(높이 7㎝ 이하)’를 찾아 헤맬 때는 차라리 ‘경찰 전통문(傳通文)’을 구하러 파출소를 돌던 수습기자 때가 그리웠다. 어떤 선거에서든 누군가 ‘준비물 제로 학교’를 공약하면 주저없이 그를 찍을 것 같다. 제대로 된 ‘방학 대책’을 내는 후보라면 주변에 선거운동을 할 용의도 있다. ‘돌봄 국가책임제’, ‘오후 3시 하교제’ 같은 말들이 정치권에 떠다니지만 정작 책상 속 플라스틱 소품에마저 개인의 시간·비용·노력을 요구하는 게 한국 학교의 현실이다.

맞벌이·한부모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이 공통적으로 초1에 갖는 두려움은 경제적 비용이나 단순한 돌봄 시간의 공백이 아닌, 요구되는 ‘관심’의 폭증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큰일났다, 봄이 왔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회의에서 읊었다는 시 한 소절에 이렇게 메아리친다. 큰일났다, 초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