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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도 없는 기시다 고공행진…日언론조차 야당에 "좀 싸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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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야당은 정권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야당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국민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17일 자 사설) "야당은 이대로 괜찮은 건가."(교도통신 16일)

참의원 선거(7월 10일)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무늬만 야당'이 난립해 있는 일본 정치판을 향해 평소 비판에 소극적인 일 언론들조차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일본의 '공식적인' 여당은 자민당과 공명당. 하지만 그동안 2중대란 비판을 들어온 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민주당)까지 자민당의 주요 정책에 찬성으로 선회하고 있다. "별 하는 일 없다"는 비판을 받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부로선 '야당 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현재 기시다 총리 내각 지지율은 60% 전후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중의원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당선 후보들의 이름에 꽃을 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31일 중의원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당선 후보들의 이름에 꽃을 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야당이 국회에서 호되게 여당을 몰아붙이며 선명성을 강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 패배 후 민주당의 새 대표가 된 이즈미 겐타(泉健太·48)는 "'대결'이 아닌 '제안' 하는 야당이 되겠다"며 온건 노선을 선언했다.

그러더니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선 기시다 내각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경제안전보장추진법안에 스스로 찬성표를 던졌다. 경제안보법안은 반도체 등 공급망의 국내 구축 강화, 기간 인프라의 안전확보, 첨단기술의 관민 연구, 특허의 비공개 등 4가지 내용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고 IT(정보기술) 인프라 도입 시 사이버 공격 등 위험이 있는 국가의 제품은 아닌지 여부 등을 정부가 사전심사한다. "국가가 민간에 지나친 개입을 해 자칫 국가주의가 스며들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던 이 법안에 제1야당까지 선뜻 찬성하고 나서자 "지금 일본 국회는 무풍지대"(교도통신)란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다.

일본 중의원 본회의장. [교도=연합뉴스]

일본 중의원 본회의장. [교도=연합뉴스]

이 같은 현상은 야성이 강했던 중진 야당 의원들이 서서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정권교체에 대한 집념보다는 자신의 합리성과 이름을 널리 알리려는 신세대 야당 의원이 전면 부상한 데 따른 것으로도 해석된다.

2015년 당시 민주당은 안전보장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던 아베 정부에 대해 "입헌주의를 부정하려 한다"며 당의 사활을 걸고 맞섰다. 야당 공조 투쟁도 이끌었다. 하지만 이즈미 대표는 이번 경제안보법안에 찬성한 뒤 "이제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

일본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

일본 정치권에선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둘 공산이 크다"며 "그렇게 되면 중의원 해산을 스스로 결단하지 않는 한 앞으로 3년간 국정 선거가 없기 때문에 기시다 장기 정권이 계속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대로 가다간 자민당 보수세력의 오랜 염원인 평화헌법 개정의 흐름도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처럼 야당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마이니치는 17일 "여야의 경쟁이 정치에 긴장감을 만들어 건전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것"이라며 "정권감시는 야당에 불가결한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제발 좀 치열하게 싸우라는 촉구였다.

일본 정치 구도의 변화는 한·일 관계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보수 자민당이 강경 외교 노선으로 흐르면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야당이 했지만, 이제는 거기에 가세하는 세력이 됐다. 또 기시다 총리 주변에선 "잘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참의원 선거 전에 굳이 (지지율 하락의)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최근 일부 외교 전문가들이 다음 달 10일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총리가 직접 참석할 것을 제안했지만, 총리 관저 핵심 인사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크게 승리하면 장기 정권의 기반이 갖춰진 만큼 기시다 총리가 별 부담 없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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