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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액 400% 넘겼다" 평균 57세, 아마추어 아줌마들의 반란

중앙일보

입력

11일 방문한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물레마실협동조합에 다양한 색깔의 실이 보관돼 있다. 이병준 기자

11일 방문한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물레마실협동조합에 다양한 색깔의 실이 보관돼 있다. 이병준 기자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 1층에는 ‘평균 나이 57세’의 조합원들이 일하는 패션협동조합이 있다. 조합원은 주로 은퇴한 직장인이나 장기 미취업 여성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부분 재봉틀을 쥐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옷, 가방, 슬리퍼, 앞치마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창립 멤버인 유경숙(66)씨는 수십년간 다니던 회사를 건강 문제로 그만뒀다. 이후 집에서 10년째 쉬다 2015년 재봉을 처음 배우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배워 놓으면 나이 먹고 심심하진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유씨는 성동구청과 한국패션사회적협동조합이 주최한 패션 교육 과정(고용노동부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사업)을 신청했고, 함께 교육을 받은 안철수(64) 협동조합 이사장 등과 이듬해 ‘물레마실협동조합’을 세웠다. 이름에는 실을 잣는 ‘물레’를 통해 ‘마실’(마을)이 이어진다는 뜻을 담았다.

손 떨며 만든 첫 제품

처음으로 들어온 주문은 서류가방이었다. 성동구청 공무원들이 쓸 서류가방 약 200개를 만들어야 했다. 유씨는 “원단의 식서(원단이 풀리는 방향)와 푸서(식서의 직각 방향)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며 “재단 판에 원단을 놓고 일곱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선을 그리고 잘랐다. 기를 쓰고 (미싱을) 박아가면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긴장한 탓에 미싱기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고도 했다. 완성품을 받아 본 구청은 ‘너무 잘 만들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유씨는 “그 소리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물레마실협동조합이 처음 만들었던 제품인 서류가방의 모습. 이병준 기자

물레마실협동조합이 처음 만들었던 제품인 서류가방의 모습. 이병준 기자

‘오합지졸’로 시작한 물레마실은 올해로 6살을 맞았다. 현재는 여러 국내 브랜드 제품의 위탁 생산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한 제품을 마트 등에 납품하고 있다. 최근 물레마실과 강화소창이야기협동조합이 연세대 학생들과 함께 만든 소창(면직물) 행주·수건은 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목표액의 400%를 넘기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며 위기를 맞기도했지만, 새 거래처를 트며 활로를 찾았다.

서울주택도시공사로부터 사무실을 지원받는 등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속에서 탄생했지만, 처음부터 잘 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고 한다. 안 이사장은 "다 아마추어들이다 보니, '이게 될까'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협동조합 수는 1만 9429곳으로 2년 전보다 33.8% 늘었지만, 같은 기간 운영률은 54.2%에서 49.5%로 오히려 감소했다. 절반 이상이 폐업 혹은 사업을 중단하거나 사업자를 등록하지 않은 것이다.

“방향 잡는 데에만 2년, 600회 이상 교육 진행”

11일 물레마실협동조합에서 봉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병준 기자

11일 물레마실협동조합에서 봉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병준 기자

생존의 배경에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안 이사장은 "처음에 어떤 걸 만들어야 할지 방향을 잡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며 "전·현직 봉제산업 종사자들을 초대해 옷 만드는 법만 200회 이상, 염색법 등까지 600회 이상 교육을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시행착오 끝에 우븐(woven)과 면 원단을 이용해 파자마·앞치마 같은 홈웨어를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고 했다.

안 이사장은 “나이 먹어서 손자·손녀 용돈이나 주려 조그맣게 하려 했는데, 이렇게 멀리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견하다”며 “우린 공장처럼 많은 양을 찍어낼 수는 없지만, 제품의 퀄리티엔 자신이 있다. 꾸준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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