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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 공격하는 만성 외로움...날 도와줄 친구 없다? 의외 방법 [건강한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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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외로움 벗어나기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고, 알코올 의존증과 비슷한 수준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감정 상태가 있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쓸쓸한 느낌으로 축 처지는 만성 외로움이다.

가족·지인과 전화·SNS 연락 유지 #취미·등산 모임에 활발하게 참가 #일상생활 힘들 땐 전문가와 상담

인간의 외로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의 부족으로 고립이 장기화하면 문제가 된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정체성이 희박해질 때 크게 다가온다.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고대 정신건강연구소)는 “만성 외로움은 고혈압·당뇨병 같은 신체 질환과 달리 특별한 위험군이 따로 없어 성별·인종 등에 따른 차이가 없고, 전염력이 있는 감정이란 것이 문제”라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노인뿐 아니라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도 만성 외로움으로 인한 신체·정신적 문제가 많이 생겨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립감은 스트레스 불러 질병 원인
만성적인 외로움 상태를 몸은 스트레스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수면의 질이 낮아지고, 면역력 저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질병에 잘 노출되고, 회복력이 떨어진다.
 
만성 외로움이 관상동맥 질환, 뇌졸중,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고 조기 사망 위험을 30%가량 높이는 위험인자라는 것은 다양한 연구에서 밝혀졌다. 한 교수는 “만성 외로움은 우울증·불안증을 초래해 신경계에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 이 때문에 사이토카인 불균형 같은 면역 반응과 세로토닌·도파민 호르몬 분비 변화가 발생하고 뇌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외로움이 길어질수록 신체 활동 부족과 흡연, 알코올 의존 등 건강에 좋지 않은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런 만성 외로움은 주변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 징후가 있다. 한 교수는 “자존감이 낮고 자기혐오감이 있어 부정적이며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소진돼 있어 만남에 별 반응이 없다.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해 친구가 없고 깊은 고립감을 주변에서도 느낀다”고 말했다.

외로움에 대처하려면 먼저 외로움을 인정하고, 관리가 필요한 상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신호다. 한 교수는 “인간은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어 외로워도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외로우므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면 된다”고 말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식습관·운동에 신경 쓰는 것만큼 사람들과의 연결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의 하나다. 외로움이 느껴질 땐 가족이나 친한 친구 1~2명과 전화·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연락하며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건강·복지 프로그램 활용
그런 다음에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다. 취미 활동을 공유하는 모임에 들어가고, 등산 같은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인간의 뇌는 타인과 직접 만나 의사소통하고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 그래서 오프라인의 연결성에 대한 허기짐을 아직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라며 “초연결 사회에서 SNS로 연결성을 유지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오프라인에서의 연결성을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연결성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지지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노인복지관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학교·직장의 행복센터 등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람과 만날 기회를 활용하면 된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어렵다면 가벼운 산책이나 카페에 가는 것 등으로 최소한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직장 동료나 마트 점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것도 도움이 된다.

외로움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강력히 자리 잡은 것이 느껴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한 교수는 “외롭고 쓸쓸한 감정 때문에 일하러 가는 게 힘들고, 식사·청소를 챙기기 어려울 만큼 자신을 가라앉히면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다”며 “신경성 통증이나 생활습관으로 인한 제2형 당뇨병 발병·악화 등 신체 건강이 나빠졌을 때도 만성 외로움이 원인이 아닌지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외로움 완화 도와주는 다양한 친구

1 반려 동물·식물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는 다양하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어려울 땐 반려동물, 반려 식물을 돌보는 것도 외로움을 완화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외로움은 사회적 접촉이 부족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진실한 소통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다. 사람에 둘러싸여 있고 여러 모임에 참석해도 내면으로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지, 무엇이 나를 위로하는 대처법이 되는지 직접 시도하면서 확인해 보자. 그러려면 외로울 때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다.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상황을 글로 적어보면 감정을 객관화시켜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길러준다.

2 악기 배우기와 명상

외로움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다. 일이나 창의적 활동에 몰두했을 땐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도 외롭지 않다.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과 동떨어져 혼자 있는 고립 상태가 반드시 외로움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이유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상태인 ‘고독’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이면서 개인을 성장시키고 창조성을 높일 수 있는 상태다. 명상·요가로 몸과 마음을 이완하며 자기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등 혼자여도 여가생활을 즐길 방법을 찾아보자. 높은 수준의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뜨개질·컬러링북과 같은 활동도 집중력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3 선행·친절함

다른 사람을 돕는 활동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현명한 방법이다. 누군가 나에게 친절함을 베풀면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함·선행을 베푸는 것도 유사한 효과를 발휘한다. 타인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됐다는 생각이 들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거나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이 가진 경험·재능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 아는 사람이 힘든 사건을 겪었다면 편지를 쓰거나 같이 식사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는 것도 좋다. 이타적 행동에서 오는 정서적 포만감이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등 신체에도 긍정적 변화를 가지고 온다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란 용어도 있다.

도움말=박이진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참고 서적=『고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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