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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고릴라 멸종 위기, 韓도 2% 책임…188개국 따져보니

중앙일보

입력

아프리카 산림 파괴의 주범은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재배다. 지난해 3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스브르의 라피데스 그라 보호림 안에 있는 코코아 농장 마을의 집들이 산림 보호 당국의 급습으로 파괴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리카 산림 파괴의 주범은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재배다. 지난해 3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스브르의 라피데스 그라 보호림 안에 있는 코코아 농장 마을의 집들이 산림 보호 당국의 급습으로 파괴됐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와 유럽과 북미 여러 나라가 국제 무역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의 생태계를 훼손하고 생물 종의 멸종을 부추기고 있다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아침에 마시는 모닝커피 한 잔을 내리고, 초콜릿 한 조각을 먹는 행위가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대학과 영국 뉴캐슬대학,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브라질 국제 지속가능성 연구소 등에 소속된 국제 연구팀은 최근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 188개국을 대상으로 5000여 종의 생물과 관련된 '멸종 위험 발자국(extinction‑risk footprints)'을 수치화해 공개했다.

188개국의 멸종 위험 발자국 산정 

커피 원두. 우리가 수입하는 커피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숲이 훼손되고, 그 속에 살던 야생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사진 pexels]

커피 원두. 우리가 수입하는 커피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숲이 훼손되고, 그 속에 살던 야생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사진 pexels]

멸종 위험 발자국은 자원 소비량을 바탕으로 산정하는 생태 발자국(eco-footprints)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경제 활동이 멸종 위기 상황에 부닥친 생물 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수치화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산출하기 위해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 자료(다중 지역 입출력(MRIO) 데이터베이스)와 IUCN의 멸종 위기종 적색 목록(Red List)을 활용했다. 멸종 위험을 글로벌 소비 패턴과 연결한 것이다.

특히, 적색 목록에 등재된 멸종 위기종 12만2000종 가운데 양서류·포유류·조류 5295종에 118가지의 '위협 등급'에 따라 점수를 부여했고, 이를 유엔 통계국에서 분류한 6357개의 경제 활동 부문과 결합했다. 이를 세계 188개 나라로 나눠 따져봤다.
이처럼 생물 종-경제 부문-국가 조합에 따라 7800만 개 이상의 데이터 값을 갖는 매트릭스가 만들어졌고, 각각의 데이터값에 멸종 위험 발자국을 산출한 결과를 입력했다.

연구팀은 우선 국가별로 ▶국내 발자국(자국 내에서 생산한 상품·서비스의 소비가 자국의 멸종 위험에 미치는 영향) ▶수출 발자국(다른 국가로 상품을 수출하는 과정이 자국의 멸종 위험에 미치는 영향) ▶수입 발자국(수입 상품의 소비로 인해 다른 나라의 멸종 위험에 미치는 영향) 등 세 가지 멸종 위험 발자국을 계산했다.

한국, 멸종 발자국 순(純)수입국

국가별 멸종 위기 발자국. 초록색은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멸종 위기를 초래하는 나라를, 붉은색은 수입 과정에서 멸종 위기를 초래하는 나라를 표시한 것이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나라는 자국 내 소비 활동이 멸종 위기 발자국을 주도하는 곳이다. 색깔이 짙을수록 해당 발자국의 수치가 크다는 뜻이다. 한국은 발자국 순 수입국으로 분류됐다. [자료: Scientific Reports, 2022]

국가별 멸종 위기 발자국. 초록색은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멸종 위기를 초래하는 나라를, 붉은색은 수입 과정에서 멸종 위기를 초래하는 나라를 표시한 것이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나라는 자국 내 소비 활동이 멸종 위기 발자국을 주도하는 곳이다. 색깔이 짙을수록 해당 발자국의 수치가 크다는 뜻이다. 한국은 발자국 순 수입국으로 분류됐다. [자료: Scientific Reports, 2022]

연구팀의 계산 결과, 한국·일본·미국·독일·프랑스 등 76개국은 멸종 위험 발자국의 순(純) 수입국이었다. 세 가지 발자국 가운데 수입 발자국이 가장 컸는데, 상품과 서비스를 수입하면서 상대국에 멸종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전 세계 소비 발자국 합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66%였고, 소비 발자국 중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나 됐다. 각국의 소비 발자국은 국내 발자국과 수입 발자국을 더한 개념이다.
미국은 세계 소비 발자국 비중이 7.73%, 소비 발자국 중 수입 비중은 73%였다. 일본의 세계 발자국 비중은 2.87%, 수입 비중은 79%였다.
1인당 소비 발자국은 미국이 8000만(단위 없는 수치)이었고, 한국은 4300만, 일본은 7300만이었다.

또,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 국가와 몽골·파푸아뉴기니 등 16개국은 멸종 위험 발자국의 순 수출국이었는데, 세 가지 발자국 가운데 수출 발자국이 가장 컸다. 수출하는 과정에 이들 나라는 자국의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다가스카르의 경우 자국 내 경제활동은 멸종 위험 발자국의 34%만 유발하고, 나머지는 66%는 수출 발자국이 차지했다. 미국(14%), 프랑스(11%), 독일(6%) 등이 마다가스카르 수출 발자국을 주도했다.

멸종 발자국의 29.5%는 국제무역 탓

브라질 파라 북동쪽 바익소 토칸틴 지역의 무루티푸쿠 강을 따라 통나무를 운반하는 뗏목이 이동하고 있다. 이곳 브라질이나 중국은 주로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충당하느라 생태계 훼손이 일어나는 것으로 평가됐다. AFP=연합뉴스

브라질 파라 북동쪽 바익소 토칸틴 지역의 무루티푸쿠 강을 따라 통나무를 운반하는 뗏목이 이동하고 있다. 이곳 브라질이나 중국은 주로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충당하느라 생태계 훼손이 일어나는 것으로 평가됐다. AFP=연합뉴스

중국과 브라질 등 96개국의 경우는 국내 발자국이 가장 컸는데, 이는 자국 내에서 생산한 상품의 소비가 자국 내 멸종 위험 발자국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자원을 수입·수출하면서 훼손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들 나라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해당 국가 내 소비 활동 탓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글로벌 소비 발자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3%였고, 소비 발자국 가운데 수입 발자국 비중이 50%였다. 중국의 1인당 발자국은 한국보다 작은 1400만이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국제 무역이 전 세계 멸종 위험 발자국의 29.5%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모든 나라의 수출 발자국을 합산한 결과다.
연구팀은 26개 부문별로도 멸종 위험 발자국을 산출했다. 국내 소비와 무역을 통틀어 식품·음료 부문의 제품·서비스 소비가 전 세계 멸종 위험 발자국의 2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농업이 19%, 건설 부문이 16%로 그 뒤를 이었다.

미·중, 수입 멸종 위기 발자국 작지 않아

경제활동 부문별 멸종 위기 발자국 비중. 식품 음류가 소비 발자국의 20%를 차지하고, 농업이 19%를 차지한다. 가운데 작은 그래프는 양서류와 포유류, 조류에 대한 멸종 위기 발자국을 다시 부문별로 구분한 것이다. [자료: Scientific Reports, 2022]

경제활동 부문별 멸종 위기 발자국 비중. 식품 음류가 소비 발자국의 20%를 차지하고, 농업이 19%를 차지한다. 가운데 작은 그래프는 양서류와 포유류, 조류에 대한 멸종 위기 발자국을 다시 부문별로 구분한 것이다. [자료: Scientific Reports, 2022]

서아프리카 고릴라와 온두라스 멸종 위기 개구리에 대한 멸종 위기 발자국. 한국은 고릴라의 멸종 위기 발자국에서 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온두라스 개구리에 대해서는 1% 정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자료: Scientific Reports, 2022]

서아프리카 고릴라와 온두라스 멸종 위기 개구리에 대한 멸종 위기 발자국. 한국은 고릴라의 멸종 위기 발자국에서 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온두라스 개구리에 대해서는 1% 정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자료: Scientific Reports, 2022]

종 단위로도 멸종 위험 발자국을 살펴볼 수 있는데, 마다가스카르 자이언트 점프 쥐(Hypogeomys antimena)의 경우 소비와 관련한 멸종 위험 발자국의 77%는 수출 발자국이었다. 다시 이 종의 멸종 발자국 가운데 11%는 유럽에 식음료 제품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고릴라(Gorilla gorilla)의 경우도 멸종 위험 발자국의 44%는 수출 발자국이다. 이 경우는 중국의 상품 소비가 발자국의 14%를 차지한다. 한국도 이 고릴라의 멸종 위기 발자국에 2% 정도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엄마 고릴라와 아기 고릴라. AFP=연합뉴스

엄마 고릴라와 아기 고릴라. AFP=연합뉴스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노천광에서 인부들이 콜탄을 채취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재료인 콜탄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고릴라의 서식지가 위협을 받고 있고, 포획되기도 한다. [유튜브 캡처]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노천광에서 인부들이 콜탄을 채취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재료인 콜탄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고릴라의 서식지가 위협을 받고 있고, 포획되기도 한다. [유튜브 캡처]

멸종 위기 해결하려면 음식쓰레기 줄여야

미국 코네티컷의 한 초등학교에서 점심 시간이 끝난 뒤 학생들이 퇴비화를 위해 남은 음식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 멸종 위기를 해결하려면 당장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AP=연합뉴스

미국 코네티컷의 한 초등학교에서 점심 시간이 끝난 뒤 학생들이 퇴비화를 위해 남은 음식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 멸종 위기를 해결하려면 당장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AP=연합뉴스

연구팀은 "생물 다양성 손실이나 멸종 증가는 직접 개입 없이도,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서 "마다가스카르 같은 나라의 생물 다양성 손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멸종 위험 발자국의 순 수입국들이 수출국의 지속 가능한 생산을 보전하기 위해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 "멸종 위험 발자국에서 식품·음료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최대 33%에 이르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나 소매 수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유엔의 지속 가능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가운데 목표 12.3을 성공적으로 달성한다면, 전 세계 멸종 위험 발자국을 3%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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