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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못하는 평화 국가' 깬다…우크라 적극 돕는 日 속내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군이 갑작스럽게 쳐들어온다. 애써 막아보려 하지만, 러시아군은 교착상태를 깨고 방어진지에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건 일본 자위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배경으로 한 소설『소대』얘기다.

올초 아쿠타가와상(제166회)을 수상한 스나가와 분지(砂川 文次·32)의 소설로 자위대 1소장을 주인공으로 러시아군과의 전투를 그렸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다시 한 번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사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이 소설에 대해 “미래를 예견한 것 같은 내용”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전쟁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 더불어 자위대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해 도쿄도(東京都) 네리마(練馬)구 등에 있는 육상자위대의 아사카(朝霞)주둔지에서 병력을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해 도쿄도(東京都) 네리마(練馬)구 등에 있는 육상자위대의 아사카(朝霞)주둔지에서 병력을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에 자위대 지원…NYT “일본, 결정적 순간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위대다. 세계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평화헌법을 통해 ‘전쟁할 수 없는 나라’를 유지해왔다. 자위대는 일본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만 방어할 수 있는(專守防衛) 원칙을 고수해왔는데, 이 자위대가 달라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자위대의 헬멧과 방탄조끼를 지원했다. 자위대 물자가 해외로 지원된 것은 처음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의미있게 해석했다. NYT는 지난 12일 “미국과 유럽의 무기공수와 비교할 순 없지만, 이번 군사 지원은 결정적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군사물자 수출과 관련한 방위장비 이전에 대한 운용지침까지 수정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는데, 저변엔  우크라이나전을 틈타 ‘전쟁하지 않는 평화 국가’로서의 제약을 풀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자위대 보폭이 넓어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4일 일본 정부가 자위대 수송기를 우크라이나 주변국에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수송기 파견은 맞지만 유엔난민기구(UNHCR)이 요청한 데 따른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모포 등 난민 지원에 필요한 물자를 공수하는 데 자위대 수송기를 지원하는 것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내각은 “이달 중 수송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10만t급)가 동해 공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을 했다.   미 7함대는 지난 13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이 훈련 사진을 공개했는데, 핵실험 준비 동향이 포착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10만t급)가 동해 공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을 했다. 미 7함대는 지난 13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이 훈련 사진을 공개했는데, 핵실험 준비 동향이 포착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당 강령과 반대되는데도 “자위대 필요하다”는 야당

자위대를 강조하고 나선 건 일본 정부와 여당만이 아니다. 대대로 자위대 보유는 헌법 위반이라는 강령을 보유하던 일본 공산당의 입장도 달라졌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 공산당 위원장은 지난 10일 연설을 통해 “일본이 침략당한 경우 자위대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 생명과 일본 주권을 지키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그만큼 일본 내 여론이 자위대 강화 쪽으로 쏠려있단 의미기도 하다.

자민당과 정부는 한발 더 나갔다. 지난 15일 자민당은 ‘우주 방위’까지 언급하면서 방위예산 확충을 정부에 제안했다. 중국이 우주방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이대로 볼 수만은 없다는 계산이 깔린 언사였다.

일본 정부는 최근 자위대법을 개정해 긴급사태가 발생한 국가에서 자위대가 외국인 수송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을 이끄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방위비를 11% 늘려야 한다고 한술 더 떴다. 올해 일본 방위비는 처음으로 본 예산(약 5조3687억엔)에 추경예산을 더해 6조엔(약 59조엔)을 기록했는데, 아베 전 총리는 “2023년에는 본 예산으로 이 정도(약 6조엔) 금액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본 예산이 6조엔 규모가 되면 올해보다 약 11% 늘어나는 셈이다.

“북핵 위협, 중·러 긴밀…주시해야”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뒤쪽)과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 호위함인 이즈모함이 나란히 항해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뒤쪽)과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 호위함인 이즈모함이 나란히 항해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자위대 강화 배경엔 일본을 둘러싼 ‘삼각 위험’에 대한 우려가 녹아있다. 일본은 북방영토(쿠릴열도)를 놓고 러시아와 오랜 대립 중이고,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올들어 북한의 잇딴 미사일 발사로 일본은 4년 전 중지했던 미사일 발사를 대비한 주민 대피 훈련마저 재개하기로 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은 더욱 올라가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은 지난 12일 회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협력도 긴밀해 동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며 견제 발언을 내놨다.

방위성은 아예 ‘중국’을 콕 집기도 했다. 방위성은 지난 15일 영공침범 우려에 따른 자위대 출동 건수를 공개했다. 지난해 자위대 긴급발진은 총 1004번. 이 가운데 중국에 의한 긴급발진이 전체의 72%(722회)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기에 의한 대응은 8회 늘어난 266회로 조사됐다.

지지통신은 “중국이 정보수집기나 신형 무인기를 동원한 비행을 여러 차례 실시했다”고 늘어난 중국의 위협을 전했다. NYT 역시 “일본 방위성이 중국을 가장 심각한 장기적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NYT는 “극우 성향의 아베 전 총리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어떤 면에서는 일본의 재무장과 관련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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