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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재용이 고발한다

20억 고문료보다 더 큰 문제 있다…공직·로펌 회전문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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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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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고발한다_신재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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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초고액 연봉자가 가장 많은 직장은 어디일까요? 아마 삼성전자를 떠올릴 독자가 많을 겁니다. 실제로 직장건보료 상한인 월 239만원(월 소득 7810만원, 연봉 9억 4000만원, 2017년 상반기 기준)을 내는 직장인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전자(151명)가 맞습니다. 그다음은 김앤장 법률사무소(119명)입니다. 4년 전인 2013년 삼성전자(62명)를 압도했던 김앤장(148명)이 1위를 내주긴 했지만 국내 최고 연봉 직장이라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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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는데, 그가 김앤장 고문으로 재직했을 때 받은 보수가 일반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워낙 고액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뒤인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김앤장 고문으로 1억 5000여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과 총리까지 마친 후 2017년 12월부터 후보 지명 직전인 이달 초까지 다시 김앤장 고문으로 4년 4개월 동안 고문료 19억7748만원을 받았습니다.

로펌의 전관 고문은 무슨 일 하나 

재계와 관계(혹은 규제 당국) 사이의 빈번한 이직은 사실 전 세계 어디서나 흔합니다. 가령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정부 인재의 파이프라인으로 통합니다. 지난 도널트 트럼프 정부의 첫 재무장관이었던 스티븐 므누신을 비롯해 골드만삭스는 재무장관만 4명을 배출했습니다. 다만 많은 경우 금융계(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 관료로 발탁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관계에서 재계로의 이직이 많습니다. 특히 검찰·국세청·금융위·공정위·방통위 등 기업을 직접 규제하는 정부기관 공무원들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직자윤리법이나 이해충돌방지법 같은 견제장치가 있지만 일부에선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골드만삭스 출신이 장악하다시피 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골드만삭스 출신이 장악하다시피 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이직만으로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좀 이상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소위 에이스 공무원들이 민간기업에 영입되는 경우도 전혀 없지 않지만, 민간기업이라면 이미 퇴직했을 나이의 고위직 공무원이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고문을 맡거나 대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사례가 유독 많아서입니다. 대기업은 사외이사의 3분의 1이 전직 관료나 법조계 출신입니다. 대기업이 왜 전직 관료를 사외이사로 선임할까요. 세간에는 능력과 역량, 인적 네트워크 등 전문성을 고려해서라기보다 규제당국의 검사(감사)를 대비한 방패막이, 즉 로비스트 역할로 선임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팽배합니다. 그래도 공시 제도 탓인지 턱없이 높은 보수가 지급됐다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투명한 사외이사, 불투명한 고문 

한 후보자는 김앤장 고문뿐만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에쓰오일 사외이사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상장사는 이사회 표결결과뿐 아니라 (평균) 보수 등도 사업보고서를 통해 투명하게 공시됩니다. 한 후보자의 총리 지명 직후 그의 에쓰오일 사외이사 보수가 8200만 원대라는 게 공개된 건 이런 이유입니다.

반면 로펌이나 회계법인 고문은 정확히 몇 명인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또 어떤 성과로 인해 보수를 얼마를 받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습니다. 해당 로펌 홈페이지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해 보니 김앤장은 98명, 율촌 38명, 태평양 32명, 광장 31명, 세종 29명, 화우 24명이었습니다. 김앤장 고문 수가 단연 많습니다. 특히 행정부 관료 출신 비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높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가운데) 등과 함꼐 국민경제자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가운데) 등과 함꼐 국민경제자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 [중앙포토]

다시 한번, 대형 로펌은 왜 전관에게 막대한 보수를 지급하면서 고문으로 영입하는 걸까요? 대기업 사외이사와 달리 로펌은 방패막이 역할이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대형 사건이 늘면서 대형 로펌일수록 전문성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고문 영입은 자연스럽습니다. 조세, 관세, 기업금융, 기업 인수 합병 등에 전문성을 가진 전관은 로펌이 수임한 자문용역에 전문가적 조언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 후보자는 이런 전문적 조언을 하기에는 현직에서 너무 오래 떠나있었습니다. 퇴직한 지 10년 이상 지난 전임 관료를 김앤장이 영입했다면 전문적인 조언보다는 본인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용역 수임에 도움을 주는 역할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클 것이라 예측할 수 있죠. 한 후보자를 비롯한 여러 전관 고문들이 용역 수임을 위해 직접 영업에 나서지 않더라도 누구를 어떻게 접촉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필요할 경우 직접 연결해줘도 큰 차이를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인적 네트워크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사실상 로비스트인 셈입니다.
아닌가요. 현재 로펌들은 고문 명단과 업무내역을 매년 각 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하게 되어 있지만 보수내역 등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전관 고문들이 무슨 업무로 얼마의 보상을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불투명성 탓에 정당한 전문적 조언에 따른 보수인지, 로비의 대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명단·업무내역 공개해야

게다가 한 후보자는 공직→로펌→공직→로펌→공직의 돌고 도는 회전문을 거쳐 다시 총리 후보에 올랐습니다. 한 후보자의 발탁은 정권 교체 때마다 잠시 로펌 고문으로 쉬다 때가 되면 고위 관료로 복귀하는 과정을 앞으로 더 용이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한 후보자의 로펌 고문 경력 자체가 총리로서의 직무수행에 나쁜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전관의 명성과 인적 네트워크를 대가로 받은 18억원이라면 이해관계 상충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을 만큼의 고액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기업 CEO들의 천문학적 보수를 규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수의 산정근거에 대한 상세하고 투명한 공시는 철저히 요구합니다. 우리도 최소한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선 지방변호사회는 로펌에서 받은 고문 명단과 구체적 업무내역을 일반에 투명하게 공시해야 합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상장사의 연봉 5억원 이상 고액연봉자(5명)를 공시하듯 로펌 고문의 보수 역시 공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해관계 상충 여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 로펌 변호사 초임이 1억 5000만원을 넘었습니다. 고액 연봉 파트너 변호사가 즐비한 김앤장에서 한 후보자가 정당한 수익을 올려줬다면 20억원(연봉 5억원)은 어쩌면 큰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투명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총리를 지내고 5단계 회전문을 거친 74세 노장이 다시 총리로 등판하지 않아도 될만큼 우리나라 인재풀이 두터워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