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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간판 읽게돼 행복"...청암고 2학년 오창순 학생은 86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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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6·25 전쟁이 났어. 피난 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중학교는 꿈도 못 꿨지. 교복 입은 학생들 보면 부러웠어. 내가 못 갔으니까….”

1936년에 태어난 오창순씨는 올해 86살의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엄마이자 할머니로만 불렸던 창순씨에게 ‘학생’이라는 호칭이 다시 생긴 건 지난 2019년. 창순씨가 여든 세 살의 나이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며 중학교에 입학한 때였다.

청암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오창순씨가 14일 학교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 양수민 기자

청암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오창순씨가 14일 학교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 양수민 기자

창순씨는 “공부 못한 게 한(恨)처럼 남아있었다”고 했다. “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른 순간에도 학교에 가고 싶을 정도”였지만, 당장 생존하기 바빴던 현실이 그에게 학업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쟁 통에는 살아남느라 바빴고, 전쟁 후에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너무 늦은 나이가 됐다.

창순씨에게 만학(晩學)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아는 사람이 등에 책가방을 메고 가는 걸 보면서다.

“그 사람도 나이가 많아.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공부하러 간대. 그래서 팔소매를 붙잡았어. ‘나도 데려가달라’고 했지.”

그렇게 도착한 곳이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청암중·고등학교(고등학력 인증 교육기관)다. 14일 창순씨와 중앙일보가 만난 곳도 학교 1층이었다.

전쟁 때문에, 딸이라, 가난해서…“공부 못해 서러웠다”

청암중학교에 재학 중인 박무성(왼쪽), 박무순 자매가 기자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수민 기자

청암중학교에 재학 중인 박무성(왼쪽), 박무순 자매가 기자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수민 기자

청암중·고교에는 창순씨같은 ‘만학도’가 많다. 현재 중학교엔 600여명, 고등학교엔 700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이들이 학업을 멈춰야 했던 계기는 학생 수 만큼 다양했다.

중학교 1학년에 함께 재학 중인 자매 장미란(66)씨와 장은아(61)씨는 ‘가난’이 큰 이유였다. 미란씨는 “집안 환경이 어려워서 중학교 입학시험도 붙었는데 가지 못했다. 밤새 엉엉 울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자매 박무성(73)씨와 박무순(70)씨를 붙잡은 건 ‘성별’이었다. 무순씨는 “아버지가 ‘딸들을 가르쳐서 뭐햐냐’면서 너희는 한글만 알면 된다고 했다”며 “딸인 게 죄인 시대였다”며 말끝을 흐렸다. 언니 무성씨는 “그 시절은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덧붙였다.

다시 시작한 학업을 멈추지 않기 위해 이들은 고군분투 중이었다. 은아씨는 학교가 끝나고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지만, 2~3시간을 자면서도 매일 학교에 온다. 무순씨는 “학교에 가자”는 언니 무성씨의 말에 바로 짐을 싸서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합덕읍에서 노원구까지는 약 130km 거리다.

“길거리 영어 간판도 읽게 돼 행복”

14일 영어 수업이 진행 중인 청암중학교 한 교실의 모습. 칠판에 알파벳이 쓰여있다. 양수민 기자

14일 영어 수업이 진행 중인 청암중학교 한 교실의 모습. 칠판에 알파벳이 쓰여있다. 양수민 기자

이들은 “공부하니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순씨는 “처음으로 교과서를 받았을 때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와중에도 영어책이 뭔지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책을 직접 만지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무성·무순씨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다.

창순씨도 “영어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읽지 못했던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다. 창순씨는 “글씨는 있는데, 뭔지 모르니 답답하고 서러웠다”며 “지금은 길거리에 있는 영어 간판도 다 읽는다”고 했다. 아는 게 많아지니 자신감도 더불어 따라왔다. 미란씨는 “친구들이랑 문자를 하면 ‘해피(행복하다)’, ‘땡큐(고맙다)’ 이런 말이 나온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젠 나도 다 안다”고 덧붙였다.

배움에는 나이 없어…“나를 위해 살자”

오창순씨는 “건강만 허락하면 대학교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창순씨는 “내가 살아온 중에 제일 잘한 일이 여기 학교를 다닌 것”이라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니 소원이 이뤄진 거나 다름 없다”고 했다.

창순씨와 미란·은아씨, 무성·무순씨는 내일도 학교에서 책을 펼칠 것이다.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하고, 기억도 잘 안 나고, 시험지를 보면 가슴이 떨리지만, 그럼에도 배움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미란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배움에 시기는 없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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