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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통금에 "유령도시"...그랬던 호주, 실내서도 마스크 벗었다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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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게 바로 일상이고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준) 아니겠어요?"

3일 찾은 호주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 하우스 주변엔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의 일상)'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을 즐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웨딩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인근 야외 식당에선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코로나 이전과 같이 마스크를 벗고 있었고, 모임 인원이나 거리두기 제한 없이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관객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뮤지컬 공연장에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려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인기 뮤지컬인 만큼 좌석은 매진, 관객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공연을 즐겼다.

"코로나는 약한 감기…되찾은 일상 소중해"

1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그랑프리 F1 결승전을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1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그랑프리 F1 결승전을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 락다운이 이뤄졌던 멜버른에서는 2년 만에 그랑프리(자동차 경주대회), 음식·와인 축제 등이 열렸다. 전 세계에서 인파가 몰렸다. 음식·와인 축제에서는 스무 명씩 몰려다니며 식당 두세곳을 순서대로 찾아 음식을 맛보는 호핑 투어(hopping tour)가 한창이었다. 식당에서 만난 가이드 세라는 “락다운 기간 멜버른은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면서 “드디어 사람 사는 도시 같은 활기를 되찾아서 신이 난다”고 말했다. 혹시 마스크를 벗었을 때 감염 걱정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카페에서 일하는 샘은 "코로나는 이제 약한(mild) 감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먼 길 돌아 일상을 찾아 기쁘다"고 답했다.

"힘들었지만 필요했다"…강력한 도시 봉쇄 이후 되찾은 일상

정부는 15일 사적모임·영업시간 제한 등 대부분의 방역조치를 풀고 포스트 오미크론(오미크론 이후) 대응 계획을 공개한다. 호주의 오늘은 우리나라의 몇 주 뒤 '미리보기'인 셈이다. 한국여성기자협회가 마련한 기획 취재 차 들른 호주에서 우리보다 앞서 방역 빗장을 연 코로나 이후 모습을 살펴봤다.

호주는 한국처럼 오랜 기간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 초기 2020년 3월부터 연방 정부는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다. 호주는 여섯 개 주로 나뉘어 있는데, 보건 정책은 전통적으로 연방 정부의 개입 없이 주 정부 고유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에서 일관성 있는 방역 정책을 위해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총리, 보건 장관 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회의를 열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의 주 정부는 강력한 락다운 정책을 시행했다.

지난해 10월 호주 시드니의 서큘러 부두 인근 식당의 텅 빈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호주 시드니의 서큘러 부두 인근 식당의 텅 빈 모습. 연합뉴스.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 주는 약 9개월(263일) 동안 6차례의 락다운을 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시행된 봉쇄령이다. 한때 멜버른 시민들은 거주지 5km(3마일) 반경을 벗어날 수 없었고,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야간 통행을 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소방, 경찰, 병원 등 필수 시설을 제외하고, 도시 전체가 멈췄다.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스 주 역시 159일 동안 락다운했다. 이 기간 식당과 카페에서 포장만 가능했고 외출은 하루에 한 차례만 허용됐다. 강도 높은 규제 탓에 반대 시위·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자유를 달라' '고립을 원하지 않는다' 등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지난해 7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코로나19로 인한 규제 반대 시위. AFP/연합뉴스.

지난해 7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코로나19로 인한 규제 반대 시위. AFP/연합뉴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시민들은 당시 락다운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시민들은 "힘들었고 악명 높은(notorious) 시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은 이러한 락다운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드니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캐서린은 "불편하고도 힘든 시기였지만 지역 사회를 안전하게, 특히 고령층이나 기저 질환자 같은 취약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멜버른에 사는 수잔 역시 "5km 밖으로 못 나가니, 인근 공원에서 각자의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이웃 주민들을 마주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며 "그럼에도 코로나가 가장 심했을 때 펼친 락다운 정책 덕분에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낮은 치명률·높은 접종률…주요 방역 조치 해제

호주에서도 아직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고 있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5만 명가량 나온다. 정점(1월 13일, 10만9214명) 때와 비교하면 절반 아래로 떨어졌지만 호주 인구가 한국의 절반 수준임을 고려하면 적지 않다. 하지만 위중증·사망자 관리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호주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6648명인데, 우리나라(2만34명)뿐만 아니라 미국(98만6387명), 영국(17만552명), 독일(13만2378명) 등 세계 주요국 대비 매우 낮은 수치다. 최근 호주의 사망자는 하루 평균 20명대(최근 1주 평균)로 인구 100만 명당 1~2명꼴이다. 우리나라 하루 사망자는 인구 100만 명당 5~6명 수준이다.

코로나19 사망자 발생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19 사망자 발생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호주는 백신 접종률 최상위권이다. 한국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16세 이상의 95%가 2차 접종을 완료했고, 67%가량이 부스터 샷을 맞았다. 지난 4일부터는 65세 이상 시민, 50세 이상 호주 원주민 등을 대상으로 4차 접종을 시작했다. 주요 방역 규제는 기초 접종률이 80%를 넘어가면서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주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풀었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를 없앴다. 지난달 21일에는 2년간 봉쇄했던 국경을 개방했다. 오는 17일부터는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없는 사람도 호주에 입국할 수 있다.

호주식 '위드 코로나'…개인의 책임과 상식에 맡겨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해 말 "다시는 마스크 착용 의무 명령이나 락다운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강압적인 정부 방역 정책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책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엔데믹 선언 대신 '코로나와 함께 살기(living with COVI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모리슨 총리는 "일반적인 상식과 개인의 책임감 아래에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일 호주 시드니 로얄 프린스 알프레드 병원 인근 건물 입구. 마스크 착용 및 백신 패스 확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4일 호주 시드니 로얄 프린스 알프레드 병원 인근 건물 입구. 마스크 착용 및 백신 패스 확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7일 호주 멜버른의 한 호텔 로비에 엘레베이터 탑승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7일 호주 멜버른의 한 호텔 로비에 엘레베이터 탑승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마스크는 벗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된건 아니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중교통 및 공항, 일반 병원 및 요양원 등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또 사람들이 밀집한 실내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다. 시드니 도심 호텔에서 카운터 업무를 보는 한 직원은 "마스크 착용은 이제 개인 선택의 영역"이라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마스크를 쓴다"라고 말했다. 일부 기관이나 시설에서는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자체 규정을 두고 있다. 그밖에 병원, 학교 등 주요 기관, 관공서에서는 엘리베이터 탑승 인원수를 제한하고, 회의실 사용 인원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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