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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까칠한 얼룩말과 함께 살면, 살이 더 찌는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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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서광원 칼럼

서광원 칼럼

얼룩말과 말은 사촌 간이다. 생명체의 ‘족보’를 따지는 ‘종속과목강문계’ 분류로 보면 ‘말속’이니 상당히 가깝다. 하지만 인류와의 관계에서는 완전히 반대다. 말은 오래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하며 역사를 속도감 있게 바꾼 주역이었지만, 얼룩말은 여전히 야생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인류는 왜 멋지고 힘도 좋은 얼룩말을 가축화 하지 않았을까? 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말과 사촌지간이긴 하지만 말보다 훨씬 ‘자유’를 좋아하는데다 거칠기 때문이다. 길들이려 하면 특기인 발차기를 십분 발휘하는 것도 모자라 튼튼한 이빨로 마구 문다. 힘도 보통이 아니니 저 살고 싶은 대로 놔둘 수밖에. 그런데 혹시 이런 거친 얼룩말과 ‘얌전한’ 소를 한 울타리에 있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성향 차이가 극명하니 지배자와 피지배자, 그러니까 군림하는 자와 순응하는 자의 관계가 될까?

당연할 듯싶은데 아쉽게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울타리에 있어도 소 닭 보듯 하면서 별 일 없이 잘 지낸다. 10여 년 전, 케냐와 미국 과학자들이 야생동물과 가축의 ‘공동생활’을 연구한 적이 있다. 세계 최대의 초원 중 하나이자 지금도 수백만 마리의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동부 세렝게티 초원에 이전에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50여 년 전까지 만해도 이 초원은 수백 만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초원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물론 목축이 급격하게 늘었다. 야생동물과 한정된 먹이를 두고 싸우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땐 유목민들이 야생동물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연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 중 하나가 소와 얼룩말의 공동생활이었는데 둘을 같이 있게 하면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먹이 자체가 부족하니 양쪽이 같이 있을수록 갈등이 커졌다. 하지만 풀이 잘 자라는 우기엔 달랐다. 같이 있을수록 양쪽 모두 살이 올랐다. 먹이가 풍부한 시기이니 당연한 게 아닌가 싶지만, 흥미로운 건 초원에 소들만 있을 때보다 얼룩말과 같이 있을 때 살이 더 잘, 그리고 빨리 올랐다는 것이다. 경쟁 심리가 생겨 더 많이 먹었던 걸까? 아니었다. 우리 눈에는 이들이 아무 풀이나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같은 풀’이지만 ‘다른 풀’을 먹는다. 우리가 같은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과 짬뽕을 먹는 것처럼, 둘은 ‘주 메뉴’가 약간 다르다. 말과 얼룩말들이 주로 먹는 건 다 자란 풀, 다시 말해 키가 큰 풀이지만 소들은 이런 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양분도 적을 뿐만 아니라 거칠어 소화시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못 먹는 풀의 윗부분이나 다 자란 풀을 소화력 좋은 얼룩말들이 먹어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생각지도 않았던 ‘식탁’이 나타난다. 큰 풀에 가려져 있던 작은 풀이나 싹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광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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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풀들의 성장이 빠른 우기에는 같이 있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건기에 다투는 사이라고 우기에까지 적대적일 필요가 없었다. 건기엔 경쟁을 해야 하지만 우기엔 공생이 서로에게 좋은 까닭이다. 같이 있으면 포식자의 공격도 덜 받을 수 있고 말이다. 경쟁과 공생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는데 그것만 보고 판단했던 것이다. 심도 깊은 관찰을 통해 제대로 된 관계를 알게 되자 마찰은 줄었고 자연보호 효과는 높아졌다. 몽골의 유목민들이 염소와 양을 같이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얼핏 같은 풀을 먹으니 경쟁 관계일 듯 싶지만 이들 역시 성향이 다르기에 같이 살 수 있다. 염소는 주로 돌아다니면서 먹지만 양은 반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의외로 마찰이 적은 까닭이다. 염소들이 너무 멀리 가는 것도 아니어서 양들은 염소들이 대충 먹고 간 곳을 서서히 따라다니기만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들 역시 서로 다르기에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요철이 그렇듯 서로 다름이 서로에게 좋은 궁합의 원리다.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듯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궁합은 부부가 될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한 번의 일로 서로 안 맞는다고 마음속으로 칼을 겨누는 건 나에게도 손해일 수 있다. 소와 얼룩말처럼 ‘건기’에 만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생길 때가 있다. 절대로 같이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일해야 하는 경우다. ‘아, 저런 사람하고 어떻게 일하지?’ 스트레스가 가슴 가득 쌓여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같이 일해 보니 손발은 물론 죽이 척척 맞아 내심 놀라고, 더 나아가 둘도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이 역시 ‘건기’에 만난 적이 있거나 소문 만 듣고 지레짐작한 탓이다. 역사를 보나 주위를 둘러보나 진짜 잘 맞는 궁합은 내가 가지지 않는 걸 가진 사람이다. 되레 경계해야 할 사람은 나와 똑같은 걸 가진 사람이다. 당장은 즐겁지만 성과는 별로인데다 결국은 가장 치열한 경쟁자가 되는 까닭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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