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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는 쉽다" 끝까지 검수완박 막겠다던 김오수 변심…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이 4월 국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 처리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김오수 검찰총장이 17일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검찰로선 명운이 걸린 수사권 폐지가 눈앞인 상황에서 지휘부 공백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김 총장은 지난해 6월 1일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뒤 320일 만, 임기를 13개월 보름 앞두고 사표를 냈다.

김 총장은 15일만 해도 국회를 방문에 “검찰에 문제가 있으면 나부터 탄핵하라”며 끝까지 검수완박을 막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이틀 만에 사표를 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검찰 안팎에선 최후 수단으로 검토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의가 청와대의 면담 거부로 사실상 좌절되자 사표를 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월 14일 김오수 검찰총장. 김성룡 기자

4월 14일 김오수 검찰총장. 김성룡 기자

끝까지 막겠다던 김오수 전격 사표 “갈등·분란 책임진다”

김 총장은 이날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소위 검수완박 법안 입법절차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란에 대해 국민과 검찰 구성원들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라며 “책임을 지고 법무부 장관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직서 제출이 앞으로 국회에서 진행되는 입법과정에서 의원님들께서 한 번 더 심사숙고해주는 작은 계기라도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지금은 검수완박을 할 때가 아니라 지난해 1월 시행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의 안착에 집중할 때라는 뜻을 김 총장은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인권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새로운 형사법 체계는 최소한 10년 이상 운영한 이후 제도개혁 여부를 논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며 “이 경우에도 공청회, 여론 수렴 등을 통한 국민의 공감대와 여야 합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2019년 법무부 차관 재직 시 70년 만의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저로서는 제도개혁 시행 1년여 만에 검찰이 다시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어 검찰 수사기능을 전면 폐지하는 입법절차가 진행되는 점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했다.

김 총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 때만 해도 “검수완박이 시행되기 직전까지 남아 저지해보고, 안 되면 사직하겠다”라는 입장이었다. 당시 그는 “사표를 내는 건 쉽지만, 잘못된 제도가 도입되는 걸 막는 건 힘들다”라며 “잘못된 제도가 도입되지 않도록 (검찰총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막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잘못된 제도가 도입되면 사직 10번이라도 하겠다”라고 했다.

그날 김 총장은 “오늘 정식으로 대통령님께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확정한 검찰 수사권 전면 폐지법안과 관련하여 면담을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만일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공포 여부 결정 단계까지 간다면 김 총장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방침도 알려졌다.

김 총장은 15일엔 국회를 찾았다가 기자들에게 “검찰이 잘못했다면 책임은 검찰총장인 나에게 있다”라며 “입법에 앞서 나에 대한 국회의 탄핵절차를 먼저 진행해달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4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뉴스1

4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뉴스1

청와대 “입법의 시간” 면담 거부하자 심경 변화했나

하지만 주말 사이 김 총장은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 변수는 청와대가 김 총장의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는 점이라고 법조인들은 지목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5일 기자들을 만나 “지금은 국회가 입법을 논의해야 할 시간”이라며 “여러 차례 입법의 시간이라는 점을 말씀드렸고 그것으로 (면담 요청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겠다”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입법의 시간’이란 표현으로 여당인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에 힘을 싣자 최후 카드인 대통령 거부권도 기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같은 날 공개된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은 부칙 2조에서 “이 법 시행(공포 후 3개월) 당시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은 해당 지검·지청 소재지 지방경찰청이 승계한다”고 규정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문재인 정부 원전,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경찰로 강제로 넘기도록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검찰 내에선 “당초 김 총장이 오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현안 질의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막판에 큰 부담을 느껴 사표를 낸 게 아닌가 싶다”라는 추측도 나온다.

법무부에 제출된 김 총장의 사직서는 문 대통령에게 올라가고, 문 대통령의 수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최종 수리되면 전임자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같은 여권의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사퇴한 뒤 임명된 김오수 총장까지 문재인 정부의 두 명의 검찰총장이 여권의 ‘검수완박’ 추진에 반발해 중도 사퇴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김 총장의 사표가 수리되면 당장 박성진 대검 차장이 검찰총장 권한대행으로 검찰을 지휘하게 된다. 18일 법사위 현안질의에 김 총장이 나설지, 박 차장이 나설지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법사위 현안질의를 넘겨도 문제다. 박 차장도 최근 주변에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검찰 내 지휘부 공백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대검에선 고검장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만일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다면 전국의 고검장과 검사장, 대검 내 차장검사급 참모들 전원이 일괄적으로 사표를 낼지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김오수 검찰총장 사직서 제출 입장문

검찰총장은 소위 ‘검수완박’ 법안 입법절차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란에 대해 국민과 검찰 구성원들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국민의 인권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새로운 형사법체계는 최소한 10년 이상 운영한 이후 제도개혁 여부를 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이 경우에도 공청회, 여론수렴 등을 통한 국민의 공감대와 여야 합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법무부 차관 재직시 70년 만의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저로서는 제도개혁 시행 1년여 만에 검찰이 다시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어 검찰 수사기능을 전면 폐지하는 입법절차가 진행되는 점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합니다.

저는 검찰총장으로서 이러한 갈등과 분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법무부 장관께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모쪼록 저의 사직서 제출이 앞으로 국회에서 진행되는 입법과정에서 의원님들께서 한 번 더 심사숙고해주는 작은 계기라도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끝으로 검찰 구성원들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국민의 뜻과 여론에 따라 현명한 결정을 해줄 것을 끝까지 믿고, 자중자애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업무에 대해서는 한 치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수행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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