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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 "막아달라" 러브콜…검수완박 키 쥔 정의당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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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심상정 후보의 2.37%(80만3358표) 득표 이후 정치권 내 존재감이 바닥을 쳤던 정의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권말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폭주에 곧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카드로 맞불을 놓으면서 여ㆍ야가 동시에 정의당의 동의를 갈구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표단 회의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과 검찰의 동일체를 상징하고 검찰공화국의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국회사진기자단]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표단 회의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과 검찰의 동일체를 상징하고 검찰공화국의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국회사진기자단]

정의당은 지난 13~14일 여러 단위의 회의를 거쳐 ‘검수완박 4월 처리 반대와 한동훈 지명 철회’를 당의 공식 입장으로 결정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폐기된 검사동일체를 더욱 강력히 되살려 아예 대통령-검사 동일체를 꾀하는 모양”이라며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동력을 얻기는커녕 검투사 한동훈을 불러 사생결단의 진영대결만 심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 후보자 지명으로 더욱 강대강 진영대결로 치닫고 있는 ‘검수완박’의 4월 임시국회 강행처리는 국민적 공감과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양당의 쇄도를 가운데서 양쪽으로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의 실세 원내대표인 권성동 의원은 지난 14일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를 예방해 “취임하자마자 민주당이 너무 큰 폭탄을 선물을 안겨줘서 제가 그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허니문 기간도 없이 몰아세우는 것을 보면서 또 국회가 만만치가 않구나, 원만한 대화 협치와 상생이 만만치 않구나 느꼈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그 말미에는 “정의당은 정의당답게 앞으로도 독자 노선을 고수해주십사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172석 거야(巨野)가 될 민주당의 박홍근 원내대표도 같은 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의당 측이 ‘왜 이 문제를 추진했는지 본인들이 충분히 듣지 못했다’고 하길래 ‘당연하다. 우리도 어제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취지와 진정성, 우리가 생각하는 안에 대해서 충분하게 설명 드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양당 모두 아직 정의당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와 14일 오전 국회 정의당 원내대표실을 예방한 국민의힘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가 대화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와 14일 오전 국회 정의당 원내대표실을 예방한 국민의힘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가 대화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런 사이 정의당은 상당한 실익도 얻어냈다. 정의당은 14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합의의 최대 수혜자다. 양당은 전국 11개 선거구에서 시범적으로 1개 선거구 당 3인 이상의 기초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또 현행 중선거구제 하에서 4인 이상 의원을 뽑는 선거구를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2인 선거구로 쪼개는 관행의 근거가 됐던 선거법 조항을 삭제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의당 관계자는 “광역 시도 의회도 이번 합의의 틀을 존중해 선거구를 획정한다면 정의당은 적게는 100석 많게는 150석 정도의 기초의회 의석 점유가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기초의원 선거에 170명의 후보를 내 26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전체 2926석인 기초의회 의석 중 점유율 0.009%에 불과했던 정의당에겐 단비와도 같은 결정인 셈이다.

지난 8일부터 다당제 정치개혁법안 처리를 촉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4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극적 합의를 도출하자 단식을 중단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 8일부터 다당제 정치개혁법안 처리를 촉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4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극적 합의를 도출하자 단식을 중단했다. 김상선 기자

정의당과 거대 양당은 모두 이번 합의가 검수완박 및 인사청문 정국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익명을 원한 한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법 개정이 민주당의 대선 공약이긴 했지만 자신들의 단기 이익이 훼손되는 합의를 굳이 해야할 동기가 부족했다”며 “검수완박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 지명 정국에서 정의당의 선택은 양당에 6석 이상의 의미”라고 말했다. 당장 민주당은 정의당의 조력이 있으면 법안 별로 회기를 쪼개 의결하는 편법을 구사하지 않더라도 의결(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로써 무제한 토론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당이 잡은 기회는 곧 위기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조국 사태 당시부터 첨예한 진영대결 이슈가 되어버린 검수완박 문제에서 정의당은 동의하면 다시 ‘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를, 끝까지 반대하면 ‘진영의 배신자’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쓰기 쉽다”고 말했다. 배진교 원내대표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오기 전에 합리적 해결을 도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의 선택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놓일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대선 승리의 컨벤션 효과 탓에 국민의힘의 수도권 우세가 예측되는 상황이어서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정의당 선전=민주당 패배’의 등식이 재연되기 쉽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정의당 인사는 “내부에선 벌써부터 올곧은 노선으로 정의당의 지지층을 조금씩 쌓아가야한다는 주장과 민주당과 적절한 협력으로 실익을 챙겨 존립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양론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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