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하면 전통이다. 안동 여행은 하회마을, 도산서원, 봉정사 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만 다녀도 하루가 모자라다. 그런데 아시는지 모르겠다. 안동으로 떠나는 전통 여행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종가와 고택으로 대표되는 안동의 전통 유산 중 상당수가 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고택 체험으로 유명한 농암종택과 지례예술촌, 광산 김씨 집성촌인 군자마을, 퇴계 손자 동암 이영도의 종택 수졸당, 퇴계 후손 치암 이만현의 고택 등이 지금 이 자리에 터를 잡은 건 50년이 채 안 됐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옛터가 수몰되는 바람에 지금 이 자리로 이전했다. 새 터로 이사하면서 새로 지은 건물도 있지만,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물 대부분을 원형 그대로 옮겨왔다. 안동이 여전히 전통을 말할 수 있는 건, 당시의 수고와 부담을 지긋히 당연하다는 듯이 떠안았기 때문이다.
예끼마을
안동댐 건설로 새로 생긴 마을 중에는 예의 그 안동과 다른 모습의 마을도 있다. 안동에서는 특이한 사례인데, 이를테면 2014년 조성사업을 시작한 ‘예끼마을’이 있다. 이름부터 별나다. 예끼마을이라니. ‘예술과 끼가 있는 마을’의 준말이란다. 장난기 밴 이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안동과 결이 다르다. 예끼마을, 다시 말해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는 안동식 전통에 요즘 인기 있는 마을재생사업을 얹힌 성공 사례다. 예끼마을에는 현재 180여 가구가 산다. 그러니까 예끼마을 주민은, 발 아래 고향을 두고도 못 가는 실향민인 셈이다.
예끼마을은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 가는 35번 국도 오른쪽에 있다. 안동 시내에서 약 30분 거리로, 도산서원을 약 4㎞ 앞둔 지점이다. 퇴계 이황의 영향권에 있어 안동에서는 이 일대를 퇴계 문화권이라 이른다. 퇴계 후손과 퇴계학 계보를 잇는 가문의 집성촌이 모인 지역으로, 행정 구역도 도산면이다. 현재 조성 중인 91.3㎞ 길이의 안동선비순례길이 예끼마을을 통과하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유교책판이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예끼마을 건너편에 있다.“OO했니껴?”로 끝나는 안동 특유의 말꼬리가 가장 또렷하게 들리는, 어쩌면 가장 안동다운 마을이다.
예끼마을에 들어서면, 거대한 호수가 가로막는다. 산촌인 줄 알았는데, 강촌이다. 안동댐에 막혀 수위가 올라온 낙동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원래 마을은 저 강물 아래에 있었다. 그 시절에는 예안면에 속했다. 낙동강변의 수많은 마을이 강물에 잠길 때 행정구역이 개편됐다. 막상 마을 안에는 ‘선성’이라는 이름이 자주 보인다. 선성은 고려 시대 지명이었다. 고려 시대 지명 선성과, 조선 시대 지명 예안 그리고 현재 지명 예끼마을이 마을에서 뒤섞여 쓰였다.
강 위를 걷다
예끼마을은 재미있다. 골목마다 개성 있는 간판과 조형물, 아기자기한 벽화와 트릭 아트가 장식돼 있어 인증사진 찍으며 거닐기에 딱 좋다. 선성현 한옥체험관과 선성현 문화단지는 전통 한옥마을의 모습이고, 선성산성과 선성공원은 가벼운 산책에 좋은 나들이 장소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은 마을 시설이 문을 닫았지만, 한옥 체험관에서는 숙박이 가능하다.
주말에는 이 외진 마을이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안동시 관광진흥과 이금혜 과장도 “코로나 사태로 안동의 주요 명소 대부분에 인적이 뚝 끊겼는데 예끼마을만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예끼마을에서 낙동강 건너편 호반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진 1.1㎞ 길이의 선성수상길 덕분이다. 교각이 없는 부교로, 강물 위를 걸을 때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짜릿하다. 이 다리 아래에 옛날 예안면 시절 제일 큰 마을이 있었다. 다리 중간에 설치된 포토존에서 옛날 마을 사진과 그림을 봤다. 두 발 디디고 선 낙동강 아래에 면사무소와 학교, 교회와 우체국이 있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일대 최대 수심은 140m나 된다고 한다.
예끼마을에서 선성수상길을 지나 호반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안동선비순례길 1코스의 핵심 구간이다. 원래 길은 한국문화테마파크와 월천서당까지 이어지는데, 중간 구간이 아직 안 열렸다. 6월 개장 예정인 한국문화테마파크는 공사를 마치고 개장만 앞둔 상황이다. 벌써 소문이 났는지, 차를 운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꾸준했다. 안동의 전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