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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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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요즘 페이스북은 온통 꽃잔치다. 예년보다 조금 늦은 대신 더 예쁘게 핀 벚꽃 사진이 SNS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신이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는 꽃과 나무인 게 분명하다. 어찌 이리 해마다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는지”라는 어느 페친의 감탄사에도 하트가 절로 눌러진다. 꽃길은 어디든 인산인해다. 저녁 산책길도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다. 2년 넘게 코로나19와 싸워온 시민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자가격리를 끝내고 일제히 봄을 만끽하러 나온 모습이다. 오페라 ‘신데렐라’에서 왕자로 변신한 시중이 신붓감을 찾는 설레는 마음을 “4월의 벌처럼 행복한 심정”이라고 노래할 만큼 4월의 꽃은 매력 그 자체다.

하지만 빛에는 늘 그늘이 존재하는 법. 거리에 상춘객이 넘쳐날수록 상대적 박탈감만 커지는 이들 또한 적잖다. 거동이 불편해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꽃을 보러 나올 수도 없는 장애인들, 창문 하나 없는 지하방에서 홀로 외로이 지내야 하는 서민들, 실직과 부도에 좌절해 꽃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4050 가장들, 20대 자살률 세계 1위의 한국 사회에서 매일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청년들. 우리 주변의 ‘잊힌 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이들에게 4월의 꽃은 ‘그림의 꽃’일 뿐이다.

약자, 소외된 자까지 함께하는 게
정치가 지향할 진정한 국민 통합

그런데 꽃길 못지않게 최근 붐비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새 정부 출범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 요직은 물론 공기업과 유관단체, 광역·기초의원 등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발걸음으로 국회와 인수위 주변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여야 중진 의원들 책상에 이력서가 수북이 쌓여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감투가 한꺼번에 쏟아지자 출세 욕망, 권력을 쥐려는 욕망,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일제히 분출하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양상이다. 공직은 봉사·희생·책임이 담보돼야 하는 자리임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온데간데없이 천박한 기회주의와 이기주의만 판치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할 수 있을까. 엄연히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일원이자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주권자이지만 현실의 높은 벽과 무관심에 신음하고 있는 자들도 꼼꼼히 챙겨주길 기대할 수 있을까.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팡팡은 코로나19 확산 때 우한 봉쇄의 나날을 일기로 남기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 나라가 문명국가냐 아니냐의 기준은 고층 빌딩이 많거나 군대가 강하거나 과학기술이 발달했거나 불꽃놀이가 호화찬란하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다. 기준은 단 하나다. 그것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다.”

우리도 과연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요즘 정치권도 통합이 화두지만 좌우나 진보·보수 통합을 넘어 약자와 소외된 자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진정한 국민 통합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마침 16일은 세월호 희생자 8주기고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이들과 함께하는 마음을 가슴에 새겨볼 때다. 이를 계기로 ‘내 마음속의 장애’가 나를 옭아매고 있진 않은지도 한 번쯤 돌아볼 때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최근 원로 탤런트 김영옥씨는 세월호 추모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 곡을 다시 불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먼저 떠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고 싶다며 나지막이 노래를 이어갔다. ‘나는 천 개의 바람/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저 넓은 하늘 위로/자유롭게 날고 있죠.’ 그들의 넋이 이 땅, 이 현실에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돕는 것은 결국 남은 자들의 몫이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닐 터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정치의 기본이자 본령이기 때문이다. 어느 노교수의 말처럼 이젠 유능하지 않은 진보, 일머리 없는 진보는 반쪽 진보인 시대가 됐다. 따뜻하지 않은 보수, 위만 바라보는 보수도 마찬가지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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