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교에서 이달 하순 중간고사가 치러진다. 그런데 교육부가 코로나19로 확진돼 자가격리 기간에 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험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어제 “확진자 격리 의무 기준이 폐지되면 학생 확진자에게 이르면 1학기 기말고사부터는 내신 시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시험 불가 방침의 문제를 지적하고 학부모가 청와대 청원을 올리는 등 반발하는데도 불가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교육부의 처사는 무책임하다. 우선 현행 대입에서 고교 내신 성적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고교생 자녀를 둔 가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비로 쓴다. 아이들이 과목별로 학원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데, 대부분 내신 준비용이다. 내신은 학교 수업만 잘 따라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방역당국 괜찮다는데도 ‘불가’
내신 중요한 수시 포기하란 건가
검사 회피 우려, 즉각 허용해야
입시에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 정부가 추진한 대입제도 변화에 따라 더 커졌다. 이른바 ‘조국 사태’ 여파로 교과 외 활동을 보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줄고, 교과 성적 위주로 뽑는 학생부교과전형이 늘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비롯해 수험생이 선호하는 의약계열 등에서 실시하는 지역균형전형 등은 학교장 추천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선 내신 성적순으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중간·기말고사가 학생의 운명을 가르는 시험이 돼가고 있다. 상대평가 내신에서 우열을 가려야 하고 수능 공부까지 시킨다는 취지로 학교는 내신을 어렵게 내는 곳이 많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은 문제를 풀려고 아이들이 사교육 몸살을 앓는데, 교육부가 확진자는 중간고사를 못 본다고 하니 학생과 학부모가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내신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를 시험 불가 이유로 들었다. 코로나로 중간고사를 못 볼 경우 기말고사에서 해당 과목의 평균과 학생별 득점을 고려해 인정점수를 준다. 지난 2년간 이미 인정점을 받은 학생들이 있는데, 이번에 풀어주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거 인정점을 받을 때에 비해 오미크론이 유행한 요즘 학생 확진자가 비교할 수 없이 많다. 지금 학교에선 점심을 함께 먹은 친구가 오후에 확진 통보를 받고 귀가하는 일이 흔할 정도로 확진자가 쏟아진다. 중간고사에서 못 보면 기말에서 잘 보면 될 것 같지만, 내신 시험마다 우열이 엇갈리고 시험 난이도에 따른 평균 점수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실력껏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하다.
교육 당국은 무능도 드러냈다. 협의 과정에서 방역 당국은 학교가 시험을 보게 한다면 협조하겠다고 했다. 확진자가 별도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 반응도 방역 당국과 다르지 않다. 지방 한 일반고 교장은 “전체 학생 중 확진자 비율이 35%나 되고 매일 20~30명씩 새 확진자가 나온다”며 “수시를 노리거나 내신이 필요한 학생들은 시험을 보고 싶어하는데, 교실 하나만 지정하면 학교로선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교육청 지침 때문에 난감하다는 것이다. 이미 대선이나 수능을 그렇게 치렀고, 확진자가 병원이나 약국도 가는 마당에 교육부가 형평성 타령이나 할 때인가.
탁상행정이 불러온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오히려 감염 확산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학교 관계자들은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코로나 확진을 염려하는 학생들이 일부러 검사를 피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미 대학 시험 기간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방역 지침도 달라졌다. 휴대폰에 앱을 깔고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거나 자가격리 위반을 파악하던 시스템이 사라졌다. 지금 학생들은 증상 여부를 등교 전 스스로 앱에 입력하는데, 가정에서 자가진단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또 학생이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양성이 나오더라도 학교에 통보되지 않는다. 중간고사를 치르기 위해 검사를 회피하거나 확진이 나오더라도 알리지 않고 교실에 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확진자를 별도 교실에 모아놓고 시험을 보게 하며 관리하는 것과 확진 여부를 모른 채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는 것 중 무엇이 전파 위험을 낮추는 길인가.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격리의무 폐지되면 시험 보는 게 당연하지 뭘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나.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하는 게 교육부가 할 일이다.” “기말에도 지금 상황이면 수시는 포기하라는 거네.” “당신 자식 일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서둘러 방침을 바꿔 학교가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