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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민 정신건강 국가책임제’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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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차기 정부 중요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정신건강 분야의 주요 현안이 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다뤄져서 국정 과제로 힘있게 추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대선 기간 주요 3개 정당에 ‘코로나 블루’ 집중 관리, 정신건강 공공의료 체계 강화,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제도 및 인식 개선 등 3대 정책 영역별 ‘국민 정신건강 정책 10대 과제’를 제안했고, 정치권도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국민 넷 중 한 명, 정신질환 겪어
지속적·포괄적 치료체제 갖춰야

우리나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경험할 정도로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치료율이 낮다 보니 우리나라는 15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다. 여기에다 코로나 블루 쓰나미까지 엄습해 정신건강이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코로나 블루에 대한 신속한 개입,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한층 더 악화하고 있는 중증정신질환 등에 대한 개입 강화, 급성기 치료 및 지속 치료 지원과 지역사회 관리 강화, 정신 응급센터와 공공 이송체계 확립, 자해와 타해 위험에도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에 대한 입원 체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정신건강 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주요 3개 정당 모두 정신건강 현안 관련 공약을 내놓으며 호응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신건강 정책의 난맥상에 대해 현장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왔지만, 정부의 실천 의지가 부족해 여전히 방치하다시피 한다. 그 결과, 각종 문제점이 만성화한 지 오래다.

2018년 12월 말 임세원 교수 피습 사망 사건, 2019년 4월 중증정신질환자 안인득에 의한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중증정신질환 국가 책임제’를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정신건강 관리체계의 고질적 문제점인 중증정신질환의 의학적 치료 기반과 지역사회 관리 인프라가 모두 취약한 현실을 타개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관련 정책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제19대 국회 회기 말 정신보건법을 졸속 개정해 중증정신질환자들의 치료 기회 박탈,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폐쇄 병상 없애기 등 치료 기반 붕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치료 병상 확대 과정에서 ‘빅 5’ 대형병원 중 한 곳도 폐쇄 병동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해 명실상부한 ‘정신건강 국가 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응급상황에 대한 대책은 기본이다.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단기간에 인도적인 방법으로 치료할  ‘급성기 집중 치료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환자가 자기 질병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일상생활 기능을 회복해 스스로 치료를 계속하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즉 ‘지속 치료 및 지역사회통합’을 위한 치료 인프라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

말하자면 응급 상황에 대한 대책은 물론, 응급 치료 이후 급성기 치료, 지속 치료, 지역사회관리로 이어지는 치료 연속성을 고려한 포괄적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권의 관심사는 응급상황 해결에만 머물러 있다. 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중증정신질환의 치료관리방안이 이번 인수위에서 마련해야 한다

중증정신질환자들은 두 갈래 길 앞에 놓여 있다. 발병 이후 신속한 급성기 치료에 이어 지속적인 치료와 재활이 이뤄지면 환자는 ‘정상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척박한 치료 환경 때문에 적기 치료를 놓치면 ‘악화·만성화의 길’에 빠져들게 된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소외된 중증정신질환자들에게 미래를 열어줄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다시 한번 인수위원회에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