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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윤일봉 등과 동행, 동구권에 K영화 돌풍 일으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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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22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5〉수교국과 영화 교류

김지미 지미필름 대표(왼쪽)와 김동호 영화진흥공사사장이 1989년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한국영화주간에 대표단으로 참가해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김동호]

김지미 지미필름 대표(왼쪽)와 김동호 영화진흥공사사장이 1989년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한국영화주간에 대표단으로 참가해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김동호]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 참가하고 있을 때다. 7월 16일 오전 11시 헝가리의 영화진흥공사 격인 항가로필름의 서보 이슈트반(헝가리는 성이 먼저 옴) 사장을 만나 영화 교류에 합의했다. 11월 초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와 다른 도시 한 곳에서 한국영화주간을 열고 다음 해 1월 중 한국에서 헝가리영화주간을 개최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따라 89년 11월 22~28일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영화주간이 열렸다.

‘티켓’(임권택)·‘감자’(변장호)·‘내시’(이두용)·‘성공시대’(장선우)·‘아다다’(임권택)의 다섯 편이 선정됐다. ‘티켓’의 제작자이자 주연인 김지미, 영화배우협회 윤일봉 회장, 문화공보부 장영호 과장, 동아일보 남달성 기자와 건축가 김원으로 대표단을 꾸려 부다페스트로 갔다. 김원 건축가와 동행한 건 당시 종합촬영소 건립을 추진 중이어서 헝가리 영화 스튜디오를 시찰하고 귀로에 영국 문화시설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노태우 대통령 헝가리 방문 겹쳐 효과

헝가리 한국영화주간 리셉션에 참석한 배우협회 윤일봉 회장과 김지미 대표, 김동호 사장(오른쪽부터). [사진 김동호]

헝가리 한국영화주간 리셉션에 참석한 배우협회 윤일봉 회장과 김지미 대표, 김동호 사장(오른쪽부터). [사진 김동호]

김지미는 6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를 시작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려 7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당대 최고의 여배우다. 지미필름을 세워 ‘티켓’(임권택)·‘명자 아끼꼬 쏘냐’(이장호) 등도 제작했다.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두 차례 지내며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벌였다. 문화공보부 재직 시절에도 여러 차례 만났지만, 함께 헝가리를 여행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그 뒤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미국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지미 회고전’을 준비하며 2009년 8월 30일과 2010년 3월 5일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를 만났다. 윤일봉은 34년생으로 나보다 세 살 많은데, 55년 ‘구원의 애정’(민경식)으로 데뷔하고 ‘오발탄’(유현목)·‘맨발의 청춘’(김기덕)·‘별들의 고향’(이장호) 등 100여 편에 출연한 원로배우다.

현지에 가서야 행사가 그해 9월 양국 수교 뒤 이뤄진 노태우 대통령의 헝가리 방문 일정(11월 23~28일)과 겹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영화주간이 마치 대통령 국빈방문의 부대 행사처럼 보였지만, 서로 상승효과도 거뒀다. 11월 22일 개막작 ‘티켓’이 상영된 브로드웨이 극장은 장사진을 이뤘다.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엔 헝가리 영화·방송인 연합회 회장인 얀초 미클로시 감독과 서보 이슈트반 항가로필름 사장이 참석했다. 상영작마다 만원을 이루면서 현지 신문·방송에 연일 크게 보도됐다. 노 대통령 방문 기사보다 지면을 더 많이 차지했다.

90년이 되자 나는 모스크바·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알마티(카자흐스탄·당시엔 러시아어로 알마아타)에서 한국영화주간을 추진했다. 마침 그해 3월 소련 주재 한국영사처가 모스크바에 개설됐다. 89년엔 ‘아제아제 바라아제’ 한 편만 들고 순회했지만, 그해에는 ‘씨받이’·‘땡볕’(이상 임권택)·‘연산일기’(신상옥)·‘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장길수)·‘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송영수)·‘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정진우) 등 여덟 편을 상영했다. 개막작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정진우 감독, 배우 정윤희, 영화업협동조합의 강대선 이사장, 문화공보부 김용문 국제교류국장과 해외공보관의 박영길 부장과 기자 네 명이 함께 갔다.

대표단은 8월 18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89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정진우 감독은 고 강신성일과 함께 나와 동갑이다. 63년 ‘외아들’로 데뷔해 ‘초우’(66)·‘석화촌’(72)·‘자녀목’(84) 등 50여 편을 연출하고 110여 편을 제작한 원로 영화인이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2014)에서 정진우 회고전을 열었다.

정윤희는 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하고, 77년 4~10월 TBC 드라마 ‘청실홍실’에 장미희와 함께 출연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윤정희·문희·남정임이 1세대, 정윤희·유지인·장미희는 2세대 트로이카로 각각 불린다.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영화주간에 참가한 정진우 감독, 배우 정윤희, 김동호 사장(오른쪽부터). [사진 김동호]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영화주간에 참가한 정진우 감독, 배우 정윤희, 김동호 사장(오른쪽부터). [사진 김동호]

정윤희를 처음 만난 건 79년 이경태 감독을 통해서다. 이 감독은 강남 신사동에 있던 서울시 공무원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던 오랜 친구다. 우리 두 사람은 70년대 후반부터 한남동 카페 가을에서 이 감독의 서울고 7년 후배인 이장호 감독, 최인호 작가와 자주 어울렸다. 이 감독이 79년 ‘도시의 사냥꾼’을 찍을 때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근처 식당에 주연배우 정윤희를 초대해 저녁을 함께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 정윤희가 누군지 몰랐다. 3시간 가까이 식사하면서도 겉도는 대화만 나누다 헤어졌다. 이 감독은 아마도 내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여겨 소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모와 연기로 인기를 독점하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모르다니, 그런 결례가 없었다. 뒤늦게 눈치챈 이 감독이 몇 차례 정윤희와의 점심 자리를 마련해 체면을 살려줬다. 이 감독은 그 뒤 ‘불새’·‘사랑이 깊어질 때’·‘별들의 고향 3’ 등을 연출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정윤희는 중앙건설의 조규영 회장과 결혼하면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그와 모스크바에 함께 갈 때 나는 경기고 후배인 남편 조 회장의 허락을 받았다.

8월 20일 저녁 모스크바 번화가인 노브로시스극장에서 열린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시사회는 1000장의 입장권이 상영 세시간 전에 매진돼 한국영화 열기를 입증했다. 이어 러시아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엔 공로명 주러 영사처장(9월 30일 수교 이후 92년 1월까지 초대 주러 대사)과 함께 미하일 박 교민회장과 성악가 루드밀라 남을 비롯한 교민 300여 명, 구면인 리아빈스키 영화부 차관, 유리 호자이예프 소련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한국영화주간은 모스크바(8월 20~27일)·타슈켄트(8월 31~9월 5일)·알마티(9월 10~16일)를 순회하며 소련에 한국영화 바람을 일으켰다.

최고 배우 정윤희, 처음엔 몰라봐 결례

알마티에 도착했을 때 타슈켄트와 마찬가지로 대표단의 문화부 장관 예방을 신청했다. 그런데 단장인 나만 오라는 전갈이 왔다. 혼자 집무실에 들어서자 장관이 ‘형님’ 하면서 끌어안았다. 한 해 전 만났던 사우다 바예프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해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는 한 해 전 모스크바영화제 때 나를 찾아와 카자흐스탄과의 영화와 문화 교류를 제의했고, 알마티 방문 때는 밤새 보드카를 마시며 나를 한국말로 “형님”으로 불렀다. 2015년 9월 유라시아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알마티를 다시 찾았을 때 수소문하니 외교부 장관과 주미대사를 지내고 은퇴해 새 수도인 누르술탄에서 살고 있었다. 가진 못하고 통화만 하고 귀국했다.

마침 2020년 10월과 지난 2월 카자흐스탄 국립예술대(KazNUA)에서 극예술 명예박사학위를 각각 받은 박정자와 윤석화가 올해 11월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함께 공연할 예정이다. 행사가 성사되면 함께 가서 바예프와 재회할 생각이다.

대표단은 8월 22일 알마티, 8월 23일 타슈켄트에서 각각 리셉션과 개막행사를 열고 8월 24일 모스크바를 거쳐 귀국했다. 나는 일행과 헤어져 인도의 국제회의와 ‘수탉’(신승수)이 경쟁에 올라간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뒤 미국 플로리다의 영화촬영 시설을 돌아보고 9월 9일 귀국했다.

루마니아에선 89년 12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90년 3월 한국과 수교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루마니아 영화공사와 접촉해 한국영화주간을 열기로 했다. ‘씨받이’를 개막작으로 정하고 임권택 감독과 서울신문 김이경 기자와 함께 11월 9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모스크바·취리히를 경유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11월 12일 현지 시네마테크에서 개막식에 이어 열린 리셉션엔 이현홍 초대 주루마니아 대사와 루마니아 외교부 차관, 아시아담당국장, 루마니아필름의 마리아 알렉산드루 사장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임 감독은 인터뷰와 사인공세에 시달렸다. 이 대사는 수교 뒤 처음 열린 문화행사라며 관저에 대표단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고, 관광도시 브라쇼브의 한국주간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나는 이처럼 한국영화를 알리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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