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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카라쿠배’에 인재 빼앗길라, 대기업도 파격 ‘당근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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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14면

대기업 임금 대폭 인상 왜?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들 회사 입사를 위한 학원까지 생겼다. 서울의 한 취업완성 스쿨 수강생들이 HTML/CSS 수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들 회사 입사를 위한 학원까지 생겼다. 서울의 한 취업완성 스쿨 수강생들이 HTML/CSS 수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8일 LG전자는 올해 임직원 임금 기본 인상률을 8.2%로 확정했다. 지난해 9%를 올려 10년 만에 최대 인상폭을 기록했는데 비슷한 수준으로 한 차례 더 올린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한술 더 떠 지난해와 올해 각각 10%의 임금 인상을 결정했다. LG그룹만의 얘기가 아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최근 이처럼 임금 인상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임금 인상률을 7.5%로, SK하이닉스는 8.07%로 각각 정한 바 있다. 통상 매년 5월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 들어가는 SK하이닉스는 이미 올 1월 기술사무직 임금의 2% 인상분을 선지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노조 측이 올해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15.7%)을 제시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측은 “임단협을 성실하게 진행 중이라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취준생 “삼성전자보다 네카라쿠배”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임금 기본 인상률은 2017년 2.9%, 2018년 3.5%, 2019년 3.5%, 2020년 2.5%에 불과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같은 기간 이 같은 일반적인 수준을 크게 넘는 임금 인상에 나서지 않았다. 이랬던 기업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 들어서도 대폭 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는 이유가 뭘까. 재계 안팎에선 정보기술(IT) 분야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이들 기업이 불가피하게 임금 인상이란 ‘당근’을 꺼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IT 분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삼성전자보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라는 말이 나올 만큼 5개 기업이 인기인데, 이는 이들 기업이 사세 확장 과정에서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 신입·경력을 가리지 않고 파격적인 임금과 복리후생 제공을 약속하고 있어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기성 대기업 입장에선 이 같은 네카라쿠배의 공세에 인재를 안 뺏기려면 파격적인 인금 인상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달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연봉 재원의 10%, 15%를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언택트(untact·비대면) 열풍을 등에 업고 급성장한 배달의민족과 당근마켓, 토스 등도 핵심 인력인 개발자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 배달의민족은 대졸 개발자에게 평균 6000만원, 당근마켓은 6500만원의 초봉을 각각 제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취준생들은 네카라쿠배에 당토(당근마켓·토스)까지 더해 ‘네카라쿠배당토’라 부르면서 취업하고 싶은 1순위 기업으로 이들 7곳을 꼽고 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판도가 제조에서 IT 중심으로 바뀌면서 해당 분야 인력 수요가 급증한 반면 공급은 부족해 인력난이 심화됐다”며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적극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이런 ‘탤런트 워’(Talent War·인재 영입 경쟁)는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올 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AR) 기술팀 인력 100명 중 40%가 메타(옛 페이스북)로 이직했는데, 이는 메타가 이들에게 ‘연봉 2배 인상’을 제안해서다. 애플에서도 지난해 메타로 옮긴 엔지니어가 최소 100명에 달했다. 이에 애플은 핵심 엔지니어에게 최대 18만 달러(약 2억2000만원) 상당의 자사주를 지급하겠다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현지 IT 업계에 종사하는 A씨는 “최근 한두 달 사이에 팀 인원의 20%가 (이직으로) 빠져 나갔다”며 “IT 인력 수요가 급증한 데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업계 전반의 연봉 인상폭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직원들이 공유하는 기업문화가 과거에 비해 급격히 바뀌고 있는 것도 가파른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당장 받을 만큼 받아야 한다는 주의가 강해졌고, 경영 성과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IT 업계의 5년차 직원 B씨는 “내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 회사라 지금 당장 많이 받는 게 중요하다”며 “장기 근속자들과 달리 나 같은 저연차 직원들은 이직률이 높아 회사 입장에선 우리 의견을 비중 있게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온라인 채널이 급성장한 것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가총액 1000대 기업 재직자의 90% 이상, 총 650만 명이 가입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대표적 사례다.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앱)에선 익명성을 전제로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게시판에 부담 없이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다른 직원들과도 의견을 나눌 수 있어 “비(非)개발자 직군 초봉은 얼마인가요” “어디는 연봉이 얼마라는데 이직하는 게 나을까요” 등의 글과 댓글이 쏟아진다. 기업 입장에서도 신경 써서 챙겨볼 수밖에 없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의 경우 매일 이 앱을 체크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일각선 “철저한 성과주의” 우려도

이외에 기업들의 최근 실적 호조도 임금 인상 여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역대 최고치인 51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도 1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지난해 임금을 7.9% 인상한 HMM도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이어지면서 해상 운임이 증가, 지난해에 전년 대비 652% 급증한 7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서도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의 실적이 양호한 만큼, 당분간 지금과 같은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통한 인재 영입·유지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러다보니 중소기업 근로자들 사이에선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중소기업 재직자의 경우 대기업으로 이직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19년 국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경우는 전체의 10.2%로 10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임금 인상률이 높아진 대기업 내에서도 일부 우려 목소리가 없지 않다. 4대 그룹의 한 계열사 직원 C씨는 “결국 구글 등 미국 기업들처럼 (임금은) 많이 주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칼같이 내치는, 철저한 성과주의로 가겠다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재용 교수는 “과거엔 인건비를 단순 비용으로 봤지만 지금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시되고 있는 만큼 (임금 인상의) 경제·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한 고민이 재계 전반에 필요한 시점”이라며 “직원들이 말하는 공정한 분배가 일 잘하는 일부 동료에게 묻어가면서 임금은 그들 수준으로 받으려는 ‘선택적 공정’을 의미하는 건 아닌지도 짚어볼 만하다”고 지적했다.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업종별 임금 격차도 커져 문제”

대기업의 임금 인상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소기업 인력 이탈 등으로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82만2000원으로, 대기업(924만80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15% 올랐지만 대기업의 임금 상승률(38.2%)에 훨씬 못 미친 결과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들이 임금을 크게 인상하는데 많은 중소기업은 생산성이나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못해 임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데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들의 업종 간 임금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외에 중소기업 내 업종별 양극화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중소 규모더라도 급성장 중인 업종에 속한 기업의 경우 직원 수 대비 부가가치가 높아 생산성이 뒷받침되면서 근로자에 대한 보상 여력이 있지만, 사양산업에 속했다면 이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같은 임금 양극화가 한국경제를 이끄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근로 의욕이 떨어져 생산성이 저하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경우 생산성과 수익성을 충분히 고려해 무리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의하고, 중소기업은 인력 이탈 최소화와 생산성 유지가 가능하도록 임금 인상률을 지금보다 높이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민선 위원은 “중소기업 사업주가 임금을 크게 인상할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면서 다른 중소기업들까지 독려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금 양극화를 부추기는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 문제가 해소되도록 숙련된 인력 양성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신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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