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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비 전부 오른건 30년만에 처음"…전세계 '워세션'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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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7일 대만 타이페이의 한 국수가게에 손님이 들어서고 있다. 타이페이는 최근 식재료비 상승에 이어 길거리 음식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일 대만 타이페이의 한 국수가게에 손님이 들어서고 있다. 타이페이는 최근 식재료비 상승에 이어 길거리 음식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중국 베이징 시내에 훠궈 전문점을 연 마홍은 올해 들어 수익이 5분의 1로 줄었다. 소고기 값이 50% 이상 뛰는 등 식재료비가 치솟아서다. 홍은 "(재료값이 올랐어도) 음식 가격은 그대로다. 코로나19 탓에 베이징 식당들이 다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카라치에 있는 비르야니(볶음밥) 가게에서 3~4인분 요리를 할 수 있는 쌀 1㎏의 가격은 400파키스탄루피(약 2700원)로 최근 들어 두배나 뛰었다. 주방장 모하마드 일리아스는 "지난 15년 동안 이 주방에서 일해왔는데, 요즘 쌀값과 향신료값이 너무 올라 가난한 사람들은 밥을 못 사 먹을 정도"라고 했다. 일부 가게는 음식 값을 올리거나 재료의 질을 낮출 수 없어 양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13일 로이터 통신은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식재료비가 폭등하면서 기업은 물론 작은 식당과 소비자까지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인해 아시아의 저렴한 길거리 식당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다.

지난 12일(현지시간) 기준 시카고선물거래소의 밀 선물 가격은 t당 405.55달러(약 50만원)로 1년 전(230.75달러)보다 75.8% 상승했다. 또 세계식량농업기구가 55개 주요 농산물의 국제 가격을 모니터링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FPI)는 지난달 159.3로 전달보다 13% 올랐다.

독일 겔센키르헨의 한 정유공장. 유럽연합은 공공요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이 거의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8일 러시아 석탄 수입 금지 조처를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겔센키르헨의 한 정유공장. 유럽연합은 공공요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이 거의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8일 러시아 석탄 수입 금지 조처를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 전쟁, 인플레이션으로 '행복지수' 저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를 직접 받는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텔레그래프 등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이 지난달 영국인 2만84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국인은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보다 생활비 걱정이 더 크다고 답했다고 12일 보도했다.

최근 10년간 영국 소비자 물가 지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근 10년간 영국 소비자 물가 지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영국 성인 중 38%가 생활비 등 재정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는 UCL이 2020년 3월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반면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걱정은 33%로 지난 1월(40%)보다 떨어졌다. 모든 연령대에서 생활비 걱정이 많았지만, 특히 경제활동이 왕성한 30~59세 인구 중 절반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자신의 재정 상태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56%로 6개월(63%) 전보다 낮아졌다. UCL 연구원은 폭등한 연료비와 식료품비, 지방세 등이 영국인의 재정 상태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삶의 만족도 역시 떨어졌는데, 정신 건강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절반 미만으로 이는 최근 11개월 동안 가장 낮은 수치였다.

조사를 주도한 데이지 팬코트 UCL 역학·의료연구소 교수는 "(조사는) 최근 생활비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보다 생활비 등 재정에 대한 걱정이 많아졌다. 이것은 새로운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영국 가정에서 내야 할 전기·가스 요금은 지속해서 상승 중이다. 영국 에너지 규제기관인 오프젬(Ofgem)은 다음 달부터 에너지 요금을 54% 인상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연간 평균 에너지 요금은 1971파운드(315만원)로 올라 이전보다 693파운드를 더 내게 됐다. 한 달 평균 약 9만원을 더 내는 셈이다.

지난달 25일 영국 브라이튼의 한 '캡틴스 피쉬 앤 칩' 가게에서 점원이 피쉬 앤 칩을 담고 있다. 이 가게의 주인은 "식재료가 부족하다, 모든 식재료 가격이 지난해보다 거의 두배로 올랐다"고 말했다. [AFP=연합]

지난달 25일 영국 브라이튼의 한 '캡틴스 피쉬 앤 칩' 가게에서 점원이 피쉬 앤 칩을 담고 있다. 이 가게의 주인은 "식재료가 부족하다, 모든 식재료 가격이 지난해보다 거의 두배로 올랐다"고 말했다. [AFP=연합]

영국 소비자물가지수 30년만에 최고  

13일 BBC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올라 1992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매체는 휘발유·경유와 식품 가격 등이 30년 동안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석유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중 하나다. 아직 러시아의 원유·가스 수출이 묶인 것은 아니지만, 서방의 제재로 인해 공급망에 차질을 빚고 있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증산을 보류하는 등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했다. 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식용유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하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식품용 유지 가격은 7.2% 상승했다.

영국 식료품 도매업체 비드푸드의 앤드류 셀리 CEO는 밀로 만든 식재료와 식용유, 닭고기, 생선 등이 타격을 받았다고 BBC에 전했다. 그는 "30년 넘게 사업을 해오면서 모든 식재료의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런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11일 미국 CNBC는 세계 경제가 경기 침체(Recession·리세션)가 아니라 전쟁에 따른 침체인 '워-세션(War-cession)'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투자전략가 데이비드 로치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 대표는 CNBC에 "푸틴은 (서방의) 제재를 낮추기 위해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재가 유지된다면 에너지에 대한 봉쇄가 더 심화해 유럽 경제는 침체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유럽은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 조처를 내렸는데, 이는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첫 제재였다. 이어 지난 11일 유럽연합(EU) 외무장관 회의에선 러시아 석유·가스에 대한 금수 조처가 논의됐다. 앞서 조셉 보렐 EU 외교정책 고위대표는 이 조치가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로치 대표는 "공급 측면에서 엄청난 충격"이라며 "식량부터 에너지·금속에 이르기까지 충격이 이어질 수 있고,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에 동시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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