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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서 머리 나오는 얘기도 나와…변비 생긴 독자 분들께 죄송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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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단편집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안톤 허 번역가(허정범·왼쪽)와 정보라 작가. 한국인이 번역한 작품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단편집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안톤 허 번역가(허정범·왼쪽)와 정보라 작가. 한국인이 번역한 작품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실 제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화장실에 가면 뭔가 나올까 봐 걱정된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보면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작품을 읽고 변비가 생기신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요.”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의 정보라(46) 작가는 14일 간담회에서 뜻밖의 사과를 했다. 화장실 변기에서 머리가 튀어나와 주인공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머리’를 비롯해 이 책에 실린 단편은 10편. 저마다 놀라운 상상력, 섬뜩하고 처연한 반전이 번득인다.

한국문학의 오랜 전통인 리얼리즘과는 다르되, 현실 곳곳 어딘가에 발을 디딘 인상이 뚜렷하다. 작가는 “일상 속 장면, 사물, 인물에서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며 “그대로 쓰면 모욕이나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현실의 논리와 반대로 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를 영어로 옮긴 번역가 안톤 허(41·허정범)는 “읽자마자 (영미권에서) 너무나도 잘 통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책의 번역을 자처하고 영국 출판을 주선했다. 그는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한국 장르문학의 문학성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한국문학에 이런 것도 있다는 걸, 한국문학이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같은 사람)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 중년 남성만 쓰는 게 아니라 여성문학, SF·장르문학 등도 풍요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라 작가의 문체에 대해 “아름다우면서도 공포스러운, 아이러니나 반어법처럼 상반된 정서의 결합”을 특징으로 꼽았다.

정보라 작가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나와 미국에서 슬라브 문학 등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0~30년대 소비에트 ‘빨갱이’ 소설을 전공했어요. (러시아) 혁명 바로 직후부터 스탈린의 폭압 전까지, 예술적 실험이 허용되고 자유로웠던 시기가 10년쯤 있었어요. 그런 자유로움과 엉뚱한 상상력, 창의적인 발상 같은 게 좋았어요.”

창작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서는 “대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운영하는 문학상이 있었는데 당선되면 100만원 준다고 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SF·공포 등 판타지 성향의 작품을 써온 그는 이날 간담회도 “평생 이런 관심이 처음이라 얼떨떨하다”고 했다. 『저주토끼』는 최근 미국 등에도 대형출판사와 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그는 “소수자와 고통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데 그런 것만 쓰면 독자들이 읽으시기 너무 괴로울 것”이라면서 “해양 수산물 시리즈를 쓰고 있다”고 했다. “제가 포항 남자를 만나 재작년에 포항으로 시집을 갔는데 제사상에 올라오는 저만한 문어가 충격이었어요. 문어는 썼고, 상어·멸치·김 이런 거를 쓸 거예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된 비영어권 소설을 대상으로 작가·번역가에게 함께 주는 상이다. 안톤 허는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노벨상을 받기 전, 번역가가 그를 영미권에 소개하기 위해 10년가량 노력한 일을 전하며 “다른 번역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기에 후보 중 누가 받아도 기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최종 후보는 6편이며 수상작은 5월 26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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