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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직업윤리 ‘이해충돌’ 공정과 상식에 반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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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26면

콩글리시 인문학

1960년대 종로3가에 있던 시사영어학원은 대학생들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이 학원의 타임지 특강담당 강사는 변영태(卞榮泰 1892-1969)였다. 이승만 대통령 때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맡아 한국전쟁 후 국제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던 분이다. 고려대 교수를 지내다가 장관이 되고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다. 변총리에게는 유명한 두 가지 일화가 전해온다.

첫째는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 비용을 정산하고 남은 돈을 모두 국고에 반납했다. 나라 살림이 어려울 때 여비가 풍족하지 못했음에도 국민 혈세를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둘째는 여행 가방에 늘 아령을 챙겨 넣고 다녔다. 바쁜 일정 속에 호텔 방에서 체력 단련을 했다. 그는 옛 선비들이 벼슬에서 물러나면 낙향해서 후학을 가르치던 선비정신을 실천한 공직자였다. 국무총리 출신이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로펌(law firm)에 가면 천문학적 고액 연봉에 고급 리무진 그리고 화려한 사무실이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나는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김병일(金炳日)이라는 분을 잘 모른다. 다만 그가 통계청장, 조달청장, 그리고 물 좋은 경제부처 장관을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낙향해서 국학진흥에 힘쓰고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되어 퇴계 정신을 기리고 선비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사실을 기억한다. 딸깍발이 판사 조무제(趙武濟)는 대법관에서 물러나자 곁눈질하지 않고 곧바로 낙향해서 후학을 가르쳤다.

우리나라 고위공무원들에게는 정년이 없다고 한다. 물러나면 산하 기관이나 관련 단체로 가서 감사나 이사장을 맡는다. 그 대표적인 곳이 변호사 집단 로펌이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 덕에 다시 로펌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대 로펌 김앤장 고문으로 있다가 경제부총리, 총리를 역임하고 요직을 거친 뒤 다시 김앤장 고문으로 복귀했다. 2017년 이후 약 4년간 고문료 20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문이 뭔가? 특정 집단을 위해 자신의 경험 지식 정보 의견을 제공하고 상당한 보수를 받는 사람이다. 이른바 전관예우다. 김앤장 고문이었다는 것 자체가 큰 흠결은 아니다. 다만 공직에서 로펌으로, 다시 공직을 맡고 또 로펌에 복귀하는 회전문 처신이 직업 윤리상 적절한 일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게다가 법률가도 아닌 행정관료 출신들이 로펌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서 공직에서 취득한 기밀을 무기로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을 상대로 로비와 압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앤장에는 비법조인 출신 고문이 87명이나 있다. 정부 곳곳에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고문(advisor)이든 자문(consultant)이든 본질은 똑같은 로비스트(lobbyist)이다. 로비스트는 특정 사안에 대하여 공무원이나 정부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법 제도를 특정 집단에 유리하도록 고치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은 윤 당선인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에 반(反)한다.

김은혜 대변인은 “한 후보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점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 많은 국가적 난제를 풀어가는데 적임자”라고 했다. 역대 정권에 걸쳐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자기관리의 끝판왕,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 인사들은 이념과 소신이 뚜렷하지 않은 자기 변신에 능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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