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이다. 언어가 사람의 인식과 존재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실 개편 업무에서도 ‘언어’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존 청와대 ‘수석 비서관’의 명칭을 그대로 ‘00수석’으로 유지할지, 아니면 ‘00보좌관’으로 변경할지에 대한 이견들이 나오고 있어서다. 명칭에 대한 논쟁은 ‘수석비서관’의 역할과 담당 분야 신설 여부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대통령실 개편 업무를 맡은 인수위와 청와대 TF 내부에선 민정수석과 일자리 수석을 제외한 수석비서관의 직급은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수석비서관 밑에 있던 부처별 비서관을 폐지하고, 그 기능 역시 ‘부처 지휘’에서 ‘보좌’로, 명칭도 ‘수석’에서 ‘보좌관’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논의 중이다.
전직 장관과 청와대 수석 및 비서관, 기업 임원 등으로 구성된 자문그룹에서 작성한 관련 보고서는 윤 당선인에게까지 보고된 상태다. 인수위 관계자는 “새로운 대통령실에서 기존 수석은 내각과 민관합동위의 업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 명칭도 보좌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만 장·차관과 공무원들이 대통령실의 역할을 ‘보좌 업무’로 인식하고 내각 중심으로 일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인수위 관계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당선인의 말처럼,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선인 측 내부에선 기존 ‘수석’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장 각 부처 장관 정책보좌관과 헷갈린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고, “수석제를 유지한다면 이름도 그대로 가는 것이 오히려 국민께 정직한 것 아니냐(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주장도 있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수석을 보좌관으로 바꿔도 정책 조율이란 청와대 수석의 고유업무가 사라지진 않는다”며 “수석이란 용어 자체를 폐지한다는 것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선인 측은 일자리 수석과 민정수석을 없애고 교육과 과학기술을 분야를 담당하는 ‘교육과학기술 수석’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부처별 비서관이 사라지는 대신 큰 틀에서 분야별 수석이 부처 민관합동위원회와 협업한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새로운 수석 신설은 ‘슬림한 청와대’‘보좌하는 청와대’를 지향하는 청와대 TF 방침과 차이가 있어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개편 업무는 13일 내정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마주한 첫 번째 과제이자 가장 중요한 업무이기도 하다. 윤 당선인은 14일 오후 내각의 남은 두 자리(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인선을 발표하지만 청와대 인사는 미뤘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 인선에 대해 “대통령 비서실장이 내정됐으니, 비서실장님과 의논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실장은 전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라도 손을 놓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부처 간 맥을 뚫어주고 정부의 철학을 정책에 반영하는 지원자의 역할을 맡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개편 방향에 대해선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