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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군복 입고 도망치다 체포…푸틴에 버림 받은 '20년 절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5월 13일 키이우에서 청문회에 참석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5월 13일 키이우에서 청문회에 참석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러시아 시민이 아니라 외국 정치인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절친한 우크라이나 정치인 빅토르 메드베드추크(68)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날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메드베드추크를 교환하자”고 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면서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는 특별군사작전(전쟁)과 상관없고, 그가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휴가도 함께…푸틴은 딸 대부

2020년 10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AP=연합뉴스

2020년 10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AP=연합뉴스

가디언은 13일 “메드베드추크는 푸틴의 가장 친한 우크라이나 친구였지만 크렘린궁은 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거래에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메드베드추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당 ‘생명을 위한 야당 플랫폼’(이하 ‘야당 플랫폼’)을 이끌며 푸틴과의 충직한 동맹 관계를 20년간 이어왔다. 우크라이나 정계에선 ‘어둠의 왕자’(dark prince)로도 불린다.

이들은 그러나 “정치적 동맹보다 훨씬 더 깊은 관계”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둘은 푸틴의 흑해 연안 소치 리조트와 크림반도에 있는 메드베드추크의 별장을 오가며 함께 휴가를 보낼 정도로 가까웠다. 푸틴은 메드베드추크의 둘째 딸 다리아(18)의 대부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엔 “우크라 당국의 메드베드추크 탄압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2월 테러자금 조달 혐의로 그를 제재한 데 이어 지난해 5월엔 반역죄로 기소하고 가택연금에 처했다. 러시아에 군사기밀을 팔고 크림반도의 천연자원을 착취한 혐의다. 미국도 지난 1월 메드베드추크와 다른 우크라이나 정치인 3명을 친러 정부 수립을 도모한 혐의로 제재에 나섰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야당 플랫폼’을 포함한 친러 정당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반역죄’ 가택연금에 푸틴 분노 

12일(현지시간) 가택연금에서 탈출했다가 우크라이나 군복 차림으로 붙잡힌 메드베드추크.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가택연금에서 탈출했다가 우크라이나 군복 차림으로 붙잡힌 메드베드추크. AP=연합뉴스

가디언은 “푸틴은 메드베드추크의 체포와 기소에 분노하면서 이를 ‘정치적 박해’로 간주하고 대응하겠다고 위협했다”고 밝혔다. 메드베드추크는 러시아 침공 사흘 만인 지난 2월 27일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그를 구출했을 거란 추측이 나왔지만, 지난 12일 우크라이나 군복 차림으로 붙잡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음날 수갑을 채운 그의 모습을 공개하고 “군인으로 위장해 탈출을 시도하다니 대단한 전사이자 애국자”라고 꼬집었다.

메드베드추크는 변호사 출신으로 1997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됐고 2002~2005년 레오니드 쿠크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푸틴을 처음 만난 것도 이때(2003년)다. 이후 2018년 ‘야당 플랫폼’ 의장으로 정계에 복귀해 이듬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2016년 “푸틴과의 관계가 우크라이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고, 푸틴 역시 메드베드추크 없이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믿었다고 한다. 푸틴이 전후 우크라이나 지도자로 메드베드추크를 내정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푸틴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러시아 에너지 사업과 미디어 등에 투자해 재산을 축적했다. 2008년 우크라이나 잡지 ‘포커스’는 그의 자산을 4억6000만 달러(약 5630억원)로 봤지만, 현재는 수십 배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체포 당시 자택에선 그가 아내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초호화 풀먼 기차 복제품이 발견됐고, 지난달엔 그가 소유한 2억 달러짜리 요트 ‘로열 로맨스’가 크로아티아에서 압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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