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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12억어치 빌리고 안돌려줬다…美 뒤집은 영부인 옷값 스캔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누가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대는가.’

[정글]

최근 청와대가 집요하게 요구받은 질문입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죠. 청와대가 사생활이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다른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이 질문을 수십 년 전부터 반복적으로 던져왔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에선 대통령 부인 패션을 향한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도가 지나칠 정도입니다. 취임식과 국빈 만찬, 국가 주요 행사마다 대통령 부인 옷차림은 낱낱이 분석 당합니다. 누가 디자인했는지, 메시지는 무엇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아주 상세히 보도됩니다. 지나치게 비싸거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여겨지는 옷은 혹독한 비난을 받습니다.

대통령 부인에 대한 미국·프랑스의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은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뜨겁다. 패션의 메시지 분석뿐 아니라 브랜드와 구입 방법에 대해서도 샅샅이 살핀다. '정글' 캡처

대통령 부인에 대한 미국·프랑스의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은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뜨겁다. 패션의 메시지 분석뿐 아니라 브랜드와 구입 방법에 대해서도 샅샅이 살핀다. '정글' 캡처

관심은 표면적인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 부인이 수많은 의상을 어떤 경로로 얻는지도 감시하죠. 의상 구매에 세금이 들어가진 않는지, 권력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건 아닌지 검증합니다. 그러다 거센 비난에 직면했던 대통령 부인도 있습니다.

미국·프랑스 대통령 부인은 옷값을 어떻게 지불할까요. 그들은 어느 선까지 ‘패션 검증’을 감당했을까요.

패션을 너무 진지하게 추구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뭘 입든 화제가 됐던 인물입니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주목을 받았죠.

카트리나와 더불어 미국 역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으로 꼽히는 하비가 2017년 8월 미국 텍사스주에 상륙했습니다. 나흘간 40조 리터가 넘는 폭우가 퍼부었습니다. 사망자 106명이 발생했고, 재산피해는 약 150조원에 달했습니다.

2017년 허리케인 하비 피해 지역 방문 때 멜라니아 트럼프는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어 큰 비판을 받았다. AP=연합뉴스

2017년 허리케인 하비 피해 지역 방문 때 멜라니아 트럼프는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어 큰 비판을 받았다. AP=연합뉴스

당시 멜라니아 트럼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재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입었던 옷이 미디어를 타자 SNS가 폭발했습니다. 12㎝ 굽의 ‘크리스티앙 루부탱’ 스틸레토 힐을 신었기 때문이죠. “패션쇼에 가는 거냐”, “수재민을 방문하는 사람의 옷차림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멜라니아 트럼프의 기이한 패션 센스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멕시코 국경 인근 난민 아동 체류지를 방문할 땐 ‘난 정말 관심 없어’라고 적힌 ‘자라’ 재킷을 입었고,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할 땐 백인 식민 지배의 상징인 피스 헬멧을 써서 논란을 일으켰죠.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된 건 옷값이었습니다. 독일 G20 정상회의에서 입은 드레스와 구두가 530만원, 의회 방문 때 입은 스커트가 1160만원, 이탈리아 G7 정상회의에서 입은 재킷이 6240만원이라고 하죠.

미국 퍼스트레이디 옷값은 누가 내나 

멜라니아 트럼프는 한 벌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옷을 어떻게 장만했을까요.

미국 대통령 부인은 특별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나라 청와대 제2부속실이 대통령 부인을 담당하듯 미국도 ‘퍼스트레이디’를 담당하는 보좌관과 비서관을 따로 두고 국가 예산을 집행합니다. 특히 외부 활동이 활발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보좌관·비서관 인건비로만 한해 10억원을 넘게 썼죠.

하지만 대통령 부인 옷값 문제로 넘어가면 상황이 다릅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부인 의상 구매용 예산은 따로 책정되지 않습니다. 세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부인에게 ‘의상 마련’은 늘 난제였죠.

미셸 오바마는 2009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신진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의상을 입었다. 미국에선 국가 주요 행사 때 디자이너로부터 옷을 기증받는 오랜 전통이 있다. 미셸 오바마는 다양한 디자이너의 옷을 입었고, 미국의 패션 산업을 부흥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옷값 논란을 피해갔다. AP=연합뉴스

미셸 오바마는 2009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신진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의상을 입었다. 미국에선 국가 주요 행사 때 디자이너로부터 옷을 기증받는 오랜 전통이 있다. 미셸 오바마는 다양한 디자이너의 옷을 입었고, 미국의 패션 산업을 부흥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옷값 논란을 피해갔다. AP=연합뉴스

멜라니아 트럼프는 모델 출신이니만큼 백악관 입성 전부터 옷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막대한 부를 소유한 부자였으니, 옷을 마련하는 게 큰 문제는 안 됐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대통령 부인이 이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 부인이 옷을 어떻게 입수하느냐. 크게 두 가지 경로입니다. 하나는 대여, 하나는 기증입니다. ‘대여’는 말 그대로 옷을 빌렸다가 다시 돌려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기증’인데,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국가 주요 행사를 위해 디자이너 옷을 기증 형태로 받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미셸 오바마가 취임식 때 입었던 드레스는 신진 디자이너 제이슨 우가 선물한 옷이었습니다. 대신 선물로 받은 옷은 대통령 부인 개인이 갖는 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소유가 됩니다. 역사적 보존을 위해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입고되죠.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대통령 부인의 옷을 모아놓은 전시관은 인기 코스 중 하나입니다.

낸시 레이건의 옷값 스캔들 

‘의상 대여’는 미국에서 스캔들로 번진 적도 있습니다. 1988년 10월 타임지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이 한 디자이너에게서 옷을 60~80벌을 빌려놓고 하나도 돌려주지 않았다고 폭로했습니다. 주로 당시 유명 브랜드였던 아돌포 사르디냐, 제임스 갈라노스의 비싼 옷을 몰래 대여했다고 하죠. 대여 명목으로 가져와서 돌려주지 않은 옷값이 100만 달러(약 12억원)에 이른다고 추정했죠.

1982년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 초, 낸시 레이건은 디자이너에게서 옷을 빌려 입는 관행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약속한 것과 달리 몰래 옷을 빌려 입은 데 다가 심지어 돌려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큰 비난을 받았죠.

낸시 레이건(가운데)이 1989년 1월 10일 뉴욕예술박물관에서 미국패션위원회가 주는 평생공로상을 받는 장면. 왼쪽이 디자이너 오스카 델라렌타, 오른쪽이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 낸시 레이건은 패션에 큰 기여를 한 퍼스트레이디로 알려져 있지만, 디자이너의 옷을 마구 빌리고 반납하지 않아 큰 논란을 낳았다. AP=연합뉴스

낸시 레이건(가운데)이 1989년 1월 10일 뉴욕예술박물관에서 미국패션위원회가 주는 평생공로상을 받는 장면. 왼쪽이 디자이너 오스카 델라렌타, 오른쪽이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 낸시 레이건은 패션에 큰 기여를 한 퍼스트레이디로 알려져 있지만, 디자이너의 옷을 마구 빌리고 반납하지 않아 큰 논란을 낳았다. AP=연합뉴스

낸시 레이건의 ‘옷장 스캔들’은 조세 포탈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빌린 드레스를 돌려주지 않았다면 소득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10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드레스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면 중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죠.

다행히 이 논란이 불거진 게 정권 말기였고, 법무부 차원에서 “범죄 혐의는 없다”고 발표하면서 낸시 레이건이 수사를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낸시 레이건은 이후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소유하려고 받은 건 없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드레스를 빌리지 않고, 여건이 되는 한에서 샀다면 어땠을까. 미디어는 나를 사치스럽다고 하는 대신 볼품없고 초라하다고 했을 것이다.”

어떻게 했든 비난을 들었을 거라는 말이죠. 여기서 대통령 부인의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낸시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성공적인 마약 퇴치 캠페인을 이끌었고 레이건 대통령을 알뜰하게 챙기는 이미지로 미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퍼스트레이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옷값 스캔들만은 커다란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할인해줄지 타진한 후 구매” 

이렇게 80년대 말 퍼스트레이디 옷값 논란이 불거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디자이너 드레스를 대여하는 관행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레이건 때처럼 돌려주지 않는 일은 없어졌죠.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대통령 부인이 옷을 입고 나오면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되니 상업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요즘 대통령 부인들은 막무가내로 빌려 입기보다, 아예 할인을 받아 구매하는 경우도 적잖다고 합니다. 미셸 오바마의 개인 스타일리스트 메레디스 쿱은 한 인터뷰에서 “브랜드로부터 할인 가능성을 타진하고 최적의 가격에 구매했다”고 했죠. 멜라니아 트럼프도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두고 옷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셸 오바마와 달리 할인받을 목적이 아니라, 트럼프 부인에게는 안 판다는 디자이너가 많아서 자기 대신 옷을 구매해줄 목적으로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했다고 하죠.

프랑스 영부인 옷값은 누가 내나 

프랑스 역시 대통령 부인 패션이 온갖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나라입니다. 세기의 스캔들을 낳은 카를라 부르니부터 브리지트 마크롱까지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입는 옷은 패션 화보로까지 만들어지죠.

프랑스 대통령 부인의 옷값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그의 부인 카를라 부르니가 2008년 3월 영국 왕실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회색 디올 카를재킷과 드레스를 입은 모습에 영국과 프랑스 언론이 찬사를 보냈죠. 그때 몇몇 영국 언론이 저 옷은 누가 사는 것이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역시 언론으로부터 '옷값 검증'을 받아야 했다. 당시 엘리제궁은 모든 옷을 사비로 사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사진은 카를라 브루니가 2009년 6월 22일 파리에서 남편과 함께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카타르 국왕 부처를 영접한뒤 엘리제 궁에 들어가는 장면. EPA=연합뉴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역시 언론으로부터 '옷값 검증'을 받아야 했다. 당시 엘리제궁은 모든 옷을 사비로 사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사진은 카를라 브루니가 2009년 6월 22일 파리에서 남편과 함께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카타르 국왕 부처를 영접한뒤 엘리제 궁에 들어가는 장면. EPA=연합뉴스

디올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엘리제 궁(프랑스 대통령 관저)에서 “카를라 부르니 본인이 직접 의상을 선택하고 사비로 사들인다”고 설명했죠. 카를라 부르니 역시 모델 출신 가수로 파리 부티크에서의 쇼핑을 즐긴다고 합니다.

프랑스 대통령 부인에게는 유명 럭셔리 브랜드에서 옷을 입어달라는 제안이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은 루이뷔통 측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죠. 대신 프랑스에선 대통령 부인의 개인 옷장과 대여 옷장을 엄격히 분리해 관리합니다. 미국처럼 옷을 사비로 구매하거나, ‘계약서’를 쓰고 옷을 대여하거나, 옷을 선물 받아야 합니다. 선물 받은 옷은 대통령 임기 종료 후 엘리제 궁에 반납해야 하죠.

미국·프랑스 영부인 옷값에 세금은 안 들어가

종합해보면 미국과 프랑스 모두 대통령 부인의 옷값에 책정된 예산은 없어 세금이 투입되지 않습니다. 국가 주요 행사처럼 미디어 노출이 많이 이뤄질 때는 종종 럭셔리 브랜드나 유명 디자이너에게서 선물이나 대여 형식의 협찬을 받죠. 자기가 산 옷이 아니라면 빌린 건 돌려주거나 선물 받은 건 정부에 귀속이 되는 방식으로 정리가 되고요. 그래서 대통령과 일하는 변호사들은 혹시 대통령 부인의 옷이나 액세서리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의전팀과 꼼꼼하게 협의한다고 하죠.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신년연설 장면에서 입은 옷을 모은 사진. 메르켈은 재임 시절 패션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수시로 들어왔다. 메르켈은 이런 비판에 대해 피로를 느낀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EPA=연합뉴스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신년연설 장면에서 입은 옷을 모은 사진. 메르켈은 재임 시절 패션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수시로 들어왔다. 메르켈은 이런 비판에 대해 피로를 느낀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EPA=연합뉴스

대통령 부인은 패션 자체가 메시지라고 할 정도로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항상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도 있는 게 사실이죠.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는 인터뷰 때 전과 똑같은 옷을 입고 갔다는 걸 알고는 얼른 비서관과 옷을 바꿔 입었다고 하죠. 독일 메르켈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정치인은 100일 내내 똑같은 남색 정장을 입어도 아무 말이 없는데, 왜 나는 2주일 동안 같은 옷을 4번만 입어도 뭐라고 하느냐”고 불평한 적도 있죠.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 부인의 옷에 국민 세금 쓰는 걸 용인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엔 찾기가 힘듭니다. 낸시 레이건 사례에서 보듯 부당한 방법으로 옷장을 채우려 하면 더 큰 논란을 부르고요. 특히 문제가 됐던 건 옷을 빌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무 말 없이 옷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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