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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혹 해소 못한 정호영 회견…윤 당선인이 결단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결백 강변했지만 국민 눈높이 한참 미달  

당선인 인식도 안이, 강행하면 민심 역풍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북대병원 부원장·원장 재직 시절, 두 자녀가 경북대 의대 편입학 시험에 합격해 ‘아빠 찬스’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아들의 병역특례 논란까지 제기됐다. 그 정 후보자가 1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논란을 적극 해명하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국민이 납득하기엔 거리가 멀어 오히려 의혹만 부채질한 회견이 되고 말았다.

정 후보자는 자녀의 의대 편입학 논란에 대해 “소개서에 부모의 이름과 직장을 기재할 수 없는 등 이중·삼중의 견제장치로 청탁이 불가능한 구조였다”고 했다. 그러나 정 후보자 딸은 구술 평가 당시 특정 고사실에서 만점(60점)을 받았는데, 면접관 3명 전원이 정 후보자와 인연이 있는 교수들로 확인됐다. 한 명은 정 후보자와 의대 동문이었고, 다른 2명은 정 후보자와 여러 논문을 같이 쓴 공저자였다. 딸은 다른 고사실에 비해 유독 이 고사실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아들은 아버지가 병원장인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대구·경북 출신만 지원 가능한 특별전형이 신설돼 경북대 출신으론 유일하게 합격했다. 그는 학부 재학 중 두 편의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1주일에 19시간 수업을 들으며 40시간씩 연구활동을 병행하는 초인적 스펙을 쌓은 끝에 아버지가 병원장인 의대에 합격했다. 지원자 이름을 가린 ‘블라인드 방식’으로 전형했다는 주장만으론 이런 의혹이 해소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 후보자는 결백을 주장하며 편입학 논란은 교육부의 조사, 아들 병역 의혹은 국회가 지정한 의료기관의 재검사를 통해 각각 해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정부 부처인 교육부나 보건복지부 눈치를 보기 쉬운 의료기관에 조사를 맡긴다고 의혹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정 후보자는 국민 앞에 자청해 나선 기자회견에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도 그럴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는 것이 순리인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는데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모자란 안이한 인식이다. 입시·병역 의혹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다. 정권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팩트’ 운운하기 전에 의혹이 제기된 사실만으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중·삼중으로 검증망을 돌렸어야 마땅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조국 전 장관의 딸 의대 입학 의혹에 칼을 휘두른 끝에 문재인 정부를 침몰시키고 집권한 사람이 윤 당선인 아닌가. 그런 그가 임명한 장관 후보라면 자녀 문제를 더욱 강도 높게 걸러내야 했다. “법을 어겼다는 증거가 없지 않나”는 형식논리만으로 윤 장관 후보 임명을 강행한다면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그리고 6·1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